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꽃보다 남자' <사진제공=그룹에이트>
'네이미스트'라는 전문 직업이 있다. 전문적으로 기업명이나 상표·도메인 명과 같은 이름을 짓는 사람으로 네이밍에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생겨난 새로운 직종이다.
네이밍에 대한 중요성은 방송에서도 이어진다. 프로그램 명은 최대한 그 프로그램의 특성을 한 눈에 보일 수 있도록 연구 끝에 설정한다. 요즘엔 입에 착 붙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약자 이름을 만드는 것도 고심거리로 추가됐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더 말할 것이 없어서 요즘은 네이밍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여러 개의 이름 안을 두고 수차례 회의 끝에 최종 결정하는 것은 기본이다.
KBS 2TV '꽃보다 남자'를 예로 들어보자. '꽃보다 남자'는 최대한 원작의 설정과 캐릭터를 살리는 방향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그리고 본방송을 위한 본격 홍보 전까지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비밀에 붙이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의 가명을 붙이는 '007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우선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 금잔디(구혜선 분)는 일본 작품인 만화 원작에서는 '츠쿠시'(土筆)라는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뱀밥이라고 불리며 일본에서는 나물로 먹기도 하는 양치식물의 일종으로 극중 잡초라고 불리는 설정은 원작의 이름에서부터 기인한다.
'꽃보다 남자'의 한 제작관계자는 "잡초는 자생력 강한 풀과의 식물로 극중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는 생활력 강한 점과 똑순이 이미지를 살려 잔디라는 이름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F4의 리더인 구준표는 원작에서는 도묘지 츠카사다. 이중 도묘지를 한자 그대로 읽으면 도명사(道明寺)로 밝을 '명'자를 사용한다.
한국판에서의 구준표라는 이름도 이 점을 그대로 차용했다. 구준표에서 '준'은 밝을 준(晙)자를 사용한다. '표'는 기둥 표(標)자로 기둥이 된다, 즉 재벌 후계자의 이미지를 살리고자 했다.
제작관계자는 "작가가 근대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자의 성씨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구씨를 성으로 택했다"며 "구준표라는 이름이 전체적으로 캐릭터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윤지후의 경우에는 약초 지(芝)와 따뜻할 후(煦)로 잔디가 아플 때 약이 되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뼈대 있는 성씨 중 하나인 윤을 택해 전직 대통령의 손자다운 고고한 분위기도 살리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소이정은 둘째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는 원작의 이름 '소지로'를 살려 성을 소 씨로 하는 한편 두 이(二)자와 곧을 정(正)자로 이정의 반듯한 캐릭터를 살렸다. 송우빈은 원작 속 이름 아키라의 아름다운 남자라는 뜻을 최대한 살려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의 의미로 날개 우(羽)자와 이름에 널리 쓰는 빛날 빈(彬)을 써서 화려한 이미지를 살리고자 했다.
제작관계자는 "'꽃보다 남자'의 원작은 작은 등장인물 하나까지 모든 이름들이 다 캐릭터를 담고 있다"며 "츠쿠시의 경우에도 실제로 사람 이름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데 캐릭터 상 붙여진 것이다. 우리 식으로 보면 애 이름을 김잡초라고 붙인 셈이다"고 말했다.
이어 "기획단계에서 이 점을 파악하고 한국판에서도 이름에 최대한 캐릭터를 담으려고 했다"며 "차마 일본 정도로 과감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멋진 이름을 붙이 수 있도록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일반 상품이나 브랜드의 경우에는 오랜 조사·연구 기간을 걸쳐 심혈을 기울여 네이밍을 한다. 네이밍 전문 업체에 외주를 맡기는 경우도 네이미스트라는 전문 직업이 있다. 네이밍 전략이라는 것이 따로 있어 네이밍 하나로 성패가 갈리기도 하며 네이밍 라이센스(이름을 사용하는 권리)도 있다.
이는 드라마 등 방송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름이 입에 붙고 연관성이 있어야 잘 기억되고 인기를 누릴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고 그 이름 자체가 유행어가 되기도 한다. '이름 값'이 참으로 비싼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