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다찌마와리, 버라이어티쇼처럼 만들었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08.08.07 11:06
이명근 기자 qwe123@ 이명근 기자 qwe123@


류승완 감독이 '다찌마와리'(14일 개봉)를 8년 만에 부활시켰다. 인터넷 속도가 거북이 걸음과 비슷했던 2000년, 60~70년대 액션영화를 반은 농담 삼아 반은 존경 삼아 만들었던 단편영화 '다찌마와리'를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부제를 달고 장편영화로 만든 것이다.


순수건달이었던 다찌마와리는 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007을 뺨치는 국제 스파이로 변신했다. 그 시간 동안 변한 것은 다찌마와리만은 아닐 터, 영화 청년이었던 류승완 감독도 어느새 중견 감독으로 변했다.

"예전 '다찌마와리'가 동네형에게 하는 거짓말이라면 이번 영화는 대국민 사기극을 해보고 싶었다"는 류승완 감독. 그는 이 작품에 자신의 취향과 감독으로서의 세월을 모았다. 류승완의 집대성이라고 하면 그 역시 거짓말이겠지만 다음 단계의 류승완 감독을 알고자 하면 '다찌마와리'의 농담에 충분히 동참할 만하다.


6일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류승완 감독 사무실에는 그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을 법한 전성기 홍콩영화와 할리우드 고전 영화 포스터가 가득 붙어 있었다.

-전작 '짝패'도 그렇고 '다찌마와리'도 그렇고 90분 분량으로 짧은 편이다. 액션영화에 적합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나.


▶요새는 짧은 영화가 좋다. 긴 영화였던 '주먹이 운다' 이후 반작용 같기도 하다.

-'다찌마와리'는 차기작으로 알려졌던 '야차' 진행이 늦어지면서 워밍업으로 들어간 작품으로 알려졌는데.

▶그렇다. '야차'는 겨울 장면이 필수적이었는데 진행이 늦어지면서 겨울을 놓칠 것 같더라. 그래서 추석 연휴 동안 '다찌마와리' 시나리오를 썼다. 때문에 '다찌마와리'는 거창한 기획의도는 없다.(웃음) 그렇다고 쉬어가는 의미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영화촬영 현장은 순고한 노동의 현장이고, 이번은 더욱 전투적이었다.


-대중의 기호가 2000년 '다찌마와리' 때와는 많이 변했을 텐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대중의 기호를 여론조사해서 만들지는 않는다.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나 역시 궁금하다. 그 때와 변한 부분이 있다면 8년 후의 내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찌마와리'는 기시감의 영화이다. 캐릭터로 그렇고, 60~70년대 영화도 그렇고, 첩보영화, 홍콩영화 등이 녹아있는데.

▶맞다. 그런데 요즘은 내 영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겠다. 감으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 어떤 장면을 어떤 의도로 만들었다기보다는 내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예전에는 이 장면은 이런 의도로 찍었다며 나도 잘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곤 했다. 더 포장한 거지.

-겨울 촬영이라든지, 많은 것을 배웠다던데.

▶이번에 학습된 것이 정말 많다. 블록버스터급은 아니지만 30회로 회차와 예산을 맞추려 해서 A팀, B팀 체제도 연습해봤다. 큰 규모 현장을 운영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겨울촬영에 대한 노하우도 얻었고.

-'다찌마와리'는 두 가지 구조로 돼 있다. 스파이물과 홍콩 무술영화 '외팔이'를 차용한 부분이 전혀 다른 영화인 것 같은데 하나로 녹아있는데.

▶인터넷 버전과 같은 형식으로 같다면 90분 분량을 끌고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중간부터 장르의 전이를 시도했다. 일종의 버라이어티쇼 같은 느낌을 주려했다.

-다찌마와리라는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시리즈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던데.

▶다찌마와리가 교생으로 여고생 간다는 설정도 있었다. 원혼들이 덤비는데 말이 안통해서 갑갑해야 하는 이야기. 하지만 아직은 당면 과제가 먼저이다.

-주성치 주연의 '희극지왕'도 패러디돼 있는 듯한데.

▶누가 그 이야기를 하던데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영향 받은 것 같다. 또 이 영화는 '성치대형'과 떼놓을 수 없다. 연구소 장면은 주성치의 '북경특급'에서 명백히 영향을 받았다. 서극의 '칼'의 액션 흐름도 분명이 영향 받았고.

-김지운 감독은 '다찌마와리'가 '놈놈놈'에 이어 만주활극의 전통을 되살릴 것이라고 하던데. '외팔이' 구조는 '샤인'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놈놈놈'과 같은 편집실을 사용해서 둘이 자주 봤다. 뭐 그렇게 된다면 즐거운 상상일 것이다. 그래도 그쪽은 중국에서 찍었는데 우리는 영종도에서 찍었지 않냐.(웃음) 웨스턴 장르도 물론 차용했다. 웨스턴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고 '짝패'가 그런 구조였다. 기회가 닿는다면 웨스턴을 해보고 싶다.

-주연배우 중 황보라만 성우를 썼던데.

▶황보라도 무척 잘했다. 연기와 발성을 만화 '보노보노' 톤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하고보니 전체 분위기와 안맞더라. 그래서 여자들이 내는 소년 목소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성우분을 섭외했다.

-시사회에서 폭발적인 웃음보다는 킬킬 대는 웃음이 수시로 터졌다. 각자 웃음이 터지는 지점도 다르던데.

▶웃음이라는 게 특히 그런 것 같다. 이번 영화는 웃음을 철저히 기획했다기보다는 취향에 따라 즐기도록 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이명근 기자 qwe123@


-장난과 진담의 경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특히 그랬다. 한강을 압록강이라고 우기고 뒤에 자동차가 지나가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지점을 찾으려 했다. 여러 작품들의 내 무의식 속에서 체화된 느낌이랄까. 그래서 남들이 안 웃어도 혼자 웃기면 웃기는 장면이 맞고, 남들이 다 웃을 때 안웃기면 웃긴 장면이 맞으니 웃으라고 한 것이다.

-'쌈마이'라는 표현을 '웰메이트 키치'라는 장르로 규정한다면 이 영화를 '작정하고 만든 쌈마이'로 표현할 수 있나.

▶글쎄 쌈마이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가 내포된 것 같다. 자신이 쌈마이라고 자조하는 것과 그렇지 않으면서 강조하는 것. 둘 다 거짓인 것 같다. 나도 예전에는 스스로를 쌈마이라고 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한 영화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쌈마이 영화라는 규정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되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1류와 3류의 차이가 뭐냐고. 그런 표현은 언론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감독이자 영화에서 주연도 맡았다. 동생도 배우이고. 토크쇼에 출연해 영화 홍보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러다보니 공인 취급이라든지, 사생활 침해에 대한 생각이 많을 것 같은데.

▶일단 공인이라 하면 나는 국가에서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승범이와 관련해 사실 형이라고 대신 묻는 것에 짜증도 난다. 어떤 배우가 누구랑 사귀는 게 그렇게 꼭 밝혀야 하는 것인가. 그 때문에 개인의 삶이 파괴될 수도 있는데. 집에까지 잠복해서 사진 찍으려 하는 것을 보면 정말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번 양보해서 공인이라 하더라도 그게 쇠고기 문제보다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여성지에 결혼한다는 기사 났을 때는 정말 사실무근이었다. 승범이랑 효진이가 더 당황하더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업윤리인 것 같다.

-장면을 먼저 떠올리고 영화를 만드는지, 이야기를 완성하고 장면을 구상하는지.

▶요즘에는 후자이다. 갈수록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장면을 생각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요즘은 나만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찌마와리'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자막 사용도 이채롭다. 부인이자 제작자에 영광을 돌린다는 자막도 있고.

▶방송 매체에서 자막의 사용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금 세대에는 자막이 익숙하고 반응도 다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도 많았지만 관객의 반응을 보고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차기작 준비는 어떻게 되나.

▶일단 9월30일이 되어야 '야차' 진행정도가 결정될 것 같다. 요즘은 차기작 등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못하겠다. 내 말에 대한 책임이 스스로에 한계를 만드는 것 같더라. 성장했다기보다는 이 바닥을 좀 더 알게 됐다.(웃음) 그래도 지금까지 먹고 살기 위해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는 않았으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먹고 사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 치열하게 영화를 만들려 한다. 그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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