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진실 영정 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2000년대 연예계의 최대 이슈는 ‘자살’이었다. 충격은 연이어 일어났다. 소위 잘나가는 인기 연예인의 자살 뉴스들이 터져 나왔다. 또, 꽃피우지 못한 신인 배우의 자살까지 더해 그 비통함의 무게는 중첩되었다. 1990년대 연예계에서 '연예인 자살'은 찾아보기 힘든 뉴스였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2000년대 들어 영화배우 이은주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05년도의 일이었다. 2007년 1월과 2월에 가수 유니와 배우 정다빈. 2008년 9월에 배우 안재환. 그리고 며칠 뒤 당대 톱스타로 군림한 최진실 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또, 신인 배우 장자연과 우승연이 그 길을 선택하면서 2005년 이후 4년 만에 연예계는 7명의 배우가 생을 마감하는 비극을 맞았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크고 작은 전속계약 분쟁은 지속적으로 발발했다.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이었던 연예인이 법적 구제 절차를 밟고 목소리를 키움으로써 연예계의 일대 변화를 예고했다.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법적 분쟁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연예인 계약과 관리 시스템에 경종을 울린 일대 사건이었다. 비록 현재진행형의 사건이지만, 연예전속계약의 새로운 전향적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동방신기 멤버 시아준수, 영웅재중, 믹키유천이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전속 계약 해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SM은 본안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신청인들의 의사에 반해 연예 활동에 관해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를 하지 말고, 독자적인 연예 활동을 방해하지 말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연예인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묻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이는 세계 인권 선언 1조 조항이다. 한 개인이 특정 지위에 있더라도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적으로 오늘의 연예인에게 그러한 보편적 권리는 연예인이 됨으로써 포기해야 되는 의무이기도 하다. 이는 비켜설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며 슬픈 자화상이다.
기술과 미디어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할수록 연예인의 인권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기술이 편리를 제공한 만큼 인권도 손쉽게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설적 사실은 연예 산업의 역사로도 증빙된다. 1990년대 이전에서 초반까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도재 방식의 가내 수공업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공중파 TV와 라디오, 신문과 잡지를 비롯한 손에 꼽힐 만큼의 미디어 시스템에 의해 연예인의 이미지가 고착되었고 스타는 탄생되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특정 미디어의 노출을 통해 켄텐츠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주입시키는 방식이었다. 미디어 권력자와 친분에 의한 홍보 방식이 통하던 시대였다.
그 시기의 대중은 특정 연예인을 비방하기 위한 인권 모욕적인 공간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었다. 뿐 만 아니라, 연예인의 흠집을 낼만한 입소문의 속도는 연예인의 성장 속도를 결코 앞지를 수 없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IT강국으로 자리했다. 동시에 우리는 정보의 창 ‘인터넷과 포털사이트’와 맞닥뜨린다. 편지를 주고받던 세상에서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의 안부를 묻는 혁신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책상위의 사전도 사라졌고, 인터넷을 통해 모든 소비가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편리’는 대중을 손쉽게 변하도록 만들었다. 익명의 존재로 잠복한 대중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잠재된 가학성을 적나라하고도 폭력적으로 드러냈다. 가장 손쉽게 접하는 연예인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무작위로 공표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인신공격의 비방을 언제든지 조우할 수 있는 환경 속에 돌입했다. ‘댓글’이 그 시초의 포문을 연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차마 감당할 수 없는, 대책 없는 글들이 난무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어떤 의도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만행을 익명의 공간에서 스스럼없이 펼쳐보였다.
고인이 된 여가수와 여배우는 생전, 근거 없는 추악한 비방임에도 불구하고 늘 대중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고 소회했다. 인터넷 게시판의 익명성을 악용하여 상습적으로 남을 헐뜯거나 허위 사실을 퍼뜨리는 '악플'로 한 여가수는 실제로 심적 부담을 심각하게 받았고, 공황 상태를 맞이한 적도 있었다. 그들의 죽음이 최소한의 인권을 짓밟은 ‘댓글’에 의해 좌우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일상에서 받아야 했던 삶의 무게감은 고루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연예인 인권 유린의 가공할만한 위력은 ‘댓글’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파일공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예인의 사생활 노출 영상이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인터넷 공간을 통해 모든 네티즌들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동영상 파일을 보고 ‘불펌’(인터넷상에서, 허락을 받지 않고 불법으로 다른 사람의 글이나 자료를 그대로 가져오거나 가져가는 일)을 반복하는 공격성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그것은 추악했으며, 마치 굶주림의 극한 앞에 놓인 동물이 이성을 잃고 사정없이 물어뜯는 모습과 달리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일개 개인의 행태에서 무리로 확산되었다. 실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연예인 X파일’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정상의 연예인 99명과 유망한 신인 26명의 신상정보를 정리한 파워포인트 문서였다. 2005년 1월 경, 이 문서가 포털 사이트 및 파일 공유 서비스,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서 급격히 확산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정확한 제목은 ‘광고모델 DB 구축을 위한 사외 전문가 Depth Interview 결과 보고서’였다. 파워포인트 112장 분량으로 제일기획이 광고 모델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사의 연예정보 리포터 2명과 스포츠신문, 통신사 기자 8명에게 연예인에 대한 정보를 인터뷰하고 이것을 정리한 것으로 5가지 항목으로 조사되었다. 현재 위치, 비전, 매력·재능, 자기관리, 그리고 ‘소문’이었다.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라는 항목은 순전히 사생활에 대한 ‘그렇고 그렇다’ 식의 정체불명의 꼬리표가 연예인들에게 붙은 셈이다.
광고 모델로 계약한 연예인에게 차후에 발생할지 모르는 스캔들을 미리 조사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었다고 주장했으나, 일반인들에게 루머로 떠돌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문서로 정리되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안겨줬다.
2005년 증권가를 중심으로 ‘연예인 X파일’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파돼 파문을 일으켰던 정보지(속칭 증권가 찌라시)도 그 인권 유린의 폭력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배우 A는 진짜 변태’ ‘가수 B가 바람피우다 걸렸다’는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이 실명으로 나열된 문서가 나돌았다. 파일을 보고 재미삼아 농담처럼 던졌던 말들이 공공연한 사실로 발전했다. 그 사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숱하다. 아마도 지금 이 시간에도 최진실의 자살이 ‘사채’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 영향권에 함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허위사실을 공표한 증권사 여성은 괴담에 대한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권 유린은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이어졌다. 선정적 보도였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의거, 자살에 대한 보도가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망각한 사례는 한 두건이 아니다. 미디어의 자살 보도 방식은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자명한 일이다. 자살 보도가 자살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은 이미 통계학적으로 검증되었기에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 미달의 뉴스는 난무했다. 보도되지 않아야 할 뉴스들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들은 또 한 번의 인권을 유린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극의 주범은 누구인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대중’이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의 게시판 댓글문화 그 자체가 부정적일 수 없다. 자유롭고 건강한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비난을 위한 비판의 공간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위기’다. 역기능의 극단적 치우침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인권 침해 공간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것은 단순히 인권침해의 공간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사회학자 오그번은 사회 변동론에서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가 물질적 영역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심각한 사회적 부조화가 야기된다고 주장했다. 곧, 문화지체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국내 연예인들은 해외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실제로 한류문화는 이미 아시아 시장을 점령했고, 빌보드차트와 헐리우드 진출을 이뤄냈다. 세계시장의 경쟁 속으로 뛰어든 우리 대중문화를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는 촌극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이것이야 말로 문화지체의 뚜렷한 징후일 것이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겨울호에 게재될 글을 미리' 머니투데이 스타뉴스'를 통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