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상을 세 번 받은 것 같았다"(인터뷰)

칸(프랑스)=전형화 기자,   |  2009.05.25 18:32


박찬욱 감독은 아직 전날의 기쁨과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25일 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담담했고 또 자연스러워 보였다.


박찬욱 감독은 24일 제6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아 '올드보이'에 이어 칸에 초청될 때마다 상을 받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수상의 영광보다 갈라 스크리닝에서 끊임없이 이어진 박수갈채에 더 큰 의미를 뒀다.

박찬욱 감독은 "뱀파이어가 모든 피를 마실 수는 없는 것 같다"고 웃으며 "초청받았을 때, 그리고 갈라스크리닝에서 박수를 받았을 때, 상을 받았을 때를 모두 합쳐서 세 번상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데 이어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상과 특별한 뭔가가 있나보다.(웃음)


-황금종려상을 받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은 없었나.

▶뱀파이어가 원하는 모든 피를 마실 수는 없잖나.(웃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해봤지만 상의 등급은 한 표, 두 표 차이로 갈리는 법이다. 올해 같이 유래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던 영화제에서 수상권 안에 든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심사위원단이 선정되는 순간 운명적으로 어떤 영화가 상을 받을지 결정된다. 그들 조차도 그 순간은 모르겠지만 취향과 개성이 강하다보니 그렇다. 어떤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는다 해도 놀랍지 않은 그런 영화들이 모였으니깐.


-수상 소감에서 송강호에 공을 돌렸는데.

▶연기상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다. '올드보이'도 그랬고, '친절한 금자씨'도 그랬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때도 그랬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감독들은 배우가 인정 받는게 좋은 법이다. 송강호는 내가 수상 소감에서 "정다운 친구"라고 한 게 연기 잘한다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고 하더라.

-또 소감에서 아직 예술가가 되려면 멀었다고도 했는데.

▶예술가라고 하면 고뇌하는 모습인 법인데 난 그 과정을 즐기니깐. 첫 두 편 찍을 때만 해도 나도 고뇌하는 예술가였다.(웃음) 그러다 오래 놀다 영화를 찍으니 모든 과정이 재미있고 행복하다. 투자사부터 제작부 막내까지 다 좋고 보고 싶더라.

- 이창동 감독이 심사위원에 속해서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던데.

▶정말 치열했고 고생이 많으셨다고 들었다. 또 슬픈 소식도 들으셨을테고. 시상식 무대 아래서 올려다보는데 찡해지더라. 당장 달려가고 싶으셨을텐데.

-시상식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는지.

▶영화제 초기에 상영됐기에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여행을 떠났고 그 자체로 보람이 있었다. 뭐,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좋았다.(웃음)

-칸영화제에 초청될 때마다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는데.

▶한국에선 중견 대접을 받지만 이곳에서 어린 감독에 속한다. 귀염을 받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웃음) 거명되는 감독들을 보면 스타를 만난 팬처럼 흥분된다. 그래도 '올드보이' 때보단 좀 더 마음이 편했다. 큰 상을 받았으니 망신만 받지 않았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망신이란 게 다른 게 아니라 갈라 스크리닝에서 관객들이 야유를 퍼붓고 중간에 나가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의미가 있긴 하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환호가 가장 컸던 것 같다. 박수가 끊이지 않아 나중에 부끄러워서 도망치려 했는데 집행위원장이 좀 더 있으라고 하더라. 정말 상을 세 번 받는 기분이었다.

-박수갈채가 정말 길었는데.

▶박수를 치는 분들이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는데 '마더' 시사회 때 박수치는 입장이 되니깐 아니더라. 좋은 영화를 보면 10분이고 더 쳐줄 수 있는 마음이 우러나오더라. 나도 더 있을 걸 그랬나 싶다.(웃음) 나중에 해외 관객들이 15분이고 20분이고 더 치려 했는데 왜 나왔냐고 하더라.

-'마더'는 어땠나.

▶말이 안나오더라. 봉준호 다운 절정을 이룬 것 같다. 난 그렇게 지독하게 못찍는다.

-차기작에 대한 구상이 있는지.

▶개봉을 다한 뒤 다음 작품을 안잡은 게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정한 상황을 즐기고 싶다. 다만 다음번에는 뭐가 됐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너무 이상한 사람을 많이 다뤄서 그런지 평범한 사람을 그리고 싶다. 짐작컨데 평범한 사람이 이상해지는 이야기가 아닐까.(웃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글로벌 프로젝트로 제작하는데.

▶미국이나 프랑스 큰 스튜디오가 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아직 초고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당분간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봉준호 감독이 큰 설정만 가져오고 인물까지 바꿀 생각이다. 어떤 규모가 될지도 모르기에 아직은 해외 제작사와 만날 단계가 아니다.

-차기작은 아니더라도 '박쥐'처럼 품고 있는 프로젝트는 있나.

▶장르를 한다면 서부극을 해보고 싶다. 미국에서 제의가 들어오면 좋은 서부극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한다. 미국이 어떻게 건국됐고 문명화가 됐는지를 그 시대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미국이 아니라 방글라데시에서도 일할 수 있다. 감독은 좋은 스토리를 따라 움직이는 법이니깐.

-'박쥐'가 개봉하고 국내 반응이 상당히 엇갈렸는데.

▶익숙한 상황이다. '복수는 나의 것' 때는 더 심했다. 칼들고 출발한다는 사람도 있었으니깐. 다만 내가 순진했던 것은 '박쥐'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줄 알았지, 그런 영화가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처음엔 좀 당황했다가 내가 어디 가겠냐라고 생각했다.

-올해 칸영화제에 한국영화가 10편이 초청됐는데.

▶'마더' 시사회가 끝나고 외국 영화인들이 나한테 축하한다고 하더라. 올해 칸은 한국의 해라면서. 더 이상 영화를 안봐도 된다고도 하고. 외국인들도 한국영화를 묶어서 생각하는데 당사자인 우리는 더 했다.

-'박쥐' 수상과 '마더'의 호평 등 이런 분위기가 위축된 한국영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 생각하는지.

▶당장 눈에 보이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심이 멀어졌던 한국영화에 다시 관심이 생기게 된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칸 수상까지 '박쥐'를 마무리한 소감이 있다면.

▶베를린영화제 때 한 외신 기자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끝낸 소감을 물었을 때 복수3부작이 풀코스 같았다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디저트를 먹은 소감이라고 했다. 그런데 또 같은 사람이 이번에는 '박쥐'는 또 다른 음식의 시작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다 먹고 계산한 것 같이 후련하다고 했다. 그래서 평점한 사람의 이야기가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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