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진 songhj@
포스터부터 화제였다.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 '박쥐'가 워낙 정보를 꽁꽁 숨겨왔던 터라 김옥빈이 송강호를 올라탄 듯한 느낌을 주는 포스터는 수많은 시네필의 눈길을 끌었다.
그 포스터는 박쥐를 연상시키는 남녀의 얽힘과 적잖은 베드신이 담겨 있다는 풍문을 한 장의 사진으로 증명하는 듯 했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박쥐'의 두 주인공 송강호와 김옥빈을 만났다. 송강호는 세속적인 욕망에 고뇌하는 사제를 맡았고, 김옥빈은 세상사 허망한 유부녀에서 욕망에 눈을 뜬 여인을 연기했다.
송강호는 웃음을 지웠고, 김옥빈은 욕망을 풀어내야 했다. 두 사람에 '박쥐'는 영화 이상의 도전이었다. 박찬욱이라는 작가가 풀어놓은 마당에서 바닥의 끝까지 감정을 풀어냈다는 두 사람과 만났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송강호와 김옥빈이 주고받는 대담으로 변했다. 마치 '박쥐' 속 두 사람의 관계처럼.
-'박쥐'를 선택하게 된 까닭이 있다면.
▶송강호(이하 송) '박쥐'는 10년 동안 박찬욱 감독의 숙원을 이룬 영화다. 제의 받은 게 10년 전이었으니깐 나 또한 남다른 애정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가장 창의적이고 모든 것이 들어있는 영화다. 예술가적인 감독의 꿈을 투영한 작품이다. 배우로서 새로운 작품을 갈망했다는 점에서도 부합했다. 이런 영화를 관객에 선보인다는 설레임과 기대감이 혼합돼 있는 상황이다.
▶김옥빈(이하 김)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아니 이런 시나리오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싶었다. 박찬욱 감독이 아니면 사고친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왈칵 들었다.
-'박쥐'는 노출 수위도 높다. 김옥빈이 한 때 주춤거리지 않고 톱스타로 직행했더라도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김) 물론. 내가 표현하고 싶고 흥이 나는 작품이니깐.
-송강호의 경우 기존의 유쾌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여야 했는데.
▶(송) 대중이 배우를 볼 때 이중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재미있는 사람 또는 심각한 사람. 배우 스스로는 그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송강호를 보고 얻은 유쾌함은 하나의 캐릭터를 보고 얻은 게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얻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감사하다.
'박쥐'는 그런 모습이 아닐거다, 라고 대중이 판단하신다면 '박쥐' 역시 지금껏 해왔던 영화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송강호가 바뀐 게 아니라는 것도. 작품 속 배우로 봐주셨으면 한다.
-제작단계부터 노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송)배우가 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자연인에서 배우로서 문턱을 넘게 되면 강한 정신력이 발휘된다. 또 궁극적인 목표에 닿기 위해 베드신이든 노출이든 끊임없는 정신력이 필요하고. 그럼 점에서 김옥빈씨와 동질감을 느꼈다.
▶(김) 그냥 액션신 같았다. 에너지 집중이 더 많이 필요한. 노출신이 있다고 이런 테마의 영화를 하는데 색안경을 낀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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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함께 인터뷰하는 이유가 있나. 일정이 맞지 않아서는 아닐텐데.
▶(김) 묻어가는 거죠.(웃음)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들의 연기하기 위해선 집중력이 남달랐어야 할 것 같은데.
▶(송) 베드신이랄지 감정적으로 어려운 장면이 많았다.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고. 그런데 전 스태프가 하나가 되는 순간들을 느꼈다. 조명 감독이나 촬영 감독이나 모든 스태프 하나하나가 배우들이 중요한 감정 연기를 한다고 집중하고 있는 게 연기하면서도 느껴지더라. 베드신을 한 번에 오케이 받은 적이 있다.
박찬욱 감독이 어려운 장면이라고 쉽게 오케이를 하는 양반도 아니고, 감독이란 어려운 장면일수록 더욱 베스트를 끌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집중력이 하나가 됐기에 가능했다.
▶(김) 노출신을 찍을 땐...오로지 나의 힘과 상대에 집중했다.
-노출 연기를 이야기한 게 아니다. 전체적인 집중력을 물은 것이다.
▶(송)나도 궁금했다. 김옥빈씨가 맡은 역은 다양한 감정표현이 필요한 역이었다. 세상 모든 일에 관심없다가 욕망에 눈을 뜨고 팜므파탈이 되고. 진폭이 큰 역이라 다른 배우라면 감독님과 상의도 하고 그럴텐데 현장에서 너무 유쾌했다. 유연했고.
▶(김) 놀라고 멍석을 깔아줬는데...그동안은 내게 제약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마음껏 할 수 있었다. 300가지 정도를 미리 생각했다가 슛이 들어가지 전 5~6개를 풀어낼 수 있었다. 또 송강호 선배 눈을 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타고난 재능이란 소린가, 각오의 차이일 수도 있고.
▶(송) 각오의 차이...그럴 수도.
▶(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만난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송) 그런 자신감이 주효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 두 배우의 호흡도 중요했을 텐데. 선배로서 이끌거나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나.
▶(송)우리 별로 이야기 안했지. 옥빈씨가 내 눈을 보는게 좋았다는데 그 말이 이해된다. 이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이야기를 안해도 서로 알았던 것 같다. 난 눈은 아니고 코를 봤나.(웃음)
베드신 같은 경우도 '색,계'와 우리 영화는 성격이 다르다. 우리 영화는 사랑의 감정 표현을 베드신으로 표현해야 했다. 수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된 욕망의 분출, 눈을 뜨는 과정을 표현해야 했기에 말보단 이해가 더 중요했다.
▶(김)두 사람의 기가 대립되는 게 아니라 순환됐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눈으로 알 수 있다는 게 초능력이 아니라 왜 사람을 주시하다보면 그 사람이 뭘 하려는지 알지 않나. 뭐 송강호 선배 공이 컸다. 자기 공이 크면서 코를 봤다고 하시다니.(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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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로 성과 속, 사이에서 갈등하는 역을 맡았는데.
▶(송)성직자 역이라기 보단 성직자로 대변되는 극단적인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기본적인 욕망을 억누르고 구원을 바라는 인물이 뱀파이어가 돼 욕망의 덩어리를 안는 인물이다. 종교인으로 몰입했다기 보다 그런 딜레마의 표현에서 승부가 난다고 봤다.
-'박쥐'는 아트무비인가, 상업영화인가.
▶(김)장르무비라고 생각한다. 약간은 초현실적인.
▶(송)대중영화죠. 박찬욱이라는 작가가 예술적인 가치를 녹여낸 대중영화. 관객이 영화를 보고 시간을 잘 때웠다는 게 아니라 영화다운 영화봤다는 느낌이 오는 영화.
-그럼 '올드보이'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중 어느쪽에 가깝다고 보나.
▶(김)'올드보이'와 '싸이보그'를 합쳐놨다.
▶(송)'올드보이' 쪽에 가깝지 않을까. 왜냐면 '싸이보그'는 박찬욱 감독이 이야기하는 바를 대중에 좀 어렵게 전달했다면 '올드보이'는 쉽게 따라갈 수 있었으니깐.
▶(김) 난 '싸이보그'를 보고 엉엉 울었는데. 그전까진 박찬욱 감독님 작품에서 멜로를 못느꼈는데 '싸이보그'를 보고 이제 멜로를 하시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송) 그러면 합쳐놓은 게 맞겠다. 음 그냥 이 영화는 '박쥐'에 가깝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