'적벽대전' vs '300', 두 편의 아름다운 근접살육전

김관명 기자  |  2008.06.25 07:01
\'적벽대전\'(위)과 \'300\'. '적벽대전'(위)과 '300'.


대개 영화속 총질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행된다. 가까워봤자 최소한 방 대각선 정도 길이가 고작이다. 대공포와 직사포가 난무했던 '태극기 휘날리며'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콜드 마운틴' 등 '원거리' 전쟁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비교적 근거리 사격이 주를 이뤘던 '대부'에서는 길거리 주유소를 배경으로, '달콤한 인생'에선 술집 룸과 복도 사이에서 총질이 이뤄졌다. 박찬욱 감독의 탁월한 지적 그대로 '총질의 타격감은 고작 해야 방아쇠에서 그칠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맨몸 격투나 칼, 검, 창, 각목, 망치 등이 동원된 근접전은 말 그대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생사가 갈린다. 최근 '러시아워3'에서 보여준 성룡의 녹슬지 않은 아크로바틱 격투신이나, '무인 곽원갑'에서 보여준 이연걸의 먼지 펄펄 날린 타격감, '옹박'에서 토니 자가 펼친 황홀한 리얼 맨몸 액션을 떠올려보시라. '쉭~' 칼 베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씬시티'나 '킬빌'이나, 최민식의 그 장도리 액션이 빛났던 '올드보이'는 또 어떻고? 장예모 감독의 '영웅'에서 이연걸과 양조위가 아무리 호수 위 허공을 날아다니며 판타지 액션을 펼쳤다 해도 결국엔 근접전에서 승부가 가려졌다.

이 같은 근접전은 총기가 등장하기 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개봉한 제라드 버틀러 주연의 '300'에선 그리스 조각 같은 스파르타 군인과 '이방인' 페르시아 군대와의 지근거리 창 찌르기 액션이 주를 이뤘다. 판타지 전쟁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도 보는 관객 숨막히게 했던 건 두 떼거리 사이에 오고간 칼과 창의 육중한 금속음이었다. 십자군 원정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올랜도 블룸 주연의 '킹덤 오브 헤븐'도 약간의 '중거리 무기'인 활이 사용됐지만 주는 말 위에서 펼쳐진 칼부림이었다.


지난 23일 국내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오우삼 감독의 화제작 '적벽대전-거대한 전쟁의 시작'은 이런 근접전에 관한한 중국인들의 탁월한 심미안을 알린 영화다. 후한이 배경인 만큼 주무기가 칼과 창 정도였던 데다, 팔괘진 등 다양한 진법을 통한 전사들의 집단 매스게임(?)까지 동원되고, 무엇보다 '삼국지'의 기라성 같은 전장 영웅들이 한 가득 출몰, 저마다 '헌 창 쓰는 조자룡'연 하니 그럴 수밖에. 만화 '창천항로'에서 이미지를 실감했던 독자 관객이라면,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연월도의 묵중한 바람 가르는 소리에 탄복하시리라.

이 지점에서 '적벽대전'과 오버랩되는 영화는 다름 아닌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이다. 바로 그 끔찍하고 처참하며 목불인견이었어야 할 핏빛 근접살육전을 이처럼 '유려하며 아름답게' 마치 한 폭의 수묵 군상화처럼 그릴 수 있다니. '300'이 스파르타 군인들의 넓직하며 미끈한 대흉근과 잘 발달된 이두 삼두박근에서 폭발돼 나온 원시적 힘에 주목했다면, '적벽대전'은 조자룡(후준)을 위시해 관우 장비 감녕, 심지어 동오의 지장으로만 알았던 주유(양조위)까지 포함한 초인적 영웅들의 화려한 검술-창술에 천착했다. 두 편의 영화는 한마디로 최고 경지에 오른 칼부림-창부림 액션에 대한 절절한 헌사이자, 낭자한 진홍빛 핏방울 모두를 잡아내려한 진득하며 섬세한 미쟝센의 승리다.


조금 더 파고들자. 영화 '적벽대전'이 아무리 유비의 책사인 제갈량(금성무)과 손권의 명장 주유(양조위)를 주연으로 내세웠다지만, '삼국지'나 '창천항로'의 올드 팬들이라면 전장 영웅들의 전투신을 넓은 스크린에서 재확인하는 재미와 감동이 우선이다. 과연 조자룡은 어떤 자세로 유비의 아들을 안은 채 수백의 조조 군사들을 헌 창 하나로 제압할 수 있었으며, 무게가 82근이나 나간다는 관우의 청룡언월도는 과연 어떤 궤적과 파열음을 내며 적군들을 베는지 '바로 내 눈으로' 확인하고픈 것이다.

과연, 조자룡의 헌 창은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의 그 장대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휘어졌고(아마 이 탄력이 있어야 연타, 삼연타 공격이 가능했으리라), 관우의 청룡언월도는 베는 게 아니라 사실상 세게 '때리는' 기분으로(마치 만화 '베르세르크'에서 주인공이 휘두른 그 무식할 정도로 큰 칼처럼) 적군을 넘어뜨렸던 것이다. 이게 다 근접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임은 물론이다.

'300'은 또 어떤가. '적벽대전'이 조조 80만 대군에 맞선 오-촉 연합군 10만의 싸움을 그린 것이라면, '300'은 페르시아 100만 대군에 맞선 스파르타 정예전사 300명의 1당100, 1당1000 싸움을 그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골리앗과 다윗식 전쟁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 근접전이기 때문이다. 왜? 무협소설 팬들이라면 단번에 아시겠지만, 맨몸이든 칼이나 창이든, 근접전에서 4명 이상은 공간적 제약 때문에 동시에 한 사람을 공격할 수 없기에.


더욱이 '300'에서는 농민들이 대부분이었던 중국 삼국시대의 일반 군사들과 달리, 오로지 전투만을 위해 단련된 정예 군사들로만 300명이 치른 전투이기에 그 근접전의 설득력은 더 강했다. 해서 '300' 카메라의 포커스는 이들 300 군사 개개인의 대흉근, 복근, 진홍빛 망토자락을 통해 인간의 몸이, 단련된 군사의 몸이 얼마나 황홀할 수 있는지에 맞춰졌다. 흰 가면을 쓴 채 느닷없이 출몰한 이방 페르시아 군사들의 섬뜩한 외모와 검술이 하나하나 슬로우 모션으로 캡쳐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연 영화는 세상에선 있어선 안될 일들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광기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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