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진 기자 songhj@
이름 석 자로 하나의 장르를 설명하는 감독들이 있다. 기존 장르의 법칙을 따르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 사람들. 멜로 장르에 허진호식 멜로라는 세계가 있는 것처럼 코미디에는 장진식 코미디라는 세계가 존재한다.
장진이 돌아왔다. 22일 개봉한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세 명의 대통령을 장진 특유의 코미디가 잘 녹아 있는 영화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로또에 당첨된 대통령 에피소드에선 슬랩스틱 코미디가, 신장 이식을 해줘야 하는 처지에 놓인 대통령 에피소드에선 장진 특유의 대사 코미디가,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대통령 에피소드에선 홈 코미디로 구성돼 있다. 코미디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하지만 장진 감독은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영화를 '읽는' 사람들이 죄다 정치로 풀어낸 까닭이다. 그는 한 영화잡지 별점을 가리키며 "과거의 인식 틀에 갇혀서 영화를 재단하고 있다"며 "시대가 바뀌었으면 영화를 보고 읽는 틀도 바꿔야 한다"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장진 감독이 대통령을 소재로 코미디를 한 까닭도 엄숙주의에 '똥침'을 날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극 중 장동건이 재래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장면은 MB가 재래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은 뒤 재촬영했다던데.
▶MB 정부를 까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아니 역대정부에서 재래시장을 안 간 대통령이 있나. 풍자와 우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더 없이 걸맞은 소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이 영화에 정치색을 입히기 쉽게 만든다. 특히나 '간첩 리철진'도 그랬고, '웰컴 투 동막골'도 그랬고 전과(?) 때문에 그렇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오히려 좌파라고 불리던 정부 때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아니 그런 것으로 싸우는 게 우습지 않나. 싸우려면 품위 있게 싸워야 하지 않겠나.
-촬영 도중 고 노무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것도 이런저런 말을 낳았는데.
▶촬영 2회차 때였다. 장동건이 퇴임 대통령으로 강의를 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봤다시피 대통령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나. 대통령 영화 찍으면서 봉하마을을 다녀오면 말들이 나올 것 같아 새벽에 다녀왔다. 결국 기사가 나와 버렸다.
-영화 개봉에 앞서 두 명의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는데.
▶행여라도 일련의 사건들이 마케팅으로 회자될까 걱정했다. 그렇다면 너무나 속상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시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 각자 다른 대통령을 추억할 수밖에 없는데.
▶추억이라기 보단 속상하고 서운하고 또 좋아할 수 있는 대통령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지금 시대에 영화감독이 영화를 갖고 더구나 상업영화를 갖고 뭔가를 어필하기 위해 운동을 하면 치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아니겠냐. 이 영화를 갖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더 싸우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고. 왜 계몽정신이 없냐는 사람도 있다.
난 그런 전략이 과연 옳을까 의심이 든다. 이 시대에 안 맞는 방법이다. 세상이 변해가면 전략도 변해가야 하고 영화를 봐라보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송희진 기자 songhj@
-대통령이 겪는 공적인 문제를 지극히 사적으로 풀어낸다. 거시를 미시로 풀어낸 이유가 있다면.
▶일단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각 에피소드가 기승전결이 다 있다 보니 템포도 맞춰야 했다. 보는 관객의 옥타브를 높이고 싶었고 아버지 세대부터 아들 세대까지 다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쉽게 풀어낸 것이다.
-에피소드마다 기승전결이 있다 보니 전체를 관통하는 하이라이트가 없다. 세 번째 에피소드가 전체 이야기의 최고점이 돼야 하는데 호오가 갈리기도 하는데.
▶세 번째 이야기가 절정이 돼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주말드라마 풍이다 보니 호오가 갈리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관객들은 그런 부분을 오히려 잘 보시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슬랩스틱으로 시작돼 언어적인 위트로 진행되다 '내 인생의 황금기'같은 주말 드라마 풍으로 끝난다. 그런 부분을 공감해주시는 것 같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세 개의 에피소드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런 부분도 지금까진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을 소재로 한 만큼 이 이야기를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특정 관객층과 적정한 수준이 있었을 텐데.
▶요즘 관객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데.(웃음) 그렇기 때문에서라도 특정 대통령이나 시대를 맞추지 않았다. 전체 관람가이긴 하지만 대통령을 뽑아봤거나 뽑는 시기에 도달한 사람들이 아무래도 더 즐겼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적어도 대통령에 대해 한 번쯤 생각은 해봤을 사람들일 테니깐.
-하나를 관통하는 코미디 흐름이 없다. 오히려 장진 코미디 종합선물세트처럼 다른 코미디 방식을 풀어놨는데. 그러다보니 장진 코미디에 호오가 분명했던 사람들에겐 낯설 수도 있는데.
▶이 영화는 내 영화 중 가장 넓다. 진폭은 줄이고 평폭은 넓혔다고 할까. 그래서 내 코드에 열광했던 사람들에겐 심심할 수도 있다. 반면 그동안 내 영화에 서운했던 사람들에겐 좀 더 공감할 수도 있을 테고.
-영화가 긍정적인 판타지로 가득한데.
▶'간첩 리철진'이 환상을 현실로 만들었다면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현실을 환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표현은 잘 안 하지만 '꿈의 대통령'을 만나고 싶었다.
-장동건이 도장을 찍기 전부터 장진 영화에 장동건이 한다더라는 소문을 장진 본인이 냈다는 게 영화계에 널리 퍼진 소문인데.
▶(씨익 웃으며)장동건이란 배우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꽃미남에 어느 정도 나이도 있는 배우면 사실 뻔하지 않나. 그런데 장동건은 그동안 센 역할을 했다. 그래서 조금만 바꿔도 파장이 클 것 같았다. 이왕 하려면 최고면 더 좋고. 그랬더니 더 신선해졌고 웃음도 커졌다. 또 세 대통령의 이야기다보니 한 명이 중심을 잡아주면 좋지 않나. 장동건이 해서 분량이 크지 않은데도 그런 효과가 나오기도 했다.
송희진 기자 songhj@
-청와대 주방에서 모든 갈등이 해결된다. 도식적이기도 하고 주방장이 해결사처럼 비춰지기도 한데.
▶주방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다만 청와대에서 정치적이지 않고 사적인 장소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각 대통령이 먹는 음식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누가 들어도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닌데 현답을 내놓을 수 있길 바랐다. 결국 국민의 소리를 들으라는 장치였고. 다행히 과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은 전적으로 배우의 힘이다.
-과거사 청산, 미일과의 관계, 수도 지방 이전 등이 주요 소재다. 다른 이야기도 있었을 텐데.
▶마지막 에피소드 말고 앞의 두개는 미리 써놓은 것이었다. 그 때는 대통령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로또에 됐는데 어쩔 수 없이 좋은 데 써야 하는 사람과 신장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가능한 사람이 대통령 밖에 없는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대통령에 이야기를 맞춘 게 아니라 이야기에 대통령을 맞춘 셈이다.
-대통령 영화를 찍었는데 청와대에 협조를 받거나 청와대 시사를 꾸밀 수도 있었을 텐데.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자존심을 파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자존심을 팔고 싶진 않았다. 그냥 만들어서 찍자고 했다. 청와대 시사는 그냥 예매하고 봐주셨으면 좋겠다.(웃음) 뭐 예능으로 찍은 것을 다큐로 받아들이면 안되니깐.
-그럼 이 영화를 꼭 봤으면 하는 대통령이 있다면.
▶넥스트. 다음 대통령.
-계속 코미디를 할 생각인가.
▶코미디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그래서 더 잘 만들고 싶다. 언젠가는 품위 있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 코미디야 말로 모든 장르의 상위에 있을 수 있다. 액션코미디, 멜로코미디, 에로코미디. 한국코미디에는 선입견이 있다. 난 코미디에서 모범적인 장르의 변주를 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 부산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초청돼 코미디 감독으로서 고마웠다.
-엄숙주의에 대한 반발심리로 코미디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점이 있다. 일단 나 스스로 엄숙한 것을 못 참는다. 이럴 때일수록 웃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권위주의나 엄숙주의에 반발심리도 있고 그럴 때는 똥침을 날리고 싶기도 하고.(웃음)
-장진식 코미디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힘든 부분도 있지만 큰 걱정은 없다. 누구누구 스타일이다에 메인다면 끝이겠지. 하지만 늘 변하려 하니깐. 또 거기에 갇혀 있기에는 심심해서 못한다.
-'무릎팍도사'에서 내가 제작하면 잘되는데 왜 내가 만들면 흥행이 잘 안될까 고민을 털어놨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그 답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는 그 사람들이 했으니 그 만큼 한 것이고 내가 한 것은 그 사람들이 해도 그 정도 됐을 것이다. (웃음) 다만 이런 것은 있다. 결혼을 하고 안주하려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올 겨울에는 전혀 제도권과 상관없는 비영화적인 영화를 한 번 찍으려 한다. 저예산으로. 그리고 내년에는 사극을 찍으려 한다. 사극 코미디에 첫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