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매번 16년간 한우물만 팠다고 우기는 우리의 '달인' 김병만이 하얀 가운을 걸치고 의국을 오간다. 혹시 의술의 달인, '돌팔이' 김병만 선생인가 싶지만 심각한 표정에 술술 나오는 의학용어가 범상치 않다.
개그맨 김병만은 올해로 경력 8년차를 맞은 개그맨이다. 출연 중인 KBS 2TV '개그콘서트' 현장에서는 깍듯이 '선배'소리를 듣지만 배우로는 이제 1년, 신인이다.
"내가 하고 싶어 시작했고, 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대접받으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때론 '개그맨이 이게 무슨 팔자야'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연기가 굉장히 매력있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긴장되고 부담되면 피하기 마련인데 연기는 부담스러운데도 가고 싶은 길이다. 때론 불편함마저 좋다."
김병만은 이전에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조금씩 작품 속 비중을 키워왔다. 2008년엔 '달인'이라는 코너를 통해 개그맨으로서도 자리매김했지만 출연중인 MBC '종합병원'을 통해 정극, 의학드라마라는 전문 배우들에게도 쉽지 않은 장르까지 도전하게 됐다. 잘 해야 되겠다는 부담감은 피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개그콘서트'와는 전혀 다른 대본 연습 현장 분위기에 긴장도 많이 됐다.
"선생님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 등이 30여 명이 있는데 그 즐거우면서도 엄숙한 분위기에 리딩을 하려니 펜을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릴 만큼 긴장했다. 대본에 침착, 침착이라고 썼다. 그렇게 한 장씩 대본을 넘기다 보니 조금은 침착해졌지만 여전히 떨린다."
이제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조금씩 체감해왔지만 김병만은 '종합병원2'를 통해 특히 개그와 코미디, 정극 연기와 드라마 속 코믹 연기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고 했다. 연기자로서도 한 단계 성장한 셈이다.
"조금이라도 더 자연스럽고 실감나게 보이고 싶어 드라마에 나왔던 의학용어들을 찾아서 뽑았다. A4용지로 80장 정도가 되더라. 그걸 보고 대본에 나오는 낯익은 용어들을 체크했다. 계속 읽으며 입에 적응하려했다."
김병만은 애드리브 하나를 위해 작품 속 배역과 동일한 2년차 레지던트들에게 상황에 따라 심경이 어떻지, 안 바쁠 때 스테이션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고 무엇을 하는지, 회진 돌기 전에는 뭘 하는 지까지 물었다고 한다. 대충 대사만 외워서는 모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알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노도철 감독님이 예능 출신이시라 내 심적 부담이 어떨지를 아시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숙제를 많이 내주시고 많이 가르쳐 주신다. 프로에게 주문하는 것보다 좀 더 자세하게 주문을 해준다. 많이 배울 수 있어 나로서는 너무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덕분에 그는 이번 드라마를 하며 주위 사람들로 부터 처음으로 "드라마 한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연기 좋더라"는 얘기까지 들었을 땐 성취감에 뿌듯한 기분이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더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고민에 잠기게 됐다.
"개그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개그로서도 아직 내 갈 길은 멀고 기회가 주어지는 한 언제까지라도 하고 싶다. 다만 개그맨이 한 분야의 울타리를 넘어 좀 더 광범위하게 활동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병만은 주성치, 짐캐리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개그를 계속 하는 한편 희극 배우로도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했다.
"정말 춤을 출 줄 아는 사람이 더 망가진 코믹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기도 정말 심도 있게 잘하는 사람이 코믹 연기도 잘한다. 막 눈물을 흘리다가 '푸하하' 웃는 건 어려운 일이다. 주성치처럼 슬픈 데 웃기는, 심각한데 재밌는 그런 아무나 할 수 없는 코미디를 해볼 수 있는 날을 꿈군다.
김병만에게서 희극적인 이미지를 지울 수는 없다. '종합병원2'에 등장해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잔뜩 감정을 이입을 하다가도 한순간 '달인'을 떠올리게 된다. '배우'도 '개그맨'도 김병만이 100%일 수 없게 발목을 잡는다.
"먼 훗날에는 나도 완벽하게 변신을 할 때가 있겠지만 지금 내가 무게 잡는다고 해서 어울리겠는가. 내게서 코믹함을 바라는 시청자도 많을 것이다. 그들의 기대를 모른 척 할 수 없다. 나는 진지하고 심각한 연기도 좋지만 개그로서도 연기로서도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개그도 연기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 모두가 내 꿈의 연장선 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