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익준 감독 "제도권에 쉽게 안착하지 않겠다"①(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09.04.09 13:13
ⓒ송희진 기자 songhj@ ⓒ송희진 기자 songhj@


개봉 전부터 이렇게 화제가 된 독립영화가 또 있을까?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해외 각종 영화제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는 등 지금까지 해외영화제에서 9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양익준 감독은 "초등학교 때 미술상 몇 번 받은 게 지금까지 상 탄 이력의 전부"라며 웃었다. 욕설과 폭력으로 밖에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영화 속 인물과는 전혀 다른 해맑은 모습이었다.

'똥파리'는 욕으로 웃고 울며 내키는 대로 살아가던 남자 상훈이 같은 상처를 지닌 여고생 연희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가족에 대한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감독과 주연배우를 맡은 양익준 감독은 전셋값까지 빼서 '단돈' 2억5000만원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이트클럽 가고 본드 불었다"는 그는 살아오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똥파리'에 담았다고 했다. 느닷없이 한국영화계에 출몰한 그는 영화처럼 말도 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김기덕과 류승완과 닮았지만 또 다른 양익준 감독을 만났다.

-해외에서 수상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늘(8일)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영화제에서 2관왕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초등학교 때 미술로 상을 받은 이후 이렇게 상을 받은 건 처음인 것 같다.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리.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첫 단편인 '바라만본다'로 관객상을 받았으니 영화를 잘 한 것 같다.(웃음)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일찌감치 군대를 다녀온 뒤 공주영상대학에 입학했다. 영화나 연기를 언제부터 하고 싶은 거였나.

▶중학교 때 SBS에서 '꾸러기 콘테스트'라는 것을 했다. 춤 잘 추는 애들이 나가는 건데 내 친구가 1등을 해서 결국 가수가 됐다. 그 친구와 소주를 먹으면서 '너는 가수로 TV에 나갔으니 난 탤런트로 TV 나가겠다'고 했다. 꼭 그래서 연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어릴 적부터 막연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다.


군대에 있을 때 선임병들이 제대 후 복학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서 대학을 가볼까 싶어서 수능공부를 시작했다. 워낙 공부와 담을 쌓았던지라 결국 군대에서 수능을 보고 전역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됐다. 대학에선 그냥 술 먹고 놀았다.

-그간 '아라한 장풍대작전' '라듸오 데이즈' 등 다양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독립영화에서는 상당히 비중있는 역을 맡았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군대 가기 전에 MTM에 3개월 다녔다. 뭐 좀 이상하더라. 대학에 다닐 때 명계남 선생님이 운영한 엑터스21에 들어갔다. 연기자를 육성하기 위해 무료로 교육시키는 과정이었는데 열심히 술 먹고 이야기했다. 연기란 배울 수 없고 느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친구들과 오줌 싸다 죽은 척 한 적도 있으니 연기를 하고 싶긴 했나보다.(웃음)

-'똥파리' 주연과 감독을 함께 했으니 어려움도 컸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썼을 때부터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렸다. 샷의 연결은 마음의 눈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믿는다. 머리를 쓸 줄도 모르고 연상되고 느끼는 대로 갔다. 촬영감독이 핸드 헬드로 찍었는데 인물이 카메라 밖으로 나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 여백도 의미가 있으니.

-배우들의 연기 디렉션도 일부러 안했다는데.

▶원형의 감정을 가져가고 싶었다. 배우들이 캐스팅된 순간부터 시나리오를 읽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감정의 극한까지 보여달라고 했다. 원래 연기란 단어를 싫어한다. 나 역시 감독들의 디렉션으로 내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적이 많다. '똥파리'에서 상훈은 아버지처럼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부분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똥파리'에선 아버지를 때리고, 월남전에 다녀온 연희 아버지는 미쳤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권위를 부정하는 것 같은데. 폭력이 끊임없이 유전된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또 연희의 동생으로.

▶내지르고 싶은 게 있었다. 사회가 잘못 굴러가고 있고 가족은 사회의 거울 아닌가.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고. 누가 잘못했는지조차 바로보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다.

-욕선생이 따로 있었나. 서울욕이 경상도나 전라도욕과는 또 다른 맛을 주던데.

▶서울에서 자랐고 골목에서 자랐고 산동네에서 자랐다. 욕을 듣고 배우고 또 새로운 욕을 또래끼리 창조한다. 영화에서 욕이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듯 그렇게 자랐기에 담을 수 있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도 거침없지만 성적인 폭력이 없는 게 또 인상적이었는데.

▶글쎄 그런 부분을 잘 몰라서 그랬을까. 싫어서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송희진 기자 songhj@ ⓒ송희진 기자 songhj@


-저예산이지만 장르영화로서 완성도가 빼어난데.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도 연상되고.

▶'비열한 거리'는 보지 못했다. 꼭 뭔가를 봐야 하고 해야 하는 게 어느 순간부터 싫더라. 나를 위한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똥파리'를 만들었다.

-전셋값까지 빼서 제작했다. 후회하거나 두렵지는 않았나.

▶일단 시작하면 가야하니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서 자극을 받는다기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버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갖고 싶다면 더 많은 것을 던져야 하니깐. 요즘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물론 아직 수중에 돈은 없다. 상금 타서 집 사는 줄 아는데, 두 군데밖에 상금이 없다.(웃음)

-한독협과도 연분이 없었고, 어느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듯 출몰했는데.

▶독립영화를 찍으려 '똥파리'를 찍은 게 아니다. 찍다보니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10년 동안 영화를 했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거다.

-로테르담에서 어퍼컷 세리모니를 한 게 인상적이었는데.

▶상을 탄 게 아니라 관객들과 즐기고 싶었다. 싸이의 '챔피언' 댄스도 췄다. 모든 사람은 재미있게 살고 싶어하지만 재미없게 산다. 그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초청 제의가 왔다던데.

▶감독 주간으로 제의가 왔다는데 로테르담에 가면서 빠지게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이 영화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니깐.(웃음)

-제도권영화에 연출 제의가 들어올텐데, 또 연기 제의도 있을 것 같고.

▶연출 제의는 현재 두 편을 거절했다. 정신적 여유가 지금은 없으니깐. 또 제도권 영화를 하게 된다면 거기서 악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작사나 관객보단 시작은 나로부터 되야할테니. 연기를 한다고 해도 나름 이유가 없다면 할 이유가 서로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무엇을 할지...' 이란 인생이 가장 재미있는 것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단 지방에서 잠수를 탈 생각이다. 근질근질할 때까지. 그리고 또 뭔가를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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