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 "난 그냥 노래할 줄 알았던 가수고 싶다"(일문일답)

이수현 기자  |  2008.10.23 10:00


마흔 살, 데뷔 19년 차 경력의 가수 신승훈. 정규 앨범이 아닌 프로젝트 연작 앨범이라는 일탈로 2년 만에 팬들을 찾은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신승훈은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 발표한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승훈은 본격적으로 취재진과 인터뷰를 나누기 전 "가요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며 "활동한지 얼마 되지 않은 가수들과 가요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우문우답(愚問愚答) 밖에 나오지 않겠느냐. 나는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았다"고 이날 기자들과의 만남을 준비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신승훈이 취재진과 나눈 일문일답.

-동료들이 앨범 작업 같이 하자고 제안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원래는 편곡을 마치기 전까지는 작업물을 남에게 안 들려주는 스타일이다. 내 음악은 멜로디가 강하다 보니까 멜로디에 현혹될 수 있다. 거기에 내 목소리까지 들어가면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목소리기 때문에 그냥 좋다고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인형이라고 치면 한 쪽 팔도 다 안 만들어 놨는데 그냥 좋다고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하지만 이번에는 몸체가 다 나오기도 전부터 지인들 4, 50명에게 들려줬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떤 곡이 좋은지 물어보기도 했다.

김형석, 방시혁, 황찬익, 황세준 등 음악하는 지인들에게 이번 앨범을 들려줬더니 그들이 인정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이승철의 '열을 세어 보아요'라는 노래를 작업한 이현승이라는 친구가 '앞으로는 괜히 저희 앞에서 앓는 소리 하지 마시라'며 다음에는 같이 작업 하자고 하더라.

김형석은 MBC FM4U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에 출연해 이문세가 '신승훈이 술 사준다고 했냐'는 말을 할 정도로 극찬을 해줬고 또 친구로서 너무 잘한다고 해서 고마웠다.


평론가 임진모씨는 최근에 만났는데 '친분이 있어서 객관적으로 평론하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호평할 수 있도록 좋은 앨범이 나와서 다행이고 연작의 다음 앨범도 기대된다'고 말해줬다.

-'라디오 웨이브'는 기존의 신승훈표 음악보다 덜어냈다는 느낌이 강하다.

▶내가 음악적으로 올라가려고 했으면 팝페라를 했거나 오케스트라를 했어야하지 않겠는가. 신승훈의 서정성이나 처절함을 좋아했던 사람에게는 이번 앨범이 의외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11집을 내기 전에 선보인 일탈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다. 쇼케이스 때도 밝혔지만 이번 앨범은 나사를 꽉 조이지 않고 느슨하게 풀어놓은 앨범이다.

사람들은 '신승훈이 발라드에 안주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한 장르를 고집스럽게 하는 게 장인정신이 아닌 고집불통으로 보여지는 시대라서 힘들었다. 고흐나 고갱의 화풍이 존재하는 것처럼 노래를 들었을 때 '신승훈풍'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고흐나 고갱에게 피카소처럼 하지 못한다고 뭐라고 할 수 없지 않나.

대중가수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내 노래를 평가받아야 하는데 원래의 내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이번 앨범도 괜찮다고 해서 다행이다.

-이번 앨범 음반 판매량이나 음원 순위 등의 성적은 만족스러운가.

▶정규 앨범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는 11월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매년 있는 행사인 테마콘서트에 참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콘서트는 '더 신승훈 쇼'처럼 내가 처음부터 기획하는 공연이 아니라 다른 공연 업체에서 무대를 만들어주면 가서 노래하는 공연이다.

옛날 같았으면 '음향이 제대로 나올까' 하는 걱정 때문에 안 했을 테지만 팬들은 그런 무대라도 좋으니까 나오라고 했다. 나 역시도 함께 흥겨우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흔쾌히 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번 테마 콘서트를 '더 신승훈 쇼'처럼 평가하고 기대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이번 앨범도 그런 의미에서 일맥상통한다.

-이번 앨범은 최근 자신의 마음 상태가 반영된 음악 스타일인가.

▶이번 앨범은 음악을 대하는 마음 자세부터 달라진 앨범이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슬럼프 없는 가수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매 정규앨범 작업을 할 때마다 슬럼프에 빠진다. 예를 들면 미국의 알앤비 가수 에릭 베넷의 '허리케인' 앨범을 들었는데 이 사람이 노래도 잘 부르는데 곡도 기가 막히게 쓰는 거다. '이런 코드는 어디서 나온 거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에릭 베넷이 직접 만든 거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는 이런 걸 못 만드나' 하고 슬럼프에 빠지는 거다. 다만 사람들이 내가 슬럼프인 줄 모르는 이유는 그 시기가 나의 잠적기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부담감 없이 작업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윈터 스페셜 앨범이라는 형태로 앨범을 냈었다. 일본 디즈니랜드에서 10분 만에 타이틀곡 '송 포 유'를 만들고, 또 나는 리메이크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일본곡 '사요나라'를 리메이크해서 수록하다 보니 창작의 폭이 확 넓어졌다.

사실 나에게는 '신승훈의 음악'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는데 팬들은 자꾸 나와달라고 하고. 정규 앨범이었다면 내년 정도에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싱글이나 미니앨범 같은 형태가 유행하면서 나도 편하게 연작으로 3장 연달아서 내는 앨범을 구상할 수 있었다.

-가요계에서 중견 가수들이 별로 없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최근에는 가수뿐만 아니라 모든 매체들이 5년 지난 가수들의 설 자리를 안 만들어 주더라. 그래서 KBS 1TV '콘서트7080'이 생겼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근황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다 나와서 노래도 하고 앨범도 낸다는 소식을 전해주더라.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걸 알릴만한 매체가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최근 활동이 뜸했던 가수의 근황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돼서는 안 된다. 가요계의 역사를 짚어주는 프로그램이 돼야 한다.

5년 정도가 지나면 방송 환경에 적응 되면서 공연을 위해 어디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수가 그런 생각을 가질 때 쯤에는 대중들이 가수를 버린다. 또 다른 좋아할 만한 가수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나이를 먹으면서 목소리의 변화에 따라 곡을 쓴다고 하던데 본인도 그런가.

▶그렇지 않다. 목소리가 안 변하는 것 같다.

-5년이 넘게 활동했지만 관객들이 외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집까지 성공했기 때문에 4집을 내면서 100만 장 판매를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음반을 3장 이상 연속으로 히트한 가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의리있는 팬이 많았다.

사실 내 노래는 그냥 발라드라기에는 극단적이고 처절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유행하는 부드러운 멜로디가 발라드라고 하지만 힙합 마니아, 록 마니아처럼 나에게는 발라드 마니아가 있을 수 있는 거다. 또 나 스스로 곡을 만들기 때문에 팬들은 '이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주기도 하고.

팬들과 나 사이에만 쓰이는 암호 같은 말들이 있다. 3집을 내던 당시 팬들이 '왜 팬레터에 답장을 안 해주느냐'고 묻기에 '앨범으로 답장했다'고 대답을 했었다. 이 말이 팬들에게는 감동스러웠는지 다음부터는 내 앨범을 '오빠가 내는 몇 번째 답장'이라고 부르더라. 9집 제목이 '나인쓰 리플라이(9th reply)'인 건 이와 같은 이유다.

또 '땡깡 앙코르'라는 게 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철거를 시작했는데도 3000명의 팬들이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나를 다시 불러내서 스태프들 사이에서 반주도 없이 노래 한 곡 부르게 하고 '제발 이제 집에 돌아가라'고 만들게 하는 우리 팬들의 고집.

이렇게 나에게는 든든한 팬들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팬들만 보게 된다면 나는 여전히 예전처럼 인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그러면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신승훈 발라드가 다른 발라드곡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나는 '발라드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장기 집권했다. 문제는 그 별명을 누가 나에게 붙여줬냐는 것이다. 일본에 갔더니 록, 하우스, 맘보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데 왜 나를 발라드 황제라고 하냐고 묻더라. 생각해보면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댄스 가수가 성행하면서 발라드 가수가 별로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명칭은 왕자, 황제, 황태자 등 다양하게 붙여지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는 '신승훈은 발라드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선보였던 하우스, 댄스, 모던록 등 장르의 곡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치부해버리고 '보이지 않는 사랑',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같은 곡만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노래할 줄 알았던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

-일본에서의 인기를 얻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몸으로 뛰었다. 미국 가수 우리나라에 오면 음악 프로그램에서 오프닝만 하는 것처럼 일본도 똑같다. 일본어도 못하고 연예프로그램에서 그냥 공연 정보만 살짝 나오고 나를 일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첫 공연을 노개런티로 가면서 함께 일하던 밴드와 스태프를 그대로 쓰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렇게 공연을 시작한 뒤 입소문을 탄 것이다. 공연이 재미있다면서 자신의 딸을 데리고 오고, 또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오고.

그러다가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더라. 처음에는 다들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만 했지만 나중에는 한국을 이야기할 때 신승훈이라는 이름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 대중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돼 동방신기나 빅뱅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또 한 가지는 내가 순순히 앙코르에 응했기 때문이다. 일본 가수들은 앙코르를 잘 하지 않는지 관객들이 앙코르를 요청하고 내가 나갔더니 나에게 '야사시이(착하다)'라고 하더라. 일본에서는 한국말로 노래해주는 걸 더 좋아한다. 스팅이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보다 영어로 불러주는 걸 더 좋아하는 것처럼 일본사람들에게 나는 해외 아티스트다.

-신인들을 양성한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진척 됐는가.

▶이제 내가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신인을 완벽하게 키울 시간이 없다. 신인을 키우고 싶은 이유는 내가 만들어놓고 나한테는 안 어울렸던 곡들을 다른 사람에게 부르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에 프로듀서 체제가 확실히 자리 잡히면 하고 싶다. 요즘 양현석이나 박진영을 보면 프로듀서가 아니라 사업가로 보지 않나.

-발라드가 본인의 길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모르는 것이다. 이번 앨범을 일탈이라고 표현했는데 일탈이라는 것은 돌아올 길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멀리 떨어져서 보는 나 자신이다. 일본에 있으면 한국의 신승훈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처럼. 이번 앨범에서 이런 일탈을 선보였다면 다음 앨범에서는 또 다르게 일탈하면서 나를 떨어져서 보게 됐을 때 좋은 길이 보인다면 11집을 낼 것이다. 예전부터 나의 터닝포인트는 결혼과 10집으로 잡겠다고 이야기해왔다. 결혼은 아직 하지 못했지만 10집까지 냈으니 달라져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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