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정세 ⓒ송희진 기자 songhj@
'행인2'가 그에게 주어진 첫 역할이었다. 아무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지금의 배우 오정세를 만들었다.
최근 SBS 월화드라마 '타짜'로 드라마에 첫 발을 내딛은 오정세. 그는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영화 쟁이'다.
1997년 영화 '아버지'의 행인2를 시작으로 '귀신이 산다' '오브라더스' '극락도살인사건' '라듸오 데이즈' 등 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실력을 쌓았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어느새 A4 한 장을 빼곡히 채울 정도가 됐다.
이만하면 연기에 달인이 됐을 법도 하다. 그런 그가 '타짜'를 통해 드라마라는 세계에 새롭게 도전했다. 똑같은 연기를 하는 건데 뭐가 다를까라고 생각했던 그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두 세계는 달라도 참 많이 달랐다.
"영화와는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많이 적응해 가고 있는데,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찍자고 감독님께 말씀을 드리는데, 드라마는 워낙 속도가 빨라 첫 신이 오케이면 그냥 넘어간다. 방심하다가는 큰일난다."
드라마 세계는 오정세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극중 오정세가 맡은 광태가 비중이 그리 큰 인물은 아니었지만, 주연배우를 연기하는 듯 열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첫 드라마 연기지 않나. 완벽하진 못해도 최상의 것을 보여드려야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촬영이 들어가기 전 준비하는데 솔직히 쉽지 않다. 영화는 대본이 다 나와 있어 인물 분석을 심층적으로 하는데 드라마 대본은 그렇지 않다."
사실 드라마 촬영장에서 '쪽대본'은 쉽게 만날 수 있다. '타짜' 역시 쪽대본까지는 아니지만, 매회 대본이 나와야 자신의 역할이 향후 어떻게 그려질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에 오정세는 연습하는 게 쉽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광태는 이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연습했는데 막상 나온 대본에서 전혀 다르면 다시 백지에서 다시 연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 오정세 ⓒ송희진 기자 songhj@
물론 고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타짜'를 통해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간다는 의미를 실감하고 있다. 아무리 영화 관객 수가 많아졌다지만 드라마처럼 대중적일 순 없다.
"개인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없었으면 좋겠다. 내 삶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더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해 대중적 인지도가 필요하다. 정말 아이러니 아닌가. 하하하."
오정세는 사생활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결혼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총각으로 오해한다. 77년생 남자가, 그것도 영화배우가 설마 벌써 결혼했겠냐며 아무도 그에게 결혼여부를 묻지 않았다.
"아내는 유명세 같은 거에 굉장히 무딘 사람이다. 그냥 바쁘면 내가 나온 드라마를 못 볼 수도 있는 그런 사람. 오히려 그런 게 좋다. TV에 나왔다고 호들갑 떨기보다는.(웃음) 또 종종 결혼했냐고 묻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재밌다."
극중 오정세는 난숙(한예슬 분)의 운명을 바꿔놓는 결정적 인물이다. 악인은 아니지만 도박 때문에 동생을 팔아넘긴다. 그래서 가슴 한구석에 깊은 상처가 있다.
"연기에 깊이를 제대로 담아내야 할텐데"라며 "연기는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렵다"는 오정세. '타짜'는 그에게 활동 스펙트럼을 넓히는 시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