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막장드라마 시대 개막

전형화 기자  |  2009.01.10 10:03
ⓒ왼쪽부터 \'너는 내운명\'과 \'아내의 유혹\' ⓒ왼쪽부터 '너는 내운명'과 '아내의 유혹'


시청자를 웃고 울리고 경악시키고 조롱하는 '고품격 명품 막장드라마 시대'가 개막했다.

9일 8개월 여 동안 안방극장을 장악했던 KBS 1TV 일일드라마 '너는 내운명'이 40.6%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날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33.3%를 기록했다.


'너는 내운명'의 종영과 '아내의 유혹'의 득세는 막장드라마 권력의 바톤 터치라는 점에서 새로운 드라마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욕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중독성 드라마를 벗어나 자극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드라마의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가히 고품격 명품 막장드라마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너는 내운명'은 당초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의 각막을 이식한 여인을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설정의 드라마였다.


그랬던 드라마가 연장방송에 돌입하면서 억지설정이 눈덩이처럼 붙기 시작하면서 주인공 새벽(윤아)를 온 가족이 괴롭히는 '너는 내왕따'로 변했다. 이후 '너는 내운명'은 출생의 비밀, 볼품없는 입양아와 재벌가 아들의 결혼, 배추 100포기 김장을 혼자 시키는 악독한 시어머니, 시어머니의 실어증 연기, 친모와 시어머니의 동시 백혈병, 며느리의 골수이식 등 기존 한국드라마의 전형적인 설정이 한데 모인 막장종합선물세트로 승화됐다.

'아내의 유혹'은 조강지처였던 아내가 남편에 버림을 받고 복수를 꿈꾼다는 익숙한 패턴의 드라마다. 하지만 점 하나 찍고 손톱 하나 뽑았을 뿐인데 아내를 못알아 보는 남편과 '인어아가씨' 이후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막장드라마의 여인 장서희의 분투, 악녀의 끝을 보여주는 김서형 등이 드라마의 막장지수를 끝없이 올려주고 있다.


시청자들은 '아내의 유혹'을 '너는 내운명'보다 한 수 위의 막장드라마로 평한다. '아내의 유혹'은 아내의 복수라는 기본 설정을 꾸준히 지켜가는 반면 '너는 내운명'은 생명 연장에만 집착하느라 중심을 잃고 여러 설정을 무리하게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장서희 김서형 등 '아내의 유혹' 출연진의 연기가 박재정 등 '너는 내운명' 출연진의 연기보다 윗길이라는 점도 이런 평에 한몫한다.

막장드라마 시대 개막은 매체 환경의 변화와 시청자군의 변화, 한계에 부딪힌 드라마 소재 등이 복합돼 생긴 현상이다.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옹호하는 한편 고부갈등을 주요 소재로 다루던 일일드라마가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해 끝으로 치달으면서 막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조강지처클럽' '흔들리지마' 등 최근 종영된 드라마들이 주부 시청자를 사로잡은 것은 막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준다. 방송사의 속성상 시청자의 성향을 따라가야 하는 만큼 막장드라마 시대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막장드라마 시대는 신선하며 훈훈한 드라마 제작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드라마의 위기를 낳는다. 잔잔한 감동을 준 '그들이 사는 세상'은 10%도 기록하지 못했으며, 새로운 시도로 큰 화제를 낳은 '베토벤 바이러스'도 30% 고지를 쉽게 넘보지 못했다.

가족의 훈훈한 정을 그린 MBC 일일드라마 '사랑해 울지마'가 '너는 내운명'보다 시청률에 크게 뒤진 것이나 혈연보다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그리는 MBC 주말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가 고전을 금치 못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에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는 막장드라마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노년의 사랑을 그릴 예정이었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제작이 취소된 게 그 반증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막장드라마 시대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내의 유혹'에서 장서희가 깨진 유리컵을 밟은데 이어 나중에 작두를 타더라도 시청자의 선택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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