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질링', 당신이었군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김관명 기자  |  2009.01.08 12:23


안녕하세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제 당신의 '체인질링'(Changeling)을 봤습니다. 하도 외신에서 극찬을 해대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도 나오니 더욱 '댕겼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체인질링'은 보기에 힘들었고 괴로웠으되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나 행복했던 영화였습니다. 시사회가 열린 대한극장이 영화상영 내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던 걸 보면, 이 느낌이 저만의 것은 아닌 듯합니다. 시사회장은 대사 한 토막, 자막 한 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정중동 분위기 혹은 '몰입' 그 자체였습니다.

'체인질링'은 유괴 당한 어머니의 이야기였습니다. 창졸간에 애가 없어진, 그 말로 담을 수 없는 극한상황. 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도 '밀양'이나 '세븐 데이즈' 같은 작품이 이런 참담한 일을 그렸죠. 특히 '밀양'에서 그 몇 백대 때려주고 싶은 유괴범이 "난 회개했으니 용서 받았다"라고 뻔뻔하게 말한 대목이 '체인질링'에서도 엇비슷하게 나오더군요. 어쨌든 웬만한 유괴 영화는 일단 처음부터 먹고 들어갑니다.


'체인질링'은 그러면서 경찰의 폭압에 그저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힘없는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엉뚱한 애를 데려다 "당신의 아이를 우리가 찾아줬다"고 말하는 그 '허당' 경찰반장의 망언. "내 아이가 아니다"라는 애 엄마를 결국 정신병자로 몰아 병원에 처박는 그들의 만행. 아이 생사조차 알 수 없어 가뜩이나 정신 사나운데 이런 극한의 카뮈식 부조리까지 당하니, 안젤리나 졸리나 관객이나 제대로 힘들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만약 영화가 이 지점에서만 머물렀다면 '체인질링'은 그저 약간 볼 만한 유괴-부조리 고발 영화였을 겁니다. 왜 있잖습니까,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는 수습 못해 허둥지둥대는 그런 2% 부족한 영화들, 도식과 구호만 요란한 싸구려 사회과학 서적 같은 껍데기뿐인 영화들. '체인질링'이 만약 이랬으면, 아마 '원티드'에서 시원하게 총질을 해댄 안젤리나 졸리가 간만에 눈물 쏟는 모성애를 보여준 영화 정도로 남았겠죠.


'체인질링'은 감히 말하건대 당신의 전작들에서 받았던 등골 오싹했던 느낌이 한 데 뭉친 영화입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느꼈던 그 '잔잔하면서도 쪼이는' 드라마적 재미부터 얘기해볼까요?

당신이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흔한 복서 영화로 안 만들었듯, '체인질링' 역시 단순치가 않았습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갑갑하고 초조한 감정선을 꽉 틀어잡고서는(이 경우엔 역시 애의 생사가 가장 관심사죠), 통쾌한 법정드라마에 서늘한 스릴러, 어처구니없는 부조리상황까지 그야말로 쉴 틈 없이 나오는 통에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영화가 끝나자 무릎에 어깨까지 아팠겠습니까.

'미스틱 리버'나 '버드'에서 봤던 그 꽉찬 느낌의 영화적 밀도는 또 어떤가요. 한마디로 허튼 데가 없어 보이는 느낌. 영화만이 줄 수 있는, TV는 도저히 꿈도 못꾸는 그런 단단함. 이는 쓸 데 없는 등장인물이나 장면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체인질링'에선 경찰비리 폭로에 평생을 바친 목사가 대표적이죠. 영화는 안젤리나 졸리 대신 이 목사를 통해 '바람직하지만 경직된 고발정신'을 내보였습니다. 할 말은 다 하되 그 역을 안젤리나 졸리에 안 맡긴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때도 느낀 것이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제 당신은 어떤 경지에 도달한 듯합니다. 지금도 그 먼지 폴폴 나는 목장,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그 정신병동이 눈에 선합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짙은 눈화장은 또 어떻고요? 22일 개봉하는 이 영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지는 않겠지만 본 관객은 극장문을 나서면서 이럴 겁니다. '당신이었군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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