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의 후계자' 거룡, 홍콩배우가 아닙니다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2008.12.16 11:13


혹시 거룡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혹은 한때 ‘가짜 이소룡’이 판치던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은? '사망유희'(1978) 촬영 도중 사망한 이소룡을 한국 무술배우 당룡(본명 김태정)이 대신해서 작품을 마무리 지은 이후, 홍콩영화계는 수많은 가짜 이소룡들이 판쳤다. 생전 이소룡의 영상들을 짜깁기해 만든 '사망탑'(1981)에 다시 출연한 당룡은 물론 여소룡, 하종도 같은 배우들이 어색하나마 이소룡 흉내를 내며 제법 인기를 끌었다.


어쩌다보니 오는 18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한국 무술영화 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오승욱, 류승완 감독과 함께 공동으로 진행하게 됐다. 이제는 잊혀진 변방의 한국 액션스타들의 영화를 상영하는 기획전인데 예상보다 더더욱 남아있는 필름들이 별로 없어 서글펐다.

거룡(본명 문경석)은 '중원호객'(1977), '소림관문돌파'(1978)의 왕호와 더불어 이번 기획전에 참석해 직접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왕호가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돼 현재의 관객들과 만난 경험이 있다면, 현재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실질적으로 거의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인으로서 공식석상에 모습을 비추는 게 된다.


거룡은 당룡과 달리 순수하게 국내 활동만 한 배우지만 역시 이소룡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많은 무술영화를 찍었다. 1958년생인 그는 정창화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자 오직 액션영화만 만들었던 김시현 감독에게 발탁돼 '최후의 정무문'(1977. 사진)으로 데뷔했다. '소림사 주방장'(1981) 등으로 유명한 정진화와 더불어 당시 한국 무술영화(그러니까 한국을 마치 중국인 것처럼 꾸미고 촬영했던 영화들)의 황혼기를 장식한 배우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전혀 이소룡과 닮지 않았지만, 강렬한 인상과 후덕하고 능청스런 코믹 쿵푸 스타일로 꽤 많은 팬을 확보했던 배우였다.

이소룡과 키는 비슷한데 지나치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것처럼 보이는 체구여서 이소룡을 흉내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관객들에게는 웃음을 자아낼지도 모른다. 심지어 '일소일권'(1980)에서는 이소룡이 '사망유희'에서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오는데 그것 자체가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고,(복장의 팔다리 옆 줄무늬가 지나치게 굵기도 하다) 압권인 것은 쌍절곤이 아니라 야구배트 2개를 들고 ‘쌍빠따’ 액션을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무지보'(1978), '용권사수'(1980), '일소일권' 등 줄곧 김시현 감독과 함께 했던 그는 이소룡의 모방이되 코믹 쿵푸를 구사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사투리를 쓰는 이소룡’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이번 기획전 상영작인 '소림사 용팔이'(1982)에서는 당대 최고의 액션스타 박노식이 그 전형을 만든 전라도 용팔이와 이소룡 캐릭터가 결합하기도 했다. 실제 박노식의 전라도 사투리 성우를 맡았던 분이 그대로 더빙을 해서 그 느낌은 참 묘하다. ‘뭐야, 이소룡하고 하나도 안 닮았잖아’라고 시작해서는 의외로 그의 능청스런 연기와 박력 넘치는 액션에 매료되게 된다.

황정리와 가공할 라스트 대결을 펼친 '뇌권'(1983)을 끝으로 사극 액션영화는 더 이상 찍지 않았지만, 이후 '전국구'(1991) 등의 ‘조폭 협객’ 영화를 찍었고 역시 황정리가 감독과 주연까지 맡았던 '암흑가의 황제'(1994)를 끝으로 사실상 영화계를 떠났다.

기본적으로 그는 코믹 쿵푸를 구사했지만 당당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액션의 쾌감도 상당했다. 거침없이 덤블링을 하며 묵직한 발차기를 날려대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과 더불어 많은 팬을 만들었다. '전국구'에서는 날아오는 야구공을 그대로 주먹으로 깨부수는 장면까지 있다. 실제로 그는 홍콩배우로 인식돼 해외에도 많은 팬들이 있다. 영상자료원에는 그 흔적도 남아있지 않지만 김진태의 '월광쌍수'(1981), 김시현의 '흑표비객'(1981)은 해외에서 DVD가 출시돼 있다. 어서 복원해야 할 한국영화의 안타까운 한 대목이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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