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15일 칸공식기자회견장에 송강호 김옥빈과 참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6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박쥐'가 15일 현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김옥빈 등은 이날 낮12시30분(현지시간) 칸 뤼미에르 극장 내 공식기자회견장에 참석, 내외신 기자들과 '박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세계 각국 기자 60여명이 몰려 '박쥐'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프랑스와 브라질, 이탈리아, 중국, 홍콩, 캐나다 등 칸에 모인 세계 각국의 취재진은 박찬욱 감독에 흡혈귀 이야기에 기독교를 접목한 이유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질문은 대부분 박찬욱 감독에 집중됐으며, 박 감독은 각 질문에 때로는 학술 강의처럼 진지하게 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피를 나눠 마시는 게 흡혈귀와 그리스도인의 공통점으로 생각하는지.(프랑스 사회자)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 제목이 '이것은 나의 피다'라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그런 뉘앙스를 연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확히 그런 생각 갖고 흡혈귀와 종교를 연결시킨 것은 아니다. 물론 주인공이 미사집전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농담과 같은 코멘트일 뿐 이 영화의 본질은 아니다.
-신부님을 왜 주인공으로 삼았나. 최근 교황청에선 '천사와 악마'라는 영화에 발끈 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신부가 흡혈귀인데다 간통까지 한다. 교황청에선 흡혈귀보다 간통을 더 안좋아할 것 같다. (이탈리아 기자)
▶톰 행크스 영화만큼 '박쥐'에 대한 관심 가져주면 감사할 것이다.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신부를 우롱하려는 게 아니라 가장 존경하기 때문이다. 가장 숭고한 사람이 좋은 일을 하려다 흡혈귀가 됐을 때 고통은 얼마나 클 것이며 도덕적 딜레마가 얼마나 강렬할 것인지를 지켜보고 싶었다. 영화를 진지하게 본 신자라면 내 선택을 존중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배우들이 영화가 끝난 뒤 후유증을 어떻게 이겨냈는지.(홍콩 케이블)
▶송강호: 내 역은 끔찍하게 죽이는 장면이 거의 없어 후유증은 별로 없었다.
▶김옥빈: 연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영화에 피가 많이 등장하는데 다른 영화에서 피가 나올 때마다 반가웠다.(웃음)
-충격적인 장면이 많던데 감독의 의도가 뭔가.(영국)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제일 감각적인 작품을 의도 했다.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친절하게 만들었다. 다만 눈과 귀 때로 냄새까지 맡아질 수 있으며, 촉감도 느껴 질수 있는 감각기관으로 하나하나 느껴질 수 있는 영화를 의도했다.
영화에 뱀파이어가 될 때 모든 감각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몽타주 장면이 있다. 보통 사람이 느낄 수 없는 감각이 홍수처럼 밀려든다. 그 장면이야말로 관객에 느끼게 하고 싶은 장면이었다.
-섹스 장면도 많은데 평범하게 볼 수 없는 자세더라. 흡혈귀 영화라 그런 섹시한 장면을 의도했는지, 또 흡혈귀가 송곳니가 없는데.(브라질)
▶그렇게 이상한 자세였나.(웃음) 남자 주인공은 성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고, 여자도 처녀나 다름없다란 대사가 있다. 이들은 성행위에 능숙한 사람들은 아니라 가급적 평범한 자세를 요구했다.
다만 손가락과 발가락을 애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고독과 정열을 이길 수 없어서 밤마다 뛰는 그래서 발바닥이 갈라져 있는 여자에 대해 남자가 동정과 연민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키스를 한다. 이것은 성경에서 등장하는 발을 씻어주는 행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송곳니는 10년 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영화 역사에 수없이 많은 뱀파이어 영화에 또 하나를 보탤 때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뱀파이어란 존재에 대해 거꾸로 사실적인 접근을 하고 싶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할 때 새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새로운 면을 집어넣기 보다는 십자가 고성 마늘 등 이 장르에 있는 클리쉐를 빼고자 했다.
-송강호가 박찬욱 감독을 '박달리'라 불렀다는데, 살바도르 달리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또 영화 속 등장하는 신발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특별히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다. 물론 초현실주의 미술에 매료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화면 뿐 아니라 스토리 꾸밀 때도 초현실주의자들이 부조리를 추구하고 낯설게 만드는 기법에 대해 늘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송강호와 나눈 적은 없다. 그런데 송강호가 그런 작품을 떠올리고 지적을 해줘서 뭔가 통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신발에 대해서는 관객과 비평가들이 신화적인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분들의 몫이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서 해석을 제한하고 싶지 않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전하는 안식이고 배려다. 다만 마지막에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서 그 신발은 어디로 갈까, 라는 드라마를 따라 가면서 느낄 수 있는 인상과 상상하는 재미를 주고 싶다.
-흡혈귀를 떠올린 근원적인 이유가 뭔지, 또 흡혈귀가 왜 문학과 영화에서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나.(프랑스 기자)
▶이것이 인기 있다는 소재인 것은 성적인 늬앙스도 있을 것이고 죽음을 향한 어두운 정렬 같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여성 희생자들이 알면서도 자기 목을 맡기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나.
다른 생명을 해쳐야 자기가 산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라면 인육을 먹는 등 더 시각적인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피를 마신다는 것은 보다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느낌을 준다.
다만 내가 흡혈귀를 택한 것은 숭고한 인류애를 지닌 사람이 이런 조건에 놓였을 때 갖게 되는 고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 이 사람은 자신이 왜 어떻게 뱀파이어가 됐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다. 우리가 어떻게 생을 얻게 됐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다름없다. 죄를 통해서 자기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준다. 난 그런 실존적인 상황이 뱀파이어란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쓰리 몬스터'에서 흡혈귀 이미지 다뤘는데 그 때 했던 과정을 연관시켜서 한 것인지.(벨기에)
▶그 당시에는 '박쥐'를 생각은 하고 있지만 구체화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박쥐'의 한 장면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쓰리 몬스터'에는 유효기간이 지난 피를 마셔서 여자 뱀파이어가 바닥에 피를 토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앵글이 김옥빈이 피를 토하는 장면과 갖다. 그것은 예전에 만들었던 '쓰리 몬스터'에서 한 장면을 갖고 와서 연결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2년 전 경쟁부문에 오른 '밀양'도 천주교를 다룬 영화였다. 갑자기 한국영화가 천주교 영향을 받은 이유가 뭔가.(프랑스)
▶'밀양'에서는 개신교였다. 넓게 봐서 갖은 기독교니깐. '밀양'과 '박쥐'는 한국에서 2년 사이 만들어진 100여편의 영화 중 2편일 뿐이다. 모든 영화들이 그런 관심을 갖는 것 아니다.
다만 서양에서 유래된 종교가 한국에 영향을 준다는 데 궁금증을 나타낼 수는 있을 것 같다. 한국에는 기독교 신자가 굉장히 많다. 기독교가 서구에서 유래됐던 아니든 한국인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한국 사람을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가 이런 이슈를 다룬 것은 당연하다.
-에밀 졸라의 '떼레즈 라깽'을 영화화할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캐나다)
▶반가운 질문이다. 프랑스 오면 이 질문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처음 들었다. 에밀 졸라 팬이며, 이 소설은 26살짜리 작가가 썼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인생의 가혹한 면을 담고 있다. 내가 소설가가 됐으면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흥미로운 것은 자연주의 문학으로 분류되는 소재를 가지고 가장 환상성이 강한 뱀파이어와 만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뱀파이어 영화 치고는 상당히 사실적이며,졸라의 각색 치곤 가장 환상적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좋아하는 흡혈귀 영화가 있다면.(미국)
▶'노스페라투'. 시적이며 불분명하고 몽롱한 분위기가 좋다. 리메이크 버전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