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성 ⓒ송희진 기자
부러우리만큼 뽀얗고 고운 피부에 다갈색 눈동자, 여린 몸매의 그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왠지 병약한 인물 혹은 부드러운 왕자과의 인물일 듯한 외모, 그러나 '푸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그를 보며 '이게 아닌데' 싶어진다.
김혜성은 지난 11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최근 출연 중이던 KBS 2TV '바람의 나라'에서 하차했다. 어머니에 휘둘리는 여린 왕자 여진, 그가 맡은 배역이었다. 김혜성은 극중 부상으로 인해 연약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모습을 그리며 여리고 순수할 것만 같다는 의식을 더욱 확고히 하게 했다.
'바람의 나라'의 여진 역이 그랬듯, 김혜성은 작품 속에서 유독 여리고 순수한 이미지를 많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작품 활동이 외모 이상으로 여리 여리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는 데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자신도 여리고 순수한 이미지의 배우로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고 관심을 받는 것을 즐거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처음엔 그렇게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고 관심을 받는 게 좋은 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원했던 모습들만 연기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재작년부터는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외적인 것에 이전처럼 신경 쓰지 않는다.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롭게, 연기도 사생활도 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부쩍 길어진 채 어깨를 스치며 곱슬거리는 머리로 우선 시선을 잡았다. 주위에서는 '머리 짧고 순수했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머리를 자르라고 아우성이라지만 김혜성은 "그저 익숙지 않아 낯설어 하는 것 뿐"이라며 이유 있는 고집을 보였다.
다만 머리 스타일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김혜성은 작품에 있어서도 때론 청개구리 같고 때론 이미 경력 수 십 년은 쌓은 배우인 냥 확고한 고집을 가지고 있었다. "작품 선정에 기준은 없다"지만 드러내놓은 것이 아니기에 더욱 까다로울 기준이 여린 외모와는 다른 강한 내면을 비췄다.
배우 김혜성 ⓒ송희진 기자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해 조급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 20대 초반, 아직 보여줄 것도 보여줄 시간도 많은 만큼 스스로 강박관념을 갖고 힘들어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지금은 이 것 저 것 재기보다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다해보고 싶다."
그는 "나는 요새 사람들이 좋아하는 키 크고 늘씬한 모델 같은 사람이 아니다"며 "무엇 하나만 들고 고집할 수는 없다. 연기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스스로에 냉철한 모습을 보였다.
또 "내가 변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기용해주지도 않는다. 지금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이제까지 해왔던 것 인 것 같다. 외적으로 성숙해보이지 않아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지만 느긋하게 변해가는 시간 속에서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며 작품 속에서 보던 내가 전부는 아니라는 듯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훌쩍 성장한 모습을 어필하기도 했다.
"'바람의 나라'를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작품을 통해 성숙해져가는 것 같다. 겉멋만 들었던 친구가 여진을 하면서 연기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됐고 연기자, 배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배웠던 시간이었다. 학원이나 현장에서 배운 것들을 어느 순간 잊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데 왜 잊어버렸지'라고 반성했다. '연기자라면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깨달았다."
김혜성은 '바람의 나라'로 첫 사극 신고식을 치렀다. 새로운 것에의 첫 도전, 처음 겪는 환경에 주눅이 들기도 했으며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나만 잘하면 된다는 부담감과 스스로 느끼게 되는 부족함에 혼자 겉돌고 자괴감까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색하게 겉돌던 여진이라는 옷이 점차 맞춤옷인 냥 김혜성에게 젖어 들어가고 흉내 내기 같던 연기가 김혜성 만의 여진으로 새롭게 살아나며 김혜성 스스로도 새롭게 태어났다. 일을 하다가 쉴 때면 생겼던 조급증도 사라졌으며 연기적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도 앞으로 더욱 성장해나가야겠다는 필요성도 강해졌다.
김혜성은 스스로를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후 짧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늘 누군가와 함께 했지만 이번엔 혼자 훌쩍 떠나보고 싶다고 했다.
"아직 감독님들도 날 성인 역에 캐스팅하기엔 주저할 것 같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며 웃던 그였지만 찰랑이는 머리 사이로 빛을 더한 눈빛과 확고한 시선은 충분히 성숙한 배우 김혜성의 모습을 비춰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