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 다른 드라마가 평일 밤을 접수했다. 화제 속에 방송중인 MBC 월화드라마 '에덴의 동쪽'(극본 연출)과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극본 홍진아 홍자람·연출 이재규)다.
1970년대 어두웠던 시대를 비장미가 철철 넘치는 대사와 화면으로 그려낸 '에덴의 동쪽'이 어디선가 본 듯한 전형성에 기대 있다면 '베토벤 바이러스는 색다른 시도, 색다른 기법으로 시청자들을 열광케 한다. 너무도 다른 두 작품이 동시에 어필하는 이유는 뭘까?
전형성과 비장미의 절정.. '에덴의 동쪽'
'에덴의 동쪽'은 격동의 세월을 그린 시대극이다. 1960년대 탄광촌에서 시작해 1980년에 이르는 사회의 혼란기를 주요 배경으로 삼았다. 혈연과 애정으로 꼬이고 꼬인 젊은이들의 사랑과 야망, 복수가 화려한 물량공세 속에 담겼다. 30% 가까운 시청률 속에 승승장구 중이다.
원수의 아들과 뒤바뀐 아들, 혹은 동생이란 기막힌 설정으로 출발한 '에덴의 동쪽'은 결코 세련되지 않다. 출생의 비밀, 불치병, 복수극 같은 옛 드라마의 클리셰가 모두 담겼다. 탄광촌·판자촌과 고급 주택가의 대비 속에 인물들은 복수와 성공을 위해 질주하고,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울부짖고 고통받는다. 모두가 비극에 빠진, 극단의 비장미다.
매회 극단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문어체 대사 역시 '에덴의 동쪽'의 특징이다. "죽은 너라도 무덤에서 꺼내서 그 목을 자르고 복수하고 말테니까", "내가 예쁘다고,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말해", "니 눈은 정말 예쁘다, 더럽히지마" 등 명대사 아닌 명대사가 회자되고 있다.
'에덴의 동쪽'은 다양한 캐릭터와 소재, 기법으로 승부하는 최근 드라마의 경향에 역행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20%대 후반 시청률을 유지하는 복고풍 시대극의 인기 행진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MBC 드라마 관계자는 "새로운 것만 찾다 시청자들의 요구를 못 볼 때가 있다. '에덴의 동쪽'은 중년시청자들이 주도권을 쥔 요즘의 수요를 영민하게 짚어 낸 기획"이라며 "스타 배우들의 무게감, 맛깔난 대사 등이 큰 일조를 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런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나.. '베토벤 바이러스'
'베토벤 바이러스'를 설명하는 가장 무난한 수식어는 국내 최초의 휴먼 음악드라마라는 자체 타이틀이다. 그러나 최근 20%를 돌파하며 신드롬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작품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온갖 새로움으로 가득한 '베토벤 바이러스'는 그럼에도 신구세대가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보편성을 갖춘 작품으로 꼽힌다. 독특하지만 있음직한 캐릭터들, 클래식 음악을 통해 이야기하는 보통 사람들의 꿈, 완성도 높은 연주 화면 모두가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건 '강마에' 김명민을 필두로 한 개성만점 캐릭터들이다. 꼬장꼬장한 독설 아래 천재로 태어나지 못한 열등감을 숨기고 있는 강마에, '개똥' 같은 클래식이 싫었지만 뒤늦게 음악에 눈뜬 천재 강건우(장근석 분), 첼로를 들고서야 자신의 이름을 찾은 아줌마 정희연(송옥숙 분), 음악에 대한 꿈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했던 만년과장 박혁권(정석용 분) 등.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완소 캐릭터들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에 더욱 생동감있게 살아난다.
클래식이란 생소한 소재 덕에 기획 단계에서는 우려도 컸다. 배우는 대사를 외우기 전 음악을 외우고 악기를 연습해야 하고, 제작진은 배우들의 연주 장면과 음악을 맞추기 위해 몇 배의 공을 들인다.
그러나 멀뚱히 악기를 들고 나타난 보통 사람들이 들려주는 '꿈'이란 보편적인 소재는 '베토벤 바이러스'에 그 자체로 강력한 드라마를 부여했다. 뜬금없게만 느껴졌던 클래식이란 꿈은 경찰이란 직업, 가족의 생계, 엄마의 역할이란 현실과 맞물려 더욱 소중하고 눈물겹게 다가온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연기와 대본, 연출이란 삼박자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웰메이드 드라마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한 연예 관계자는 "'베토벤 바이러스'는 모든 것이 신선하다. 캐릭터며 몇 분을 대사없이 연주만으로 채우는 연출까지 흔한 것이 없다"며 "그러나 이 모두가 보편적인 이야기 속에 녹아나는 연출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