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제17회 전국외국인백일장에 참가한 외국인들 ⓒ이명근 기자
방송의 꽃 아나운서를 우리말 지킴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글 지킴이는 누가 돼야할까.
제 낯에 침뱉기이겠지만 참회의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을 한글 파괴의 주범으로 비난한다. 하지만 우리말을 바루는 첨병이어야 할 기자들부터 반성문을 써야 할 지경이다.
소위 메이저라 분류되는 신문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완제품으로 인쇄돼 독자들의 아침상에 배달되는 조간을 펼쳐들면 다된 밥 먹다 돌 씹는 기분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주요일간지는 4월26일자에서 우정은 교수가 외국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버지니아대 문리대 학장으로 임명됐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우장춘 박사의 딸’이라고 대형 제목으로 오보를 냈다. 그는 우용해 전 쌍용 회장의 딸. 이뿐 아니다. 본문에는 그를 지칭하며 ‘우 교수’와 ‘유 교수’가 혼용돼 불량품을 보는 기분을 더했다.
‘장이’와 ‘쟁이’는 엄연히 다르다. 장이는 ‘그것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쟁이는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1988년 1월19일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 고시에 따른 표준어규정에 따라, 당시 인기리에 KBS에서 방영 중이던 애니메이션 ‘개구장이 스머프’의 제목이 ‘개구쟁이 스머프’로 바뀐 일이 뚜렷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커피쟁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커피전문가를 이르는 조합어로 몇몇 신문들이 이 어색한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저것 차치하고 용례에 따르면 ‘커피장이’가 맞는 단어다. 이 신문은 9월25일자에 '커피쟁이'를 큰 활자로 부제를 뽑았다.
헷갈리기 쉬운 맞춤법이 어긋나는 것은 실수로 칠 수도 없을 정도다. 일정한 곳에 머무르다는 뜻의 ‘묵다’를 ‘묶다’로 쓰는 기자도 있다. 국립국어원이 정한 외래어표기법이 엄연히 있음에도 한 신문안에서도 기사마다 제각각이다. ‘프로포즈’가 아니라 ‘프러포즈’다. 2004년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 ‘두번째 프로포즈’가 ‘두번째 프러포즈’로 제목을 공개적으로 정정하는 ‘대형’ 해프닝이 있었다. 이후에도 무신경함을 넘어선 무지는 그대로다.
사람이 쓰는 일이라 실수가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신문사에서는 기자가 쓰면, 데스크를 거치고, 교열(어문)을 거치고, 또 편집을 거친다. 그런데 교열의 자리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신문이 보루가 돼야 할 일을 생각하면 엄연한 판단착오다.
40년간 한국일보에서 기자를 지낸 고 정달영 주필은 “교열부는 거의 국문학자 수준이다. 이들이 한국의 신문과 기사와 국어를 지켜낸 노력을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또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국어’, 그것이 오늘의 신문기사”라며 “국어에 대한 책임은 이제 기자가 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562돌 한글날, 고생하는 한글에 죄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