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오피스텔. 사채업자 이모씨가 연예인인 듯한 채무자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말투는 조용했지만 내용은 '협박'이나 다름없어 섬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씨는 "주로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회사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지만 간혹 가수나 탤런트 같은 연예인들이 찾아올 때가 있다"며 "대개는 돈을 잘 갚는 편이지만 사업에 실패하거나 인기가 떨어지면 연체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 경우 험악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회수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씨가 전하는 연예인들의 치명적 약점은 이미지. 인기로 먹고사는 탓에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걸 죽기보다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금회수가 잘 되지 않으면, 사채업자들은 촬영 현장이나 방송국을 슬며시 찾아가는데,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얼굴만 보여도 채무자인 연예인에게는 엄청난 압박이 된다.
모 탤런트의 경우 촬영현장에서 사채업자의 모습을 보고 수십 차례 NG 끝에 촬영을 포기하기도 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채무자가 집을 비운 사이 방문해 애완견의 귀에 스테이플러로 빚 독촉 메모를 찍어 붙였었던 일화와 함께 최근에는 인터넷 팬 카페에 채무자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글을 남기는 방법도 동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정도로 해결되지 않으면 가족을 협박하거나, 납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졌다. 채무자 자력으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주위의 도움을 강요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사 한 직원은 "연예인들이 빌린 사채를 받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낸 후, 사채업자들에게 야산으로 끌려가 폭행을 당하고 땅에 묻힌 경험이 있다"며 "결국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돈을 갚을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8일 자살로 충격을 안긴 고(故) 안재환 씨 역시 사채업자들에게 상당히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채업자는 "안 씨는 처음에는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여러 사업실패가 겹치며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사채를 쓸 수 밖에 없었다"며 "전체 사채규모는 모르지만 다수의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빌렸던 탓에 압박감이 심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