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삼국지' 영화의 성공적 시작

[너 영화? 나 김유준이야!]

김유준   |  2008.07.16 08:45


오우삼과 제작진은 '적벽대전'을 만들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보다는 진수의 역사책 '삼국지'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정사를 기초로 만들었다."


덕분에 영화는 유비 삼형제가 아니라 주유와 제갈량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장판교에서 장비가 고함 소리로 조조의 장수 하후걸을 죽였다는 식의 다소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보이지 않는다. 제갈량이 동오를 찾아가 손권에게 참전을 설득하는 장면도 드라마틱하다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으로 처리돼 있다.

하지만 주유의 아내 소교 때문에 조조가 전쟁을 일으켰다는 설정 등 정사와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 게다가, 흡사 ‘절영지회의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지음의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절영지회(絶纓之會): 전국시대 초장왕 때 고사. 왕이 밤에 연회를 베풀다가 촛불이 꺼졌는데, 어떤 신하가 그 틈을 타 왕의 애첩을 희롱했다. 미인은 기지를 발휘하여 신하의 갓끈을 끊고 왕에게 촛불을 밝혀 그 사람을 색출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왕은 신하들에게 촛불을 켜기 전에 갓끈을 모두 끊으라고 명해 범인을 보호했다. 나중에 초는 진나라와 싸우게 되었는데, 그때 한 장수가 죽을힘을 다해 싸워 공을 세웠다. 알고 보니 바로 연회 때 왕이 구해 준 그 사람이었다.

지음 知音: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와 그의 친구 종자기는 거문고 소리로 서로의 마음속을 알았다. 이후 지음은 진정한 벗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한마디로, 오우삼의 '적벽대전'은 진수나 나관중의 '삼국지'와 또 다른 이야기다. 중국 역사 여기저기에서 이야기를 끌어와 짜깁기해서 재해석해놓은 '삼국지'의 변주곡이다. 주유와 제갈량이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맹을 맺은 사이가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친구 사이로 그려놓은 점 또한 어찌 보면 오우삼답다 하겠다. 오우삼을 홍콩 누아르의 대부로 만들어놓은 작품들이 다름 아닌 그 '친구 이야기'니까.

여기에 대한 호불호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이지 싶다. 영화 자체의 스펙터클과 이야기 전개, 연출에는 크게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넣을 것은 넣고 뺄 것은 빼는 세련된 편집 감각으로 거대한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풀어간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소교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특히 그렇다. 중국사회에서 린즈링이 어떤 위치인지는 모르되 '적벽대전' 같은 대작에서 당당하게 한 부분을 차지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지 싶다. 주유와 소교가 벌이는 러브신도 다소 뜬금없이 느껴진다.


3부작의 첫 편이라 캐릭터를 설명하고 나열하는 장면들에서 알게 모르게 심심한 느낌도 있다. 주유와 제갈량에 집중하는 와중에 조조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단순해진 것은 좀 아쉽다(조조는 탁월한 전략가였을 뿐만 아니라 법전을 집필한 행정가였으며 동시에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였다. 하기야 짧은 영화 속에 이 많은 이야기를 집어넣으라는 주문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 때문에 묻히기에는 적벽을 가로지르는 선단의 위용이나 팔괘진의 스펙터클이 너무나 장쾌하다. 주유 역의 양조위나 제갈량 역의 금성무 또한 연기가 무난하다(내게 캐스팅을 맡겼다면 전혀 결과가 달랐겠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이 아닐까 싶다). 결론을 말하면 오우삼의 '적벽대전'은 지금껏 발표된 '삼국지' 영화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적벽대전 이야기의 백미는 제갈량이 안개 속으로 배를 저어 화살 10만 대를 줍다시피 한다거나 제를 지내 동남풍을 불게 했다는 식의 다소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제갈량, 주유, 방통 등 당대의 천재들이 머리를 모아 조조의 백만 대군을 전멸시키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지만, 그 속에 가미된 신화적인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나관중보다는 진수 쪽을 선택했다고 천명함으로써 중국인 특유의 '뻥'과 이별하겠다고 선언한 오우삼이 2편과 3편에서 각각 어떤 이야기를 펼쳐놓을지 기대된다.

<김유준 에스콰이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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