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캐스터로 활약했던 조석준(왼쪽)과 이찬휘<사진=KBS, SBS홈페이지>
"어렵다"
TV에서 웃으며 날씨를 전하는 기상 캐스터들의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맑을 것이라고 예보했는데 비라도 오면 낭패다. 기상청에서 슈퍼컴퓨터를 도입하는 등 정확한 예보를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특히 최근엔 일기예보가 빗나간 적이 많아 캐스터들은 시청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까지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이 편한 것도 아니다. 불과 1~3분의 방송을 위해 많은 자료를 수집해야하고 기동력도 발휘해야 한다. 4계절 내내 한 눈 팔 틈도 없다. 봄이면 황사가, 여름이면 비와 폭염이, 가을엔 때늦은 더위와 이른 추위가, 겨울엔 흰 눈이 캐스터를 괴롭힌다. 태풍이 오고 폭우, 폭설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퇴근은 꿈같은 말이다.
◇손으로 일기도를 그리던 시절
지금은 TV를 통해 쉽게 기상 예보를 접할 수 있지만 TV에 기상 캐스터가 얼굴을 보인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각 방송사에서 여성 기상 캐스터들이 맹활약하고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기상 캐스터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각 방송사에서 기상 캐스터를 맡았거나 활약중인 여성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익선, 현인아, 한연수, 박신영, 조경아, 안혜경, 최윤정, 박은지, 홍서연, 한희경<사진=MBC, KBS, SBS홈페이지>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 전문 캐스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김동완 예보관이다. 당시 기상청의 전신이던 관상대에서 근무하던 그는 1970년대부터 동양방송, 80년 언론통폐합 이후 MBC에서 일기 예보를 전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존재가 됐다.
당시 일기예보는 지금과 같이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기상 캐스터가 직접 지도에 펜으로 고기압과 저기압의 위치 등을 그려가며 날씨를 설명해야 했다. 전문가가 혼자이다 보니 방송 PD가 김 캐스터가 그린 기상도를 이해 못하고 다시 그리게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여 년간 편안한 목소리로 날씨를 알려주던 김동완은 기상 캐스터계의 전설이다.
↑첫 전문 기상 캐스터라 할 수 있는 김동완 <사진=SBS방송화면 캡처>
김동완 캐스터와 더불어 활발하게 활동했던 캐스터로는 조석준 KBS 캐스터가 있다. 조석준은 우리나라 기상전문기자 1호로 80년대 김동완 캐스터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이외에도 이찬휘, 지윤태 등 남성 기상 캐스터들이 꾸준히 안방에 날씨를 전해왔다. 특이한 점은 조석준, 이찬휘, 지윤태 등 대부분의 남성 기상 캐스터가 공군 장교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공군에서 기상업무를 담당하는 장교로 근무하며 쌓은 경험을 TV를 통해 선보였다. 국내 유일의 기상전문부대인 공군 제 73기상전대는 공군 각 기지는 물론 국방부와 각 군에 기상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90년대 이후에는 여성 캐스터 전성시대
금녀의 영역처럼 여겨지던 기상 캐스터계에 90년대 들어서면서 여풍이 불었다. 여성 캐스터의 첫 포문을 연 것은 바로 이익선 캐스터다. 91년 5월부터 KBS 1TV '뉴스광장'에서 날씨를 전했던 이익선 캐스터는 조리있는 해설과 깔끔한 외모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각 방송사는 경쟁적으로 여성 기상 캐스터를 방송에 세우기 시작했다. SBS에서는 박순심, MBC에서는 고 정은임 아나운서가 기상 캐스터로 나서며 이익선 캐스터와 함께 방송 3파전을 벌이기도 했다. 여성 캐스터가 등장하면서 의상도 화려하고 다양해졌다. 봄이면 화사하게, 비가 오면 노란 우비를 입고 방송에 나선다.
이제 여성은 기상 캐스터계의 절대 다수가 됐다. 공중파 방송 3사와 케이블 TV등에서 직접 예보를 전하는 기상캐스터는 약 30명. 그중에서 남성은 MBC의 이재승 캐스터가 유일하다.
◇내일 날씨만? NO. 드라마 출연에 지구환경 변화까지!
기상 캐스터들은 날씨를 전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는다.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언변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면에 진출하기도 한다.
여자 기상 캐스터 최고참인 이익선은 차분한 말솜씨와 지적인 이미지를 인정받아 KBS 2TV '연예가 중계', EBS '시네마 천국' 등의 진행을 맡으며 MC로서의 역량도 한껏 발휘했다. 2002년에는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 청와대 출입기자로 깜짝 출연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KBS 2TV 인기드라마 '태양의 여자'에서 장시은 아나운서역을 연기하는 김혜은도 기상캐스터 출신이다. 기상 캐스터 시절 드라마 MBC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연기에 입문한 그는 이후 '아현동 마님'과 '뉴하트'등의 드라마에 얼굴을 내밀며 연기자로 변신했다.
예능계로 진출해 끼를 맘껏 발휘하기도 한다. 2001년 MBC 공채 기상 캐스터 출신인 안혜경은 프리랜서를 선언한 후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지금은 군복무중인 하하의 여자친구로도 유명한 안혜경은 빼어난 미모와 수준급의 입담을 바탕으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드라마에도 심심찮게 출연하며 이제 기상 캐스터보다는 연예인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이젠 원로가 된 김동완도 작년 SBS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옛날 TV'에 깜짝 출연해 손으로 기상도를 그리던 일기예보를 재연하며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외에도 많은 기상 캐스터들이 날씨를 전하는 이외에도 라디오 DJ나 MC, 예능 프로에서 활약중이다.
날씨를 전하는 사람들답게 지구의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최근 여성 기상 캐스터 9명은 지구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내일은 맑음(도서출판 마음의 숲)'을 출간했다. 지구 온난화, 기상 이변 등의 환경문제와 함께 기상 캐스터로 지내며 겪었던 다양한 경험담과 느낀 점 등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