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왼쪽) 감독과 김기덕 감독
한국의 대표적 작가주의 감독들이 제작자로 변신했다.
이들 대부분 자신의 세계관이 뚜렷하고, 이를 오롯이 영화 속에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배 감독들을 위해 영화 제작자로 나선 이들의 행보는 더욱 눈에 띈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달 개봉한 '미쓰 홍당무'의 제작을 맡았다. 이경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박 감독이 처음으로 제작자로 나선 작품이다. 김기덕 감독도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의 제작자로 나섰다.
스타 감독의 제작자 변신은 처음이 아니다. '투캅스'의 강우석 감독은 1993년 강우석프로덕션(현 시네마서비스)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나섰다. 그가 제작한 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 올해만 해도 '모던 보이'와 '신기전'을 제작했다.
'쉬리'의 강제규 감독도 '은행나무 침대2-단적비연수', '안녕, 형아'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강우석, 강제규 감독과 박찬욱, 김기덕 감독이 다른 점은 영화 제작에 뛰어든 계기다. 강우석, 강제규 감독이 투자의 개념으로 영화 제작에 접근했다면, 박찬욱,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후예를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자처하면서 제작에 뛰어들었다.
박 감독과 이 감독의 인연은 2004년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시작됐다. 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박 감독은 이 감독의 '잘 돼가? 무엇이든'을 눈여겨봤고, 이후 함께 작업할 것을 제의했다. 이 감독은 박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스크립터로 합류했다.
이 인연 때문에 박 감독이 선뜻 다른 사람의 영화에 제작자로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영화 외에 제작을 맡지 않았던 박 감독이기에 이 결정이 더욱 눈에 띈다.
장 감독은 김 감독의 '제자'다. 장 감독은 2004년 개봉한 '사마리아' 연출부에 참여하면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이후 김 감독의 '활'과 '시간' 등의 작품에 참여하면서 영화를 배워나갔다. 김 감독을 보면서 영화를 배운 장 감독은 결국 김 감독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영화는 영화다'로 첫 메가폰을 잡았다.
김 감독이 자신의 영화가 아닌 영화 제작자로 나선 것은 두 번째. 지난해 전재홍 감독의 '아름답다'도 김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전 감독 역시 김기덕 감독과 일하던 '제자'다. 김 감독이 계속해서 후배 감독의 영화를 지원하는 것은 함께 일하던 조감독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새 감독을 발굴하겠다는 이들 작가주의 감독의 의지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영화다'는 전국 관객 140만명을 동원했고, '미쓰 홍당무' 역시 50만 관객을 돌파해 의미 있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또 충무로에서는 올해 2명의 걸출한 신인 감독을 얻었다는 평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결국 두 작가주의 감독은 영화 제작을 통해 3마리 토끼를 잡았다. 새로운 감독을 데뷔시켰고,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화 스타일과 세계관을 전수할 감독을 만들어내 자기 영화세계를 확장시켰다. 이것이 후배 감독을 위한 모체를 자처한 두 감독에 주목해야 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