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이명근 기자 qwe123@
‘매일 늦는 애인 기다리기’, ‘지각하는 날 아침, 만원 버스 기다리기’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한 후, 예스, 노우 대답 기다리기’, ‘입사 시험 본 후, 결과 기다리기’..
이런 걸 보면 세상살이는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늘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물론 1~2분짜리 기다림도 있고, 3~4일짜리 기다림도 있고...
기다리는 시간 차이는 천차만별이지만, 결과야 어떻든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만은 늘 똑같은 것 같다. 왜? 기다림이란 길면 길수록 온갖 잡생각이 들어가 고통스러워지니까. 그런데, 이런 길고 긴 기다림을 거쳐서 지금 전성기를 누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호통의 제왕, 우리의 찮은이 형, 귀여운 악마, 박명수이다.
그가 1993년에 데뷔를 한 후, 꾸준히 활동하고, 가수로도 활동했지만, 그의 ‘호통 개그’가 빛을 발하며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건 거의 12~3년 후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려왔는지 다들 공감하시리라.
예전에 그와 잠깐 동안이었지만 MC와 작가로 만났던 적이 있다. 1999년이었는데, 그 때 공동 MC였던 사람은 ‘개그계의 신사’ 정재환이었다. 당시 정재환이 한참 후배였던 박명수에게 했던 말이 있다. 그 내용은 이랬다. ‘명수야, 넌 꼭 잘 될거야. 앞으로 뜰거라구. 너는 다른 코미디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코미디감이 있거든. 너만의 웃음 코드가 있기 때문에 지금 아니어도 언젠가는 꼭 잘 될거라고 본다’
당시 어린 작가였던 나에게 이 말이 참 인상깊게 남았고 그 후로 박명수를 볼 때마다 늘 이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드디어 박명수의 코미디가 인정을 받으며 번데기가 나비되듯, 독수리가 날개쳐 올라가듯 뻥~ 터지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도 정재환의 말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잘될거야’라던 ‘언젠가’가 지금이구나, 생각했다. 왜냐? 1999년에 내가 만났던 박명수는 지금의 박명수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의 ‘독특한 코미디감’을 알아주는 때가 한참 후였을 뿐이었으니까.
그걸 증명할 사건은 몇 년 전에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그의 ‘호통 개그’ 역시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켰었던 사건이었다. 그 ‘호통’이 빛을 발하기 훨씬 전인 4년 전쯤인가? 지금 말고 예전 '야심만만' 녹화장에서의 일이었다. 박명수를 포함한 다섯 명의 게스트가 출연했고, 드디어 기대 속에 녹화가 시작됐는데...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강호동! 당신은 000잖아~!” “박수홍! 왜 항상 000야!” “김제동! 도대체 000야!” 등등 오프닝부터 강호동, 박수홍, 김제동, 세 명의 MC에게 박명수가 거침없이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그가 내뱉는 ‘호통’은 분명히 재미를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으론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약간만 잘못 들으면 상대방이 기분이 상하는 내용일 수 있었다. 때문에 방청객과 출연진, 제작자들 모두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아슬아슬한 ‘호통’은 계속됐고, 마치 살얼음판에서 녹화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이 데인저러스한 녹화를 끝낸 후, 제작진은 ‘불방 결정’을 내리고, 방송으로 전파를 타지 못한 그의 녹화 테이프는 그렇게 조용히 보관되어야했다. 아, 그렇다고 절대 오해하지 마시라! 미방송 결정을 한 것이 100% 그의 위험한 ‘호통’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오직 그것 때문이었다면, 그 부분만 편집하고 방송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굳이 방송하지 않은 것에는 또 다른 이유들이 있었던 것이니까. 어쨌든 그의 ‘호통’이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못했었던 건 사실이다.
방송에서 보이는 그의 캐릭터는 동네 못된 형같은 악마요, 뭘 시키든 귀찮아하는 귀찮니즘의 대가요, 앞뒤 말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일단 뱉어내고 보는 사람이요, 아무에게나 호통치는 막무가내형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를 미워할 수 없는 건, 그가 내뱉는 말들이 우리도 하고 싶던 말들이어서가 아닐까. 그가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내뱉어도 그 내용을 생각해보면, 꽉 막힌 변기의 뚫어뻥이요, 무더운 날 들이키는 시원한 생맥주요, 체했을 때, 마시는 소화제, 까스 0명수처럼 속시원할 때가 있으니까. 이런 박명수를 보면서, 그가 기다렸던 그 오랜 시간에 박수를 보낸다. 중간에 포기했다면 결코 그의 코미디는 적절한 타이밍을 만나지 못했을테니까.
<이수연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