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달을 남기고 2008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올 한해 영화계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남겼다.
최대 화두는 2년이 지나도 수그러지지 않은 '위기'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소식과 결실 또한 많았던 한 해였다. 무엇보다 2008년은 그 어느 때보다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이 두루 등장, 한국영화의 미래를 밝혔다. 위기라는 말이 잔뜩 풀린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아 있던 희망을 재조명한다.
#나홍진-장훈-이경미, 신인 감독 3인방 영화계를 빛내다
올 초 혜성처럼 등장한 '추격자'는 관객과 평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추격자'는 시사회 이전까지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개봉 첫 주에는 할리우드 영화 '점퍼'에 뒤져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끊임없는 입소문에 힘입어 5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뿐더러 할리우드 리메이크 소식까지 풍성한 화제를 낳은 '추격자'의 중심에는 나홍진 감독이 있다.
나홍진 감독은 '완벽한 도미요리'와 '한' 등으로 독립영화계에서 한창 주목을 끌던 감독이었다. 그런 나홍진 감독이지만 상업 영화 데뷔는 쉽지 않았다. 김윤석과 하정우가 합류했지만 거의 매일 이어지는 밤샘 촬영은 모두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감독과 배우, 스태프가 혼연일체가 돼 완성한 '추격자'는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밀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과 미치도록 잡고 싶은 범인에 대한 증오가 스릴러 형식과 만나 관객을 무장해제시켰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로 올해 각종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감독상을 각각 두 차례 수상, 한국 영화 최고 기대주로 단숨에 떠올랐다.
6억5000만원의 제작비로 15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 '사마리아'와 '활', '빈집'에서 김기덕 감독의 스태프로 공력을 쌓은 그는 저예산 영화가 살아남는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소지섭과 강지환이라는 스타들이 출연료 대신 제작비를 투자할 정도로 영화에 확신을 준 것은 장훈 감독의 공이 크다. 원래 배우를 꿈꾸는 깡패와 깡패보다 지독한 배우의 만남이라는 '영화는 영화다'의 설정은 김기덕 감독의 몫이었다.
하지만 장훈 감독은 예술적인 향기가 강한 원래 시나리오를 보다 상업적으로 각색, 대중성과 예술성의 절묘한 줄타기를 이뤘다.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또한 올 한해 빼놓을 수 없는 신인이다. 나홍진 감독과 2004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입상했던 실력파다. 장훈 감독에게 김기덕 감독이 있듯이 이경미 감독에겐 박찬욱 감독이 있었다.
이경미 감독은 당시 미쟝센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박찬욱 감독의 제의로 '친절한 금자씨'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데뷔를 준비했다.
이경미 감독은 '미쓰 홍당무'에서 외모 콤플렉스로 인한 왕따, 그로 인한 과대 망상증과 집착 등을 신랄한 농담과 왕따의 연대라는 기묘한 콤비로 풀어내 호평을 샀다. 비록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경미 감독은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과 각본상을 거머쥐며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중고 신인과 알짜 신인의 발견
올 한해 스크린에는 그동안 TV 드라마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스타와 연기력과 매력을 겸비한 신인이 두루 제 몫을 해냈다.
영평상과 청룡영화상에서 각각 남우주연상과 신인상을 수상한 소지섭은 '영화는 영화다'로 영화배우로서 가능성을 세상에 알렸다. '발리에서 생긴 일'과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스타덤에 올랐던 그는 '영화는 영화다'로 공익근무 소집 해제 후 연기 복귀에 대한 불안감을 말끔히 씻었다.
장쯔이와 호흡을 맞추는 '소피의 복수'로 합중 합작영화까지 도전하는 그가 장동건 정우성 조인성을 잇는 스타 배우 계열에 합류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신민아는 중고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함이 있지만 '고고70'이 그녀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TV 드라마와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신민아는 하지만 자신의 가능성을 채 보여주지는 못했다.
'고고70'에서 춤과 연기력, 매력을 함께 보여준 그녀는 주지훈과 새 영화 '키친'에 출연하면서 여배우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전'의 한은정, '뜨거운 것이 좋아'의 김민희 또한 안방극장과는 다른 매력을 스크린에서 보여줬다. 특히 김민희는 그동안 어깨를 무겁게 했던 연기력 논란을 '뜨거운 것이 좋아'로 한 방에 날려 보냈다.
한예슬도 안방극장에서 스크린으로 행복하게 자리를 옮긴 사례 중 하나이다. 비록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용의주도 미스신'으로 백상, 대종상,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을 거머쥐며 로맨틱 코미디에 발군의 실력을 입증했다.
'앤티크'의 주지훈과 김재욱 또한 외모와 실력을 온전하게 드러내 향후 영화계를 풍성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알짜 신인들의 도전도 대단했다.
실력파 인디밴드의 멤버인 차승우는 '고고70'에서 실제와 연기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구사, 류승범을 잇는 차세대 개성파 배우로 두각을 드러냈다. '미쓰 홍당무'의 서우와 황우슬혜 또한 재능 있는 신인을 보는 즐거움을 관객에 선사했다.
김남길은 '강철중'과 '모던보이' '미인도'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냈다.
한편 올해는 제작사로 두각을 드러낸 곳도 있다.
그동안 해외 영화 수입 개봉에 주안점을 뒀던 스폰지는 올해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와 김기덕 감독의 '비몽', 전도연 하정우 주연의 '멋진 하루'를 제작, 개봉시켰다. 저예산으로 제작한 이들 작품은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한국영화계에 톱스타가 출연하는 저예산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스폰지는 내년에도 올해 같은 방식으로 영화 제작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이 예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