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재석 ⓒ송희진 기자 songhj@
완벽주의자, 도시적인 남자, 엘리트, 고독. 배우 한재석을 떠올릴 때 따라오는 수식어다. 한재석은 출연작을 통해 자기주장이 확고한 사람, 스스로에게 너무도 차가운 지독한 완벽주의자, 품은 야망이 있는 사람 등 '센' 역을 맡아 했다. 이는 한재석의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 인터뷰도 별로 하지 않아 그 속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각인됐다.
그가 변했다. 방송중인 KBS 2TV '태양의 여자'에서 그가 연기하는 '김준세'는 이전 작품 속 인물과는 다르다. 국내 최고의 M&A전문가라는 직업적 특성과 이성적이며 냉혹하지만 인간미나 넘친다. 드라마에 부드러움을 더하기까지 한다.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싶다. 지금까지 너무 폼 잡는 연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좀 더 편안하고 즐겁게 시청자에 다가가고 싶다. 난 완벽하지도 도시적이지도, 세련되지도 않은데 부담스럽게 다가가야 하니 나도 힘들다. 시청자가 '쟨 왜 만날 센 척만 해?'라고 할까봐 겁이 난다. "
의외다. 인터뷰도 별로 하지 않는 그, 예전 인터뷰를 보면 늘 단답형으로 말해 차가운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단정한 그의 모습은 '완벽주의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그는 "절대 완벽주의자도 아니고 완벽하려고 노력은 안 한다"고 말했다.
"나는 사실 완벽하지 않다. 피부도 관리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우나하고 로션을 바르는 정도다. 인터뷰를 잘 안 했던 것도 이미지 전략 같은 게 아니라 말을 잘 못해서였을 뿐이다. 다만 잘못하다가는 성의 없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인터뷰를 안 하기보다는 멀리했다. 자연스럽게 대중과도 멀어진 것 같다."
이날의 한재석은 제대로 마음을 먹고 나온 것 같았다. 마치 연습이라도 하고 나온 듯 늘어난 유머감각을 자랑하며 길어지는 인터뷰 시간에도 지겹기보다 더 없이 즐겁게 했다. 완벽주의에 차갑고 고독한 남자라면 어려웠을 일이었을 터.
"외로움을 많이 타긴 하지만 내 자신에게도 티는 안 낸다. '나 외롭다', '우울하다'라고 하는 것이 좀 창피하다. 그럴 땐 활기찬 음악을 들으며 기분 전환한다. 나와 주위 사람 모두 웃고 있는 게 좋다. 우울하면 잠깐 전환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노력한다."
배우 한재석 ⓒ송희진 기자 songhj@
그도 한 인간이기에 어쩌면 드라마처럼 완벽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완벽할 것이다', '차가울 것이다'라는 다가가기 어려운 벽을 깬 '사람' 한재석은 훨씬 따듯하고 다정다감하며 낭만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20대 초반, 강원도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차를 타고 가다가 일출을 처음 봤다. 잘못 든 길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일출은 내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거대한 태양과 마주한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새해에 차 막히는데 왜 일출을 보겠다고 거길 가나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는 이해한다."
차가운 바다를 보며 비장함을 다질 것 같은 그지만 일출을 보며 감동을 한다. 비싼 호텔 커피숍에 앉아 우아하게 창밖으로 일출을 볼 것 같지만 바닷가 행상 아줌마의 믹스커피를 사마시며 일출을 기다리는 그다. "믹스커핀데 1500원은 너무 비싸지 않냐"고 툴툴대기까지 했다.
한재석도 어느 덧 연기경력 10년이 훌쩍 넘었다. 94년 데뷔니 올해로 만 14년째다. 나이도 어느새 30대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한 번쯤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봤을 법도 한 시기다. 그는 "그동안의 시간들을 돌아봤을 때 어떤가"라는 질문에 "얼마 안 된 것 같았는데 연기 생활 10년이 넘었다는 조금 오래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입을 열었다.
"과거를 회고할 정도는 안 된 것 같고 아직은 더 성숙하고 배워야할 것이 많아서 뒤보다는 앞을 보고 더 나가고 싶다. 살다보니 나태해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새롭게 원기회복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과거에 실수했던 아픈 기억이다. 다녀와서 '내가 정말 일을 사랑했구나'라는 것을 느끼며 일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더 생겼다. 앞으로도 높은 곳은 아니지만 늘 배우는 자세로 더 올라가려고 하며 늘 노력하는 배우이고 싶다."
단단히 결심이라도 한 듯 과거의 실수까지 언급하며 포부를 다지던 한재석.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시도하겠다"며 연기 욕심을 내보인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시간 동안 '선입견',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의미와 영향력을 논문 100권을 읽은 것보다 더 확실히 알게 됐다.
배우 한재석 ⓒ송희진 기자 song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