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음악적 사투, 현실과 추억 관통하는 정신

[강태규의 카페in가요]

강태규   |  2008.08.29 08:02


그는 여전히 신비롭다. 이제는 그 빛이 사그라질 만도 할 터인데 여전히 꺾이지 않는 강줄기처럼 곁을 휘감는다. 착실히 곡을 준비해 음반을 내고 원했던 활동을 마친 채 무대 밖으로 사라지는 일을 반복했을 뿐인데, 신비주의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그의 희미한 미소에서 오로지 서태지의 음악적 사투를 직감한다. 미디어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늘 겨냥되어 있을 정도로 서태지 음악보다 서태지 일상에 오히려 더 큰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울 만큼 그는 우리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군림하고 있다.


음악적 철학을 견지하고 한 치의 빈틈없이 음악적 행보를 써내려간 서태지를 곁에서 지켜보아온 음악 관계자들은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까다로움과 철저함에 대해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이내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논리적 행간을 읽어 내려가는 뮤지션 서태지의 음악적 욕심은 모두 팬들에 대한 예의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장 극적인 연출과 상상하기 힘든 무대를 끊임없이 창출하고 구현시키는 일들은 오로지 팬들을 섬기는 정신에서 비켜나 있지 않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서태지가 써내려간 행간이 아닐까 싶다.

지난 8월 15일 밤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록페스티벌 'ETPFEST(Eerie Taiji People Festival) 2008'을 통해 서태지는 화려한 컴백무대를 가졌다. 서태지가 무대 위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상념에 사로잡히자, 객석의 20, 30대 여성들은 이미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끼고 있었다. 서태지는 90년대와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현실과 추억을 관통하는 정신적 대변인이다.


가요기획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가수의 프로모션 홍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홍보 전략은 무리수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간 서태지가 보여주었던 빅뉴스들이 얄팍한 상술에 기댄 기획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무지다. 책임지지 못 할 공허한 발설인 셈이다. 그러한 대규모 프로모션은 음악적 통찰에서 비롯된다. 음악적 화두 없이 프로모션 홍보 진행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태지가 그간 문화대통령으로 일컬어질 만큼 기득권자의 수혜를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것 역시 모두 서태지의 음악적 힘의 몫이다.

오는 9월 27일 상암벌에서 펼쳐질 '더 그레이트 2008 서태지 심포니'가 초대형 오케스트라 협연의 스펙터클한 무대보다 더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 공연 준비 과정에 있다. 세계적인 명성의 클래식 거장 톨가 카쉬프와 로얄필하모닉을 서태지가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는 의미 심장한 일이다. 톨카 가쉬프는 이미 3개월 전 서울에 와 서태지와 회동을 해 전반적인 컨셉트를 잡고 관객을 어떻게 놀라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마쳤고 이후 서태지와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나누고 공동 작업을 하면서 공연의 스케치 작업을 끝냈다고 밝혔다.


서태지와 톨가 카쉬프는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레퍼토리를 편곡한 음악을 들으면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내놓을 만큼 공연의 진척은 깊숙이 이루어졌다. 톨가 카쉬프는 서태지가 감성적으로 예민하고 음악의 본질 자체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관습을 잘 이해하는 타고난 음악가여서 일하기가 수월했다고 덧붙였다. 서태지가 오케스트라 운용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갖추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이번 공연이 세계적인 거장을 끌어들인 서태지식 프로모션의 일환이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두문불출, 혼자 음악 만드는 일이 제일 편하다고 말하는 서태지의 음악적 사투가 가요계 꺼지지 않는 화두로 남은 유일한 이유다. 서태지의 음악이 음악 그 자체로의 존재감을 뛰어 넘어 문화 전방위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음악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서태지의 통찰력을 가늠케 한다. 그의 위력이 온전히 음악중심에서 비롯되는 일은 불황의 가요계에 솟구치는 위안이자 새로운 출구를 예고하는 것이다. <강태규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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