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신비주의에 가렸던 그의 맨얼굴을 보다

김현록 기자  |  2008.08.07 02:07


6일 늦은 오후 방송된 MBC '서태지 컴백스페셜'의 제목은 '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서태지'. 그건 음악에 빠진 평범한 학생이었던 서태지가 과감히 학교를 버리고 뮤지션으로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했던 당시 그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시절 그는 서태지가 아니라 정현철이었을 테고, 서태지였던 순간 그는 더이상 북공고 1학년 1반 25번이 아니었을 테니.


그 역설적인 제목은 '서태지 컴백스페셜'이 목표 자체를 설명하는 듯 하다. 방송은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선 서태지, 혹은 정현철이란 인물에 75분간 오롯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리고 4년반만에 대한민국 연예계를 뒤흔들며 돌아온 가수 서태지에게서 평범한 삶을 갈망하면서도 음악을 놓을수 없는 평범한 인간의 얼굴을 담으려 한다.

방송은 네 챕터로 구성됐다. 지난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게릴라 콘서트, 지난달 28일 배우 이준기와 함께 찍은 서해안 로드무비 인터뷰, 31일 일산 MBC드림센터에서 진행된 컴백 무대, 그리고 처음 공개되는 8집 첫 싱글의 타이틀곡 '모아이(MOAI)' 뮤직비디오. 매 챕터 서태지와 제작진 모두가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집중시키는 것은 역시 두번째, 이준기와의 로드무비 인터뷰다. 일직선으로 뻗은 좁은 이차선도로에서 만난 서태지와 이준기는 서먹했던 첫 만남을 시작으로 밤 산사에서의 마지막 대화까지 한나절을 함께하며 점점 더 진지하고 속깊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동시에 서태지는 깊은 밤 자신을 보기 위해 TV 앞에 모여앉은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속내를 살짝 열어 보였다. 서태지는 1992년 데뷔 '난 알아요'를 무려 17주 연속 가요프로 1위에 올려놓을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1996년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며 돌연 은퇴했던 그가 1998년 음반을 발표하고 2000년 처음으로 다시 모습을 보이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것은 '신비주의'에 가려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뽀얀 동안마저 신비감을 더했다! 그러던 서태지가 과연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서태지는 은퇴를 선언했던 "24살, 어려서 계산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고, 복귀 당시 "은퇴 번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지금도 사실 많이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은퇴란 말은 다시 안 쓰겠지만 공백이 길어도 음악은 계속 할 것"이라며 "음악은 (나의) 반 이상"이라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신비주의란 지적에 대해선 "성격 자체나 내성적인 부분이 꽤 있다"며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고 가수로서 기본 활동을 하는 것 뿐"이라 "다른 분들에게 잘 안보이니 괜히 신비해진다"고 말했다.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이 크다"고도 강조했다.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게 초조해진다"고 털어놓은 순간엔 잠시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은둔형 괴짜 천재, 성장을 멈춘 피터팬처럼 멀기만 했던 그의 맨얼굴을 잠시 본 느낌이랄까.

웃음이 터질 만큼 시시콜콜한 인간 정현철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인데다 "피부 관리도 안"하고, "작업할 때는 한 일주일간 세수를 안 한 적도" 있다며 "안씻으면 피부가 좋아진다"고도 우겼다. 개그맨 최양락을 따라했다고 웃음을 샀던 2000년 당시 단발머리에 대해선 "내 음악 생활에서 가장 치욕"이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CF에서도 재앙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유세윤을 향해 '닥터피쉬'가 좋다며 "붐치기 붐치기 차차차"를 외치고 '사랑의 카운셀러' 춤을 슬쩍 보여주기도 했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 애쓴 제작진이나 서태지 본인의 노력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허나 눈길을 끈 건 이준기와 유세윤의 역할이었다. 서태지와 10살 차이가 나는 이준기는 서태지의 팬을 자처하면서도 당당하게 대화와 인터뷰를 이어갔다. 유세윤의 '무릎팍도사'의 건방진 도사 컨셉트도 계속됐다. 대한민국을 흔든 '문화대통령' 서태지라고 해서 황송해하지도 않고 미리 주눅들지도 않던 두 사람이기에 서태지 역시 동등한 입장에서 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으리라.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부분도 있다. 서태지는 사는 곳에 대해선 '서울시' 이상의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고 연인에 대해선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다"며 아리송하게 답했다. 하지만 16년간 활동과 잠적을 반복하며 대한민국을 흔들어 왔던 그가 단박에 '수다' 서태지 선생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태지는 이제야 "나 사실은 꽤 가까운 거리에서 서울의 공기를 숨쉬며 TV 개그프로를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어"라고 수줍게 말을 걸며 한발짝 다가왔다. '동시대인' 서태지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서태지 컴백스페셜'은 과연 스페셜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