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로 중사가 '디스트릭트9' 프런에 감격한 이유

김관명 기자  |  2009.10.08 11:01


퍼렁별 식구들, 저는 온 우주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두꺼비 대성운 58번 행성 우주침공군 특수선행공작부대 대장 케로로 중사라고 합-니-다. 나는 사실 4명의 부하들과 함께 퍼렁별 정복을 준비하기 위해 왔었다. 타마마 이등병, 쿠루루 상사, 기로로 하사, 도로로 병장. 그래서 다시 하는 말인데, 우주 도령! 지금은 내가 비록 얌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침략자'라는 사실을 잊지마.


그래서 다시 하는 말인데, 최근 우연히 본 '디스트릭트 9'이란 SF영화는 그야말로 나에겐 구세주 같은 영화였다고.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이 느닷없이 제작자로 나선 작품인데, 남아공 닐 블롬캄프 감독의 2005년 단편 '얼라이브 인 요버거'를 3300만달러를 들여 2시간짜리 장편으로 만든 거지. '얼라이브 인 요버거'의 제작자 샬토 코플리가 이번 영화에선 주연으로 나왔지. 지금 듣고 있는 거야?

본론은 지금부터. '디스트릭9'은 나처럼 지구를 찾은 외계인을 다룬 영화라는 거. 나 케로로야 퍼렁별에 잠입했다가 한별이네 집 벽지에서 생포됐지만(내가 거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디스트릭트9'의 외계인들(영화에선 '새우' '바보'라는 뜻의 '프런'이라고 부르더구만, 이런!)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느닷없이 출현했지. 나는 침략자였지만 그들이 왜 이 퍼렁별에 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아. 그냥 온 거라고. 하여간 그 프런들이 지구에서 하는 짓을 봐선 무슨 커다란 대의명분을 가진 '침략자' 같진 않더라고.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 크기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모선이나 '월E'의 웰빙 우주선 크기 정도로 생각하면 돼.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그 거대한 우주선이 어떤 추진 장치도 없이 공중 부양을 할 정도라면 프런의 기술력은 퍼렁별과는 천지차이라는 거, 이게 중요하지. 외계인은 퍼렁별보다 일단 과학기술력이 무지 앞선다는 이 사실이 아주 중요해.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의 그 삼발이 외계인을 떠올려봐. 아니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잠깐 나오는 무지막지한 외계인을 떠올려 봐도 되고. 그것도 아니라면 원시 퍼렁별에 문명을 전해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장면을 떠올려보라고.

특히 프런들의 무기는 그들의 앞선 기술력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야. 레이저총 비슷한 그 무기가 얼마나 탐났으면 '디스트릭트9'의 인간들이 그 걸 빼앗으려고 안달이 났겠어. 더구나 그건 프런들 DNA에만 작동하는 첨단 터치 스타일이어서 지구인들이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봐도 꼼짝도 안한다고. 나 케로로가 언제나 외친 나의 주무기 '우주최강 진공청소기'가 순간 한없이 볼품없어지더라고. 영화에서 나온 에반게리온 닮은 유인탑승 로봇도 괜찮대. 내가 비록 건담 마니아이지만 그 전투력은 탐나더라고.


그건 그거구. '디스트릭트9' 외계인들의 외모에 난 반했다구. 나랑 엇비슷한 양서류 스타일이라는 거. 다들 알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이 바보 개구리야"이고 가장 싫어하는 게 '해부'라는 거. 프런들 역시 '에이리언'의 끔찍하게 생긴 에이리언이나 '미션 투 마르스'의 거대 생명체처럼 촉수 달리고 침 질질 흘리는 스타일이라는 것. '맨 인 블랙'이나 '브이'의 잡다한 외계인 무리들을 떠올려도 좋아. 아니면 스타크래프트의 저그 종족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야.

하여간 이런 양서류 스타일이야말로 우주여행을 위해 그리고 첨단 과학문명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적합하게 진화한 형체라는 것, 잊지 말라구. 사실 양서류의 앞선 문명친화력은 이미 'V'에서 확인한 바이잖아? '매트릭스'에서 지능을 갖게 된 기계들도 형태로만 보면 양서류라고. 아, 내가 비프 스튜를 좋아하듯이 프런들은 통조림에 든 고양이 먹이를 좋아한다는 것. 이것도 알아둘 만해. 'V'에서는 아마 고양이 대신 쥐를 통째로 먹곤 했지?

지금부턴 좀 진지하고 철학적인 얘기를 해볼까. '외계인을 대하는 지구인들의 유형 분석' 정도 되는? 'ET' 생각나지? 어린 주인공들이 ET를 대한 곱디 곱고 착하디 착한 태도는 참으로 옛날 옛적 이야기라고. '판타스틱4' 주인공들은 원래 지구인들이라 그런지 지구를 구하는 의적으로 나오고, 심지어 애니메이션 '몬스터 대 에이리언'에서도 지구인 출신 몬스터들은 선한 무리로 나오는데 요즘 영화에서 외계인은 무조건 '악의 세력'이야.

'디스트릭트9'은 이런 망나니(?) 같은 프런들(물론 지구인들 시각에서라고!)을 무슨 포로수용소 같은 '9구역'에 가둬놓고 감시해버리지. 그들 눈에 외계인은 전쟁을 일으킨 악질 테러범이나, 무시무시한 전염력을 가진 바이러스 중증환자 정도에 불과한 거라고. 아니면 온갖 백신을 만들어 없애버려야 할 컴퓨터 바이러스든지. '맨인블랙'은 그나마 외계인들을 지구인들 눈에 안띄게 조심조심 숨겨놓으며 어느 정도 인격적으로 대하기라도 했지, 프런들은 심지어 지구인 갱단 보는 앞에서조차 학대와 멸시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어쨌든 한별이네가 나 케로로를 남에 눈에 안띄게 집안에 숨겨놓은 정도는 애교라는 사실, 고마워 한별아.(그래도 나는 침략자야!)

그런데 '디스트릭트9'이 위대한 건 이런 외계인들을 바라보는 지구인들의 미묘한 시각의 변화를 아주 맛깔나게 포착했다는 것. 퍼렁별 주인공 샬토 코플리, 이 친구 아주 문제아였다고. 힘도 없으면서 장인 잘 만나서(영화 보면 알게 됨) '프런들의 9구역 강제이주계획' 총 책임자로 발탁됐는데, 이때 보여준 그의 인간성은 한마디로 꽝이었다고. '불쌍한' 프런들의 소중한 알들을 박살내면서 지껄인 그 광기의 환호성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고. 머리가 똑똑한 프런 부자(해킹 마니아 쿠루루 상사와 총명한 타마마 이등병의 조합을 생각하면 됨)가 정지한 모선의 동력원을 찾기 위해 샬토 코플리와 손을 잡았을 때도 그는 틈만 나면 배반을 하려했지.

그런 그가 프런들의 DNA에 감염, 반외계인-반지구인이 되어가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거야. 조금씩 프런들을 동정하게 되었다는 거. 그들도 알고보면 외모만 다를 뿐이지 부성애 있고, 놀기 좋아하고, 탐욕스러운 건 퍼렁별 식구들이랑 마찬가지라는 거, 이것을 깨달은 거야. 프런계의 아인슈타인이라 할 만한 주인공 프런과 샬토 코플리가 영화 막판 보여준 그 위대한 '우정'은 ET와 꼬마 엘리어트의 우정처럼 영화사에 오래 남을 만해. 마치 나 케로로가 나중에 등장한 내 소대원들에게 "절대 우주 도령네에 피해를 줘서는 안돼"라고 엄명을 내린 것 같은 그런 우정이랄까. 만약 '디스트릭트9'에 이런 외계인과 지구인간의 아슬아슬한 교감 내지 교화가 없었으면 그저 그런 SF영화에 머물렀을 거야. 이게 이 영화가 위대한 점이라고.

퍼렁별 식구들, 이건 알아두라고. 자신과 다르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그 못된 심성은 이제 집어치우라고. 자신들이 무슨 전쟁의 승리자이거나 백신 연구자거나 격리수용소 감시자 같은 착각은 이제 그만 두라고. 그것도 꼭 약자 앞에서만 강해지는 그 역겨운 심보 말이야. 나 케로로와 프런들을 보면서 아직도 그걸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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