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진, 악역속에 감춰진 그의 억척인생

[이수연의 클릭!방송계]

이수연   |  2008.10.21 11:15


다음은 어떤 부류의 사람에 대한 이미지일까요? 맞춰보시라!

첫째, 쭉쭉 뻗은 대나무처럼, 고고한 학처럼 키가 훤칠하다.


둘째, 찹쌀떡처럼 쫀득쫀득 탱탱한 피부, 찹살떡에 묻혀있는 밀가루처럼 뽀송뽀송한 피부를 가졌다.

셋째, 어릴 때부터 피아노 레슨 받은 것처럼 손가락이 가늘고 길다.


자, 이 세 가지의 특징을 보면, 어떤 글자가 머릿속에 휘휘 날아다니지 않는가? 나에겐 ‘부잣집 도련님’이란 글자가 떠오른다. 뭐, 소설에, 드라마에 주로 등장하는 ‘부잣집 도련님’들이 이런 이미지라 생긴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남자를 보면 부유하게 인생의 굴곡없이 잘 자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 처음에 이 남자, 탤런트 박해진을 봤을 때도 역시 딱 ‘부잣집 도련님’ 같았다. 일단 앞의 세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녹화장에서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고, 아이들 배꼽인사 뺨칠 정도로 정자세로 반듯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음~ 잘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군’이란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보다.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그의 역할 역시 ‘부잣집 도련님’이니까. 물론 잘 자란 도련님이라기보단 치졸하고 못된 도련님이긴 하지만. 어쨌든 박해진, 그를 보면 ‘에덴의 동쪽’ 드라마 속의 자신이 태어난 가난한 이미숙 아들보다는 부잣집 조민기 아들이 더 잘 어울리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정말로 자기 손으로 코 한 번 안 풀고 생전 고생이라는 걸 모르고 자랐을 것 같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이 의견에 동의하시는 분들이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두둥~ 기대하시라. 반전이 있으니까. 실제로 그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서 열심히 산 억척 청년이다. 자신의 입으로 연예계 데뷔하기 전에 했던 일들을 줄줄이 소시지처럼 고백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열심히 일한 이유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성인이 됐으니까 부모님 도움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보기 위해였단다.

그리고 제일 처음 선택한 곳은 텔레비전 공장이었다. 그곳에서 한 일은 텔레비전이 여러 부품들이 각자 자리에 끼워져서 전달되면 뚜껑 본체를 뒤집어 씌우는 일이었다. 믿어지는가? 그렇게 곱상한 꽃미남 도련님이 공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게 아니라, 갓 스무살 된 청년이면 보통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같은 젊은이들의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담 공장에서 끝이냐? 아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다음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렇게 얼마간의 돈을 모아서 다시 시작한 일이 옷장사였다. 물론 옷장사도 처음부터 사장님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점원부터 차곡차곡 일을 배워갔다고. 옷장사 일이 예쁜 옷, 유행하는 옷들 보면서 편했을 것 같지만 실제론 육체적으로 아주 힘든 일이었단다. 옷장사하는 두 달만에 20㎏이나 빠졌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어떤가? 박해진에 대한 생각이 싹 바뀌지 않는가.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에서 인생의 고단함이 뭔지 아는 억척 청년으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연하남’ 아니냐며 말 시키고 사진 찍어달라고 하는 어르신 팬들 한 분 한 분에게 일일이 다정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 그 모습이 가식적이지 않고 진실해보였던 이유 말이다.

백조는 우아하게 물 위에 떠있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물속에선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다들 아실 것이다. 문득 좋은 배우가 되려면 그 인생도 백조와 같아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론 우아해 보이지만, 실제 삶은 백조 다리만큼 열심히 살아봤어야 되지 않을까 이 말이다. 왜? 그래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찐~하게 연기할 수 있을테니까. 억척 청년 박해진, ‘에덴의 동쪽’에서 지금은 다른 사람 상처주기 일삼는 나쁜 도련님이지만, 자신의 비밀을 깨달은 후엔 진지한 내면을 표현하게 될 깊이 있는 연기를 기대해본다.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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