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외면이 안타까운 '명품영화'들

김현록 기자  |  2008.12.02 08:47


영화계를 두고 '불황'과 '한파'라는 수식어가 1년 내내 떠나지 않았던 2008년이 저물고 있다. 수십 편의 영화가 만들어져 관객과 만났지만 흑자를 본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둔 올해의 영화계는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그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관객들의 외면이 아쉬웠던 '명품 영화'를 돌아보려 한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소리없는 사라짐이 안타까웠던 6편의 영화들을 돌아본다.

'사과'.. 절절한 공감의 멜로


영화 '사과'는 제작부터 개봉까지 4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개봉 전 이미 해외 영화제에서부터 인정받은 이 작품을 그에 합당한 규모로 개봉하겠다는 제작사의 욕심 덕에 영화는 2008년에야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4년의 세월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강이관 감독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30대 여자 현정에게 벌어진 두 남자와의 이별과 만남을 절제된 필치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 시기를 보낸 남녀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보편적인 이야기와 연기파 배우들의 호소력 있는 연기는 더욱 절절하게 관객들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흥행 결과는 다소 아쉬웠다. 어렵게 많은 극장을 잡았지만 3주 만에 와이드 개봉관에서 내려와야 했다. 작은 영화이기 싫어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사과'는 끝내 소수의 관객에게 깊이 기억되는 영화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미쓰 홍당무'.. 사려깊은 위로담

그녀의 삶은 하루하루가 '삽질의 연속'이다. 시도 때도 없이 벌개지는 얼굴과 촌스러운 패션감각, 가까이 하기 힘든 모난 성격에다 매번 김칫국만 들이마시는 안쓰러운 짝사랑에 빠져있다. 바로 그녀가 '미쓰 홍당무' 주인공 양미숙이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그녀를 눈치없이 놀려대거나 섣불리 동정하지 않는다. 신예 이경미 감독은 다만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희대의 비호감 캐릭터를, 그녀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엇박자 삶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관객은 실소하다가 때로는 폭소하다가 결국 코 끝이 시큰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수년 전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며 팍팍한 삶에 위로를 받았던 관객이라면, '미쓰 홍당무'를 보며 그와는 다른 종류의 다른 위안을 얻을 수 있을 터다.

패셔니스타 공효진의 눈물겨운 촌뜨기 변신부터가 화제가 될 만큼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한 공효진을 비롯해 서우, 황우슬혜 등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지만 흥행에서는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다.

'고고70'... 화려한 열정의 무대

공연 실황을 DVD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1970년대 젊은이들의 밤 문화를 지배했던 고고밴드의 실화를 그려낸 '고고70'의 장면 장면은 활력이 넘쳤다. 영화는 음악하는 딴따라들을 퇴폐문화 조장으로 얼마든지 잡아넣을 수 있었던 시대, 야간 통행금지를 피해 신나게 노는 것이 반항이었고 투쟁이었던 시대를 화려하게 재현한다.

귓전을 울리는 사운드, 10명의 촬영감독이 한꺼번에 투입된 화면은 그 시대와 무대의 화려함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되살린다. 뮤지컬 스타로 이미 이름 높은 조승우, 그간의 조신한 이미지를 벗은 신민아, 실제 밴드 문샤이너스의 리더로 넘치는 끼를 보인 차승우 등은 주체 못할 젊음을 신명나게 그려보였다.

그러나 관객의 반응은 냉담했다. 사라진 추석 특수, 관객들의 한국영화 외면 속에 '고고 70'은 그 에너지를 펼쳐보일 새도 없이 분루를 삼켰다.

'멋진 하루'.. 하정우가 돋보여

재회한 옛 연인들의 어느 하루를 담은 '멋진 하루'는 꽤 반어적인 제목이다.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내내 삐걱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그려낸다.

떼인 돈 300만원을 받겠다고 무작정 옛 연인을 찾아간 희수(전도연 분)나, 다른 여자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조금씩 받은 돈으로 300만원을 마련해 주겠다는 병운(하정우 분)이나, 팍팍한 2008년의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30대. 여자에게서 남자로 카메라 초점을 바꿔 맞춘 이윤기 감독은 이들의 하루동안의 소동과 한국을 살아가는 30대의 현실을 담담하게 담았다.

영화는 음악까지 거의 나오지 않을 만큼 건조하기 그지없는 회색 화면을 자랑한다. 그러나 시종일관 피식 터지는 웃음, 결코 비난할 수 없는 두 주인공에 대한 묘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넉살과 뻔뻔함을 지닌 백수 병운 역의 하정우는 연기파 전도연의 곁에서도 두드러질 만큼 발군이다.

'다찌마와 리'.. 오버액션의 극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대한 관객의 호오는 엇갈렸다. 임원희의 재기발랄한 오버액션,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라면 비장미가 넘쳐 흘렀을 문어체 대사, 과장된 분장과 격투신…. 몇몇은 2000년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를 떠올리며 환호했고, 몇몇은 '너무 벅차다'며 고개를 돌렸다. 불행히도 고개를 돌린 관객이 너무나 많았다.

소규모 창고 영화들이 뒤늦게 개봉하는 동시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놈놈놈' 같은 대형 액션영화가 스크린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올 여름, '다찌마와 리'는 완성된 영화 자체만큼이나 호기로운 기획이었다. B급 영화에 대한 애정과 키치적 감수성이 원색적으로 뒤엉킨 작품이기도 했다. 수백만 관객에게 사랑받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흥행하지 않은 영화는 그대로 사라지고 마는 현실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안고 그대로 잊히기엔 안타까운 작품이었다.

'울학교 ET'..안보고 평가하지 마세요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는 체육선생님 김수로가 고생 끝에 영어 선생님이 된다는 설정이 그저 그런 학원 코미디로 비쳐졌던 탓일까? 추석 개봉작 '울학교 ET'는 추석 유일의 한국산 코미디라는 썩 괜찮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반면 관객들의 반응을 가장 가까이 보여준다는 네티즌 평점에서 '울학교 ET'는 10점 만점에 9점 가까운 점수를 얻었다. 이들의 한결같이 "기대 이상"이라는 반응이다. 폭소 가득한 추석 코미디의 탈을 쓴 '울학교 ET'는 그러나 입시교육 때문에 설 자리를 잃은 예체능 선생님의 위상, 생기를 잃은 고등학교의 풍경을 꽤나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웃음과 감동 모두를 잡겠다는 욕심이 비친다는 점은 '울학교 ET'의 단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 코미디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울학교 ET'를 평가 절하는 일부의 시선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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