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인권감독? 모욕감 안 주려고 조심"(인터뷰)

김건우 기자  |  2009.09.16 17:42
임순례 감독 ⓒ 유동일 기자 eddie@ 임순례 감독 ⓒ 유동일 기자 eddie@


임순례 감독은 2008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감독으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1년 8개월여 만에 인권영화 '날아라 펭귄'으로 관객을 찾는다. 사실 흥행감독으로 입지를 굳힌 임 감독의 차기작이 상업영화가 아닌 인권영화라는 점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인권위원회의 예산이 줄어들고 구조조정 되는 가운데 영화가 축소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권위의 영화들은 미국에서도 교재로 쓰인다. 사명감이 있었다. 또 처음으로 인권영화가 단편에서 장편으로 제작되는 점도 끌렸다."

임순례 감독만큼 인간미가 넘치면서 재미와 감동을 모두 보여주는 감독은 드물다.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임 감독은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을 스크린에 담아왔다. 이번 '날아라 펭귄'에서는 직장, 가정 등을 배경으로 채식주의자, 영어몰입 교육, 황혼 이혼의 위기 등 일상생활의 인권에 대해 그렸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경종을 울린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후 무척 오랜만이다. 상업영화로 만날 줄 알았다.

▶인권위원회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힘들었고 인권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작들보다 예산이 절반으로 줄었다. 인권위의 영화는 미국에서 교재로 쓰일 만큼 활용도가 높다. 그런 점에서도 사명감이 있었다. 또 처음으로 장편으로 제작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날아라 펭귄'에서 연출 의도는 무엇인지.

▶그동안 인권위의 영화는 단편으로 총 41개 작품이 제작됐지만 점점 극장을 찾는 관객의 수가 줄었다. 전에 단편으로 만들 때는 감독들이 여러 명이기 때문에 영화 포인트가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좀 더 쉽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를 찾았다. 그래서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부분을 재미있게 그리려 했다.

-영화에서 다뤄지는 인권침해는 특별한 게 아닌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영어 몰입교육, 채식주의자, 황혼이혼을 앞둔 부분, 사회 초년생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 비중을 똑같이 나눠서 가지고 갈까도 생각했었다. 결국 노부부의 이야기를 중심에 뒀다.

-각 에피소드마다 결말이 행복하지는 않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사회 전체가 관련된 문제는 정답이 없다. 가령 기러기아빠의 이야기를 하면서 외국에 보내지 말자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해볼 수는 있는 것 같다. 또 채식주의자나 노부부의 에피소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가령 극중 손병호 씨는 문소리 씨에 대해 "내가 교육 문제만큼은 송팀장을 뭐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러기아빠들이 갖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결국 관객의 몫인 것 같다.

-가장 공감했던 에피소드는 무엇인지?

▶교육 문제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라 생각한다. 또 채식주의자는 개인적으로 채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게 많다. 특히 영화 작업은 단체 작업이기 때문에 남과 다른 식문화를 가졌을 때 힘든 점을 공감한다. 노부부도 주변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변화 빠른 어머니 사이의 문제를 많이 봐왔다.

-영화 속 대부분 에피소드는 남성들이 약자로 나온다. 남성의 인권에 대한 영화로도 생각했다.

▶남성이나 여성, 특별한 성에 대한 것보다 우리 현실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다뤘다. 남성 인권에 대한 영화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성다움을 강요받는 것도 사회적 폭력 같다. 극중 관객들은 주인공이 "왜 제가 여자친구가 없을 거라고 생각 하세요"라는 대사에 웃는다. 웃는 것 자체가 편견인 거다. 한국사회는 성역할에 대해 강요하는 부분이 크다.

임순례 감독 ⓒ 유동일 기자 eddie@ 임순례 감독 ⓒ 유동일 기자 eddie@


-인권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편견 없이 대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비교적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많이 있을 것 같다. 가령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것도 편견 아닌가. 그 사람의 많은 측면을 발견하려고 고민하고 반성한다.

-인권이 가장 유린되는 곳 중 하나가 영화 현장이다. 스태프들에게도 인권 감독인지.

▶늘 찍을 때마다 주의하려고 한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 스태프 노동조건, 의사소통 방법 등 영화를 찍는 과정도 중요하다.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 앞에서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화를 안내려고 한다.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조심하는 편이다.

이번 영화는 스태프들에게 인권영화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못 주는 대신에 재미있게 찍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었다. 지금까지 현장 중 가장 이상적인 현장이었던 것 같다.

-캐스팅이 눈길을 끈다. 문소리 씨는 '우생순'에서 슈퍼마켓에서 일하더니 커리어우먼이 됐다. 어떻게 캐스팅했는지.

▶사실 배우들에게 줄 수 있는 돈이 너무 적었다. 당시 문소리 씨는 '태왕사신기'를 찍고 있었다. 연기에 방해가 될까봐 제안을 안 했는데 우연히 시나리오를 읽고 먼저 이야기해줬다. 사실 지명도 있는 배우가 먼저 캐스팅되면 섭외에 도움이 되는 점이 많다. 정말 고마웠다.

최규한 씨는 대학로를 지나다가 우연히 봤는데 극중 캐릭터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문제는 노부부를 누가 하느냐 였다. 아무래도 노년 연기자들은 연기를 생활로 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캐스팅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박인환 정혜선 선생님 모두 시나리오에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며 좋아하셨다. 옛날 배우 분들은 일상생활이 묻어나는 리얼리티가 잇는 대본을 좋아하신다.

-감독 임순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임순례 감독은 돈에 욕심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생순'도 사실 투자자들이 선호했던 작품은 아니다.

▶영화마다 목적이 다른 것 같다. 가령 '날아라 펭귄'의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돈이 목적은 아니다. '우생순'은 50억이 넘는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실존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 않겠나. 돈에 대해 관심이 없기 보다는 영화의 다양한 기능을 보여주고 싶다.

-배우를 재발견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한데.

▶특별히 기존에 못하던 연기를 끌어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기존에 배우가 가지고 있던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가령 최규한 씨의 경우에도 전형적인 캐릭터 연기를 했지만 이번에 귀엽고 여성스러운 측면을 보여줬다. '우생순'의 김정은 씨도 이 같은 면을 바랐던 거다. 약간의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시도 안하기에는 우리가 못 보는 배우들의 모습이 많은 것 같다.

-관객층이 넓은 감독으로 인정받는다.

▶모든 감독들의 소망 아닐까? 영화는 특정한 관객층의 특정한 취향을 다루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 그게 작품의 소재, 주제,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영화 형식이 특화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차기작은 있는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김도연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농사짓는 남자가 소를 팔러 갔다가 못 팔고 한 여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아직 캐스팅 중이다. 소설에 판타지가 많아 실사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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