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루저의 왕'이 돌아왔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08.07.10 10:14
ⓒ<송희진 songhj@> ⓒ<송희진 songhj@>


'루저의 왕'이 돌아왔다. 백제와 신라의 전쟁을 그려도, 연산군을 이야기해도, 가수와 매니저를 보여줄 때도 루저에 대한 지난한 애정을 잃지 않았던 이준익 감독이 돌아왔다.


이준익 감독이 24일 개봉하는 '님은 먼곳에'로 베트남 전쟁에 끌려간 남편을 찾아 헤매는 여인의 오딧세이를 들고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천만 영화를 만들어낸 그지만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루저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다.

'루저본좌'인 주성치의 영화를 신문지 바닥에 라면을 올려놓고 낄낄 대고 봐야 제 맛인 것처럼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어두운 극장에 앉아 자신과 닮은 등장인물에 공감해야 제 맛이다.


30년 전 끝난 전쟁을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이 이야기가 돈이 되니깐 만든다는 아이러니에 놓여있는 이준익 감독. 빡빡머리에 야구모자, 동그란 안경에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이 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애정이야말로 왕의 조건이라면 세상살이에 갑갑한 영혼이 극장 문을 나설 때 위안을 안고 돌아가게 해주는 그의 능력은 왕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왜 이제 와서 베트남 전쟁인가.

▶불과 30년 전의 이야기이다. 30년 전 이태원 문화를, 또 그 시대를 영화를 통해 소개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아픈 과거라도 문화를 통해 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은 쥐를 때려잡자'는 표어가 등장하는데 시사회에서 웃음이 터지더라.

▶(머리를 긁적이며) 철저한 고증을 거친 표어와 포스터들이었다. 그게 웃길 줄 내가 알았겠나.

-지금까지 남자만 그리더니 이번에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하도 욕을 먹어서. 이준익은 여자를 도구로 사용한다, 여성의 감성을 모른다고 하니깐. 비난 받으면 반성을 해야지. 계속 영화 만들면 좀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웃음)

남성의 시각이었다면 이 영화는 달라졌을 것이다. 미군은 혈맹이며, 베트공은 적이고, 우리는 조국을 위해 참전한 것으로 표현됐을 것이다. 그건 20세기가 낳은 남성중심 사회의 부조리이다.

지금은 21세기이다. 베트남에 한류 열풍이 불지 않나. 역사는 역전의 드라마다. 과거 관점에 머물면 그건 퇴화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영화에 한국군은 돈을 벌기 위해, 미군은 수탈의 대상으로, 베트공은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독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난 모든 오독을 인정한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은 구분해야 한다. 틀리다고 강요하지 말고,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이다.

-'황산벌'에서는 전쟁으로 영화에 포인트를 줬다면 '님은 먼곳에'는 전투신으로 극에 긴장을 줬는데.

▶영화적인 장치이기도 하지만 베트남전은 불과 30년전의 전쟁이다. 조금도 희화할 수는 없었다. '황산벌'은 1300년 전쟁이니깐 희화화하는데 자유로웠다.

그러나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들의 구국정신은 절대 훼손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사실이니깐.

-'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에 이어 '님은 먼곳에'로 이준익 음악3부작이 완성된 느낌인데.

▶대중음악은 그 시대의 정서를 담는다. 또 대중의 지혜가 함축돼 있다. '라디오스타'가 80년대 록을 담았고, '즐거운 인생'이 음악을 통해 기성세대의 회복을 그렸다면, '님은 먼곳에'는 60~70년대 음악으로 대한민국을 반영하고 싶었다.

-김추자의 노래 뿐 아니라 '수지Q' 등 다양한 노래들이 영화 속 상황을 은유하던데.

▶그렇다. 다양한 상징을 담았다. 예를 들어 베트공에 포로로 잡혔다가 미군에 구출됐을 때 미국의 국가와 '오 대니 보이'를 부른다. '오 대니 보이'는 아들을 전쟁에 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노래한 아일랜드 민요다. 그런 것들을 관객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수애가 남편 찾아 삼만리를 가는 영화가 아니라 사랑이 뭔지를 알기 위해 떠나는 오딧세이이기도 한데.

▶사랑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 너머를 보여주고 싶었다. 여러 사연들을 토대로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송희진 songhj@> ⓒ<송희진 songhj@>


-이번에도 역시 루저에 대한 진한 애정이 깔려있는데.

▶하도 루저라고 비난을 받아서.(웃음) 남들이 나를 루저라고 하지 내가 스스로 루저라고 하나. 빚 많으면 루저냐. 하긴 빚태크는 했지만 재테크는 못했지.

-수애의 연기가 대단하던데.

▶연기 지도도 별로 안했는데 완전히 수애가 되더라. 수애에게서 70년대 내 어머니, 이모의 상을 봤다. 또래 배우들에게는 쉽게 볼 수 없는 지점이다.

-100억원이 넘게 투입될 수 있는 영화인데 71억원으로 만들었는데.

▶규모를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영화를 생각하고 규모를 맞춘다. 이 영화는 71억원짜리 영화다. 배급을 하고 제작을 하기도 했으며, 돈 없이 만들다보니 그런 재주가 생겼다.(웃음)

이미 시나리오 쓸 때 머리 속에서 영화 한편을 봤기 때문에 찍은 걸 남김없이 사용했다. 그래서 난 디렉터스컷이 없다.

-수입 배급을 했던 경험이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도움을 줬나.

▶난 좋은 소프트웨어를 돈으로 바꿨던 사람이다. 정신을 돈으로 바꾸는 처절함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수입하던 시절 외국에 1000만불을 가져다 줬다. '왕의 남자'로 200만불을 되찾아왔으니 이제 800만불 남았다. 800만불을 우리 이야기로 되찾아와야지 감독으로서 자유로워 질 것 같다. 이제 고스톱을 치는데 이제 새벽2시다. 날 밝을 때까지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

-영화 홍보를 위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갈만도 한데.

▶방송은 겁나서 못하겠다. 성공시대를 강요하잖냐. 1000만불 까먹었는데 미화되는 게 싫다. 내가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하는 건 삶을 위한 것이지. 영화가 목표는 아니다. 목표는 삶이 풍성해지는 것이다. 성공시대는 나와 맞지 않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다보니 '놈놈놈'과 경쟁규도로 몰아세우는 분위기인데.

▶좋은 거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 아니냐. 우리는 관객에 좋은 서비스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를 줘야 한다.

-다음 영화는 어떤 이야기인지.

▶네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불국사 이야기도 있고, 6.25 전쟁 사흘 뒤인 6.28도 있다. 뭐가 먼저 될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비석에 한마디만 써야 한다면.

▶이렇게 헛짓하다 죽을지 알았다. 헛짓거리를 하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거 하다가 에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뭐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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