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막말'과 '독설'이 버젓이 대중 앞으로 다가온 한 해가 또 있을까 . 2008년은 일종의 사회적 금기어이자 해서는 안될 언변이었던 '막말'과, 예의와 겸손과 배려와는 거리가 아주 먼 '독설'이 바야흐로 개그의 한 장르로까지 신분상승한 한 해였다. 더욱이 '시청자에 대한 예의'를 법으로까지 규정한 TV에서의 막말과 독설은 위험수위를 넘었지만, 정서적으로는 '애교' 이자 '속시원함의 미학'으로 봐주는 분위기마저 팽배해있다.
올 해 대표적인 막말은 베이징올림픽 당시 일부 해설자들의 과격한 멘트. 심권호 SBS 레슬링 해설위원의 "야!" "안돼!" "그러지 말랬잖아, 바보야" 등의 발언처럼, 마치 동네 사랑방에서 TV중계를 하는 듯한 그들의 안하무인 언변에 시청자들은 "이게 TV방송 멘트인가?"라고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이같은 표면적인 반말 언사만이 아니라 일부 국가에 대한 폄하성 발언 역시 해설자의 지적수준과 역사적 교양의식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한 '막말'이었다.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 코너는 막말 방송의 장본인이라 할 만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이들은 올해 방송별로 무려 평균 100회 이상의 반말과 비속어를 쏟아내 '주의'조치를 받았다. 특히 진행자 김구라는 프로그램 1회당 평균 48회 막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송창식씨 앞에서 그거 해봐, 너 맞어. 이 자식이~ 그러고 맞아" 등등). 게스트로 출연한 한 연예인 역시 이 프로그램 분위기에 동화한 듯 "왜 못 물어뜯어 안달이냐?"고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막말을 뱉어 비난을 받았다.
막말은 이뿐만이 아니다. KBS '상상플러스2'의 신정환은 (이지훈에게) "니가 이제 끝을 보는구나. 드라마도 끝나고 끝을 달리는구나 아주 그냥"이라고, SBS '야심만만2'의 MC몽은 (전진에게) " 그러니까 니가 재석이 형이랑 맞는 거야. 우리는 약간 이렇게 짓밟아주는 걸 좋아해"라고 막말을 해 방통심의위로부터 지적을 당했다. 이같은 막말의 범람은 '호통개그' '막말개그'의 원조 이경규 박명수마저 머쓱케 할 정도였다.
방송계에서는 이같은 막말의 유행이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중계형 예능프로그램'의 득세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출연자들이 시청자를 향해 말을 건네는 게 아니라, 함께 출연한 상대를 향해 말을 하고 함께 놀고 싸우는 행태들이 여과없이 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그들만의 '너무나 사적인' 대화가 막말로 이어졌다는 것. 결국 심하게 말하면 시청자는 안중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들의 사적 대화를 TV를 통해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막말에 대한 부담이나 비판의식은 잠시 마비되기도 했다.
하지만 방통심의위 입장은 강경하다. 이같은 막말 범람 현상과 관련, 방통심의위는 최근 "최근 오락성 토크프로그램에서 진행자와 출연자들의 반말과 비속어 남용이 지상파방송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며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향후에도 지속적인 중점심의를 실시해 바로잡아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막말을 '형식'으로, 쓴소리를 '컨텐츠'로 내놓는 '독설' 역시 올해 주목할 만한 키워드 중 하나다. KBS '개그콘서트'의 '왕비호' 윤형빈은 물론 작정한 개그 컨셉트이긴 하지만, "20년전 인기는 비 정도, 지금은 개그 해야지"(박남정에게), "회원이 80만인데 앨범판매는 고작 10만장"(동방신기에게)이라는 비하성 독설을 쏟아내 논란을 일으켰다.
대한민국 대중문화 대표 독설가인 신해철 역시 지난 6월 '소녀시대 침묵' 사건에 대해 기억에 남을 만한 독설을 퍼부었다. 당시 열렸던 한 콘서트에서 팬클럽간 감정싸움으로 인해 소녀시대가 무대에 등장하자 동방신기와 SS501, 슈퍼주니어 팬클럽이 침묵으로 일관한 소위 '소녀시대 침묵' 사건에 대해 "저질 관객이 저질 공연, 저질 문화를 만드는 법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저질인지 만천하에 과시한 거나 다름없는 만행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같은 '막 가는' 말과 '독한' 말이 일부 시청자에겐 오히려 '매력'이자 '카리스마'로 인식되는 것 또한 올해 발견된 특이한 변화다. 대표적인 게 MBC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의 다분히 폭력적인 막말과 독설. 물론 뒷수습이 전제가 된 것이었지만, "구제불능" "똥덩어리" 등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향한 거침없는 강마에식 언사에 일부 시청자들은 "카리스마가 넘친다" "강마에형 새로운 리더십이다"며 찬탄했다.
왕비호 역시 쉽게 방송에선 들을 수 없는 스타들의 잘못된 행태를 속시원히 긁어주는 선에서는 큰 환호를 받을 만했다.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이정을 향해 "괄약근 힘주는 애들보다 100배 낫다"며 이례적으로 칭찬을 함으로써, 병역비리 끝에 결국 군대에 끌려간 일부 연예인에 한 방 날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앞서 신해철의 독설 역시 너무나 상식적인 지적을 그만의 과격한 표현으로 치장, 카타르시스를 청취자에게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