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감독 ⓒ임성균 기자
지난 27일 열린 제 45회 대종상영화상 시상식의 한 토막이 뒤늦게 네티즌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영화제에 참석한 '디 워'의 심형래 감독에 대한 푸대접 때문이다.
심형래 감독은 이날 '디 워'로 영상기술상을 수상한 영구아트무비를 대표해 무대에 올랐다. 인터넷이 먼저 달아오른 건 윤양하 영화배우협회 전 회장의 발언이다. "앞에 계신 심형래 감독님은 시나리오 없이 촬영하는 걸로 유명하다. 앞으로는 시나리오를 보고 하라"는 윤 전회장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진 심형래 감독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지자 분위기가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다. TV를 본 네티즌이 들끓었다.
그러나 더 문제는 시상식 내내 듣는 이들을 불편하게 했던 호칭이었다. 시상식 내내 심형래 감독은 '심형래 감독'이 아닌 '심형래씨'로 불렸다. 모든 호칭을 '씨'로 통일했다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 실제로 이날 시상식은 촬영감독, 조명감독, 스태프 등 대다수 수상자 및 참석자에게 '씨'라는 호칭으로 통일했다. 그러나 영화의 창작자 감독에게만은 '누구누구 감독'이라고 꼬박꼬박 붙여 호명했다.
심형래 감독은 지난해 영화 '디 워'로 논란 속에 70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당시 불거진 작품성 논쟁은 태생이 코미디언인 그에 대한 충무로의 반감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근본 없는' 감독이자 제작자인 그가 거둔 성공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곱지 않았다. 이날 시상식의 호칭 문제를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인들의 뿌리깊은 폄하의 시선이 말씨 하나에서부터 반영된 것은 아닐까. 윤 전 회장도 심형래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에게 과연 그런 농담을 할 수 있었을까.
영구와 펭귄, 파리 등 바보 연기의 달인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이기도 한 그는 그날 영화사 대표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이날 시상식에 참여했다. 그 평가야 어찌되었건 심형래 감독은 700만 관객의 불러모은 흥행작의 창작가고 영화제 측은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는 것이 옳다. 대표 자격이어서 감독 호칭을 생략했다는 설명은 (다른 영화사 대표를 '대표'라고 똑똑히 호칭한 예도 있거니와) 변명에 불과하다.
식장을 나온 심형래 감독은 혹여 시상식에서의 푸대접에 마음이 상했을까 걱정하는 동료 직원에게 "나는 영구가 아니냐"며 웃어 넘겼다고 한다. 분위기를 위해 나온 우스갯소리이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고 영화인의 축제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심 감독의 너그러움이 다행이지만 혹 충무로의 냉랭한 시선에 대해 이미 체념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