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찬란한 유산'이 이래서 좋다

[이수연의 클릭!방송계]

이수연   |  2009.06.16 17:27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문채원, 이승기, 한효주, 배수빈(왼쪽부터) ⓒSBS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문채원, 이승기, 한효주, 배수빈(왼쪽부터) ⓒSBS


우리의 인생살이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숫자’를 빼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학생 땐 등수란 숫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고, 버스 5분 일찍 탔냐, 아니냐에 따라 지각이 결정되며, 몸무게 1~2kg에 따라 다이어트를 죽기 살기로 하지 않는가. 특히나 100m 달리기 선수에겐 0.001초에 따라 메달 색깔이 달라지니 그들에겐 숫자가 얼마나 무서울까, 싶은데...


이 숫자란 녀석이 무서운 건 방송쟁이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방송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숫자’란 녀석이 옥죄어오니까. 시청률 숫자가 나올 때까지 피 말리는 듯 사람을 쪼이고 쪼이다 그 결과에 따라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결정되기도 하니... 시청률이란 숫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하시겠는가.

그런데, 최근 이 시청률이란 숫자로 천국의 희열을 맛보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팀이 있다. (아, 부럽다.) 바로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스태프와 배우들이다. 방송한 지 몇 주 안돼서 시청률 30%를 넘어 지금까지 찬란한 시청률로 고공행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담, ‘찬란한 유산’이 이리도 잘 나가는 이유는 뭘까? 인기 비결이란 씨실, 날실이 얽히듯 복잡하고 미묘한 것들이 수없이 얽혀서 만들어진 것이니 단순히 한두 가지로 요약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직 ‘아줌마’ 입장에서 내가 열광하는 이유는 이렇다.

극중 은성(한효주)이 유산을 받게 됐다. 이유는 거리에서 정신 잃고 쓰러져있는 할머니를 극진하게 보살핀 결과였다. 이 각박한 세상, 다른 사람한테 유산을 받다니... 정말 꿈에서도 나오기 힘든 일 아닌가. 아, 나도 어디서 유산 로또 떨어졌음 좋겠다, 싶다.


아줌마 입장은 어떤가. A마트가 집에서 가깝지만, 적립제가 좋은 B마트를 이용하고, 적금은 이율이 더 좋은 00은행 상품을 들려고 애쓰며, 아이 옷은 디자인 좋은 걸 싸게 사려고 각종 행사와 세일을 수시로 점검하는 게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좀 싸게 주시면 안돼요? 전시 상품이니 싸게 해주셔야죠’ 천연덕스럽게 100원이라도 더 깎는 건 너무나 당연한 생활의 지혜가 됐으니 이 한 몸 치장하고 다니던 아가씨 때랑은 다르다 이 말씀.

결혼 전엔 비싸도 괜찮다, 어디 브랜드 옷이 최근 유행인가, 비싸도 괜찮다, 어디가 분위기 좋은 카페인가, 비싸도 괜찮다, 어떤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러갈까 하며 한껏 우아함을 즐겼다면 지금은 어떻게 아껴야 우리 가족 더 잘 살까를 고민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니, 허리띠 졸라매는 아줌마에게 다른 사람의 유산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혹~하는 스토리인지 모른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예전에 길 잃은 할머니 집 찾아줬던 일이며, 배고파했던 할아버지한테 우유 사준 일 등등을 유치하게 떠올리며 ‘아, 나도 은성이처럼 착한 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나중에 혹시...?’ 하는 계산적인(?) 생각으로 푹 빠져있다 보면 시간이 후루룩 지나간다.

어디 이뿐인가. 드라마 앞으로 눈을 잡아끄는 게 또 있다. 착한 은성이의 희비를 결정지을 열쇠를 쥐고 있는 악녀 역할, 계모 백성희(김미숙)다.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던 악녀들은 대부분 ‘남녀간의 사랑’을 놓고 줄다리기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악녀들이었다. 어떤 계략으로 저 남자를 경쟁상대에게서 뺏어서 쟁취할까를 고민한 아가씨 악녀들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찬란한 유산’의 악녀 백성희는 좀 다르다. 단순히 ‘사랑’ 때문에 목숨 거는 게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인생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사랑’보다는 팍팍한 세상 어떻게 하면 여유있게 누리고 살까를 생각하며 빈털터리 남편을 버리는 잔인성과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남의 자식’이 죽든 살든 상관없는 비틀어진 모성애를 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내 입장에서, 엄마 입장에서 나 스스로를 생각하게 한다. 저렇게까지 해서 얻어지는 게 과연 행복할까...? 하는. 더불어 ‘저런 못된 X, 저 새빨간 거짓말들이 어떻게 밝혀질까? 빨리 그 실체가 드러나야 될텐데...' 하고 욕(?)을 퍼부으며 시청하다보면 어느새 끝이다. 그래도 절대 다른 채널로 돌리지 않는다. 왜냐? 다음 회 예고도 꼭 봐줘야 직성이 풀리니까.

그런데, 2% 정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남자 주인공들이다. 아, 오해하지마시라. 이승기와 배수빈이 멋있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니까. 다만 그들이 너무 풋풋해서 아줌마인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남자’의 느낌보다는 ‘귀여운 막내 동생’ 같아서 좀 아쉽다는 얘기다. 물론 20대 처녀 가슴은 무지하게 방망이질시킨다는 것도 아니까, 진짜 오해하지 마시길. ‘내조의 여왕’에서 ‘아줌마’를 사랑하는 윤상현 같은 인물들이 아니라 아쉽다는 거니까. 아, 그래도 진심으로 이승기의 멋진 연기는 반갑다. 예전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예의바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괜찮은 연예인’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탤런트로도 이렇게 잘 되니 말이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찬란한 유산’은 아줌마인 나를 홀려버린 드라마, 맞다. 매주 주말 밤, ‘찬란한 유산’의 시청을 위해, 늦게 자는 아기를 일찍 재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니까.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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