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 멤버 중 시아준수 믹키유천 영웅재중ⓒ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몇 해 전, 방송연예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질문을 해왔다.
“어떤 연예기획사가 제일 좋은 회사인가요?”
그래서 “어떤 연예기획사에 들어가고 싶은가?”라고 되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홍보력이 뛰어난 회사’ ‘스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회사’ ‘이미지 관리를 잘하는 회사’ 등이었다.
결국, 자신의 권리와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답변에서 보듯이 연예기획사의 권력에 자신을 맞춰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로 들린다. 좀 더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나는 연예기획사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이 질문은 비단 연예인 지망생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 가족들에게도 심대한 관심사이거니와 쉽게 풀리지 않는 의문일 것이다. 무를 베듯 정확한 한마디로 답변하기란 그리 쉬운 질문이 아니지만 늘 생각해 왔고 지향했던 바가 있기에 필자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수익의 분배가 정확한 회사.”
연예계에서는 계약 문제의 불이행으로 대형 스타들의 법적 소송이 매년 적잖게 일어나고 있다. 갈등의 속내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겠는가마는 대략 ‘분배’에 대한 서로 이견이 충돌하지 않았다면 소송이라는 극단적인 해결책이 대두할 리 없었을 것이다. 소속사의 ‘분배’에 불만을 가진 연예인으로서는 활동한 만큼의 금전적 수혜가 턱없이 모자랐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일들이 누적되었을 때 그 불만감은 연예 활동을 그만두고 싶은 박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또 소속사의 입장에서는 수년간 공을 들여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더니 소속사와의 신뢰를 저버린 채, 돈에 현혹되어 계약을 파기하는 일 역시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동방신기 법적 분쟁은 여러모로 시사 하는바가 크다. 아시아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한류 첨병의 그룹과 국내 정상의 대형 기획사간의 분쟁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은 가요계를 넘어 국제적 화두가 되고 있다. 이를 두고 불공정 계약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고 평가하지만 한편으로 신인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하는 산업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과거에도 H.O.T, god, 젝스키스, 샵 등 아이돌 그룹들이 해체됐지만 소송까지는 가지 않았다. 인기 정상의 그룹과 국내 최고의 시스템을 자랑하는 SM엔터테인먼트의 법적 분쟁을 계기로 좀 더 투명성 있는 계약관계를 확보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연예인의 사건사고와 계약 관련의 법적 분쟁은 다른 조직사회보다 파급효과가 커 마치 연예계가 멍들어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통계자료를 보면 학교 사회, 의료 조직 등 다른 사회에 비해 연예계의 사건사고가 훨씬 적지만 언론매체의 선정적 보도 등으로 파급효과는 훨씬 크기 때문이다.
"13년의 연예 전속 계약 기간은 노예계약인가요?"
연예인과 기획사간의 법정 공방을 보면서 계약 기간을 본 사람들이 불쑥 내뱉는 말이다. 언론 매체에서도 일명 노예계약이라고 서슴지 않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노예라는 사전적 의미는 남의 소유물로 되어 부림을 당하는 사람. 모든 권리와 생산 수단을 빼앗기고, 사고 팔리기도 하던 노예제 사회의 피지배 계급을 일컫는 말이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를 빼앗겨 자기 의사나 행동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에게 사역(使役)되는 사람이다. ‘갑’이라 칭하는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을’이 쌍방 간에 계약서를 토대로 자의에 따라 도장을 찍었다면 그것은 노예계약이라 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상대적 약자인 ‘을’이 정황상 자신을 주장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을 수는 있겠으나 계약 정당하게 유효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서로 동의하에 체결된 계약을 두고 '노예계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상당히 선정적 표현인 것은 틀림없다. 이번 동방신기의 법적 공방의 진실을 외부에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개연성 있는 추정은 정황상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이미 전속 계약서를 5차례 수정했다는 점에서 ‘갑’인 연예기획사가 연예인 ‘을’의 인권을 강제적으로 억압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신기 3명의 멤버들이 어렵게 구축한 위상을 흔들면서까지 법적 소송에 돌입한 것은 그간 보아왔던 소송과 매우 이질적이다. 활동을 통한 수입 분배액이 장기간 체불되었다거나 연예기획사의 분배 방식이 계약서와 다른 경우, 도저히 인위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상황에서 법적 소송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대형기획사를 상대로 계약기간의 문제를 들고 법적 소송을 감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을’의 권리가 연예시장에서 상당히 성장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1990년대 중반 지방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무대에 오른 굴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와 같은 인권 유린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더 나은 환경을 택하려는 일종의 권리 창출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의미심장하다.
훈련생을 거쳐 힘들게 데뷔한 연예인이 인기를 얻어 음악 산업에서 경제를 창출하는 정도의 위치라면 자기행보를 생각하게 된다. ‘향후 나의 행보는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 ‘지금 잘하고 있는가’ 떴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환경이 도래된 것이다.
반면, 연예기획사의 입장에서는 정규 앨범 한 장당 총 제작비와 진행비로 평균 2억5000만~4억 원이 소요된다. 가수 캐스팅 비용, 트레이닝, 음반 제작, 의상비·안무연습, 각종 부대비용, 해외 진출비, 인건비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웬만한 소속사들은 음반 2장 연속 망하면 존속이 불가능할 정도로 영세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속사 입장에선 연예인을 소모품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당연히 인격적인 대우와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기획사와 연예인의 신뢰는 사실 수익 분배에서 생긴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중 분배의 문제는 분쟁의 최대 쟁점이다. 분배는 사실상 투자이자 신뢰를 구축하는 가장 주요한 단서가 된다. 분배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노예계약인 것이다. 또한, 90년대 중반이후부터 사실상 가요산업으로서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연예인에 대한 인격적 존중 부재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또한 스타가 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연예인들의 인성 부재도 큰 마찰의 불씨를 제공했다. 인기를 얻고서도 음악적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의 자세는 찾아볼 수 없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도덕적 해이와 범법 행위에 휘말리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제공하기도 했다.
계약서상의 분배는 ‘수익금은 익월 말에 정산 한다’고 되어 있다. 기획사는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내 연예기획사 중에는 계약서와는 달리 특이한 지급 방식을 채택하면서 신뢰를 획득하는 곳도 있다. 활동을 통해 들어온 수입을 바로 지급하는 경우다. 최대한 빨리 수익금을 지급함으로써 연예인 스스로에게 재투자를 할 수는 환경을 구축해주는 길은 재생산의 의미를 지닌다. 결국 분배의 방식이 신뢰 구축의 첩경임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분쟁의 문제는 연예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스타 지망생들의 인식 부재도 한몫을 한다. 단순히 스타가 되면 유명해지고 동시에 돈을 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연예 기획사가 그들에게 인성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기획사는 기획형 연예인인 아이돌을 어린애가 아닌 나와 공존하는 손님이라는 인격적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 상품은 곧 나의 생명줄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연예인의 이미지 소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법이 도출될 것이다. 아티스트 중심의 기획사들은 연예인을 극존중해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은 주지할 사실이다.
지난 2009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마련한 연예인 전속 계약은 그간 계약 기간과 연예인 사생활에 대한 침해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갑’과 ‘을’간의 권리의 간극을 좁혀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제도적으로 보완하자면, 표준계약서에 ‘자동 계약해지’ 조항을 넣을 필요도 있다. 연예기획사의 관리와 매니지먼트 능력 부재로 해당 연예인들이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사실상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발묶인 인권인 것이다. 특정 기간 해당 연예인의 활동이 없을 시 계약이 자동해지 테이블에 오를 수 있는 조항이 있어야 한다. 법적 분쟁의 비용과 기간은 연예인의 수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법정 소송으로 가기 전 부당 대우 등을 구제할 수 있는 기구가 만들어지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이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계약서라 하더라도 ‘소통과 배려’를 뛰어넘을 만한 계약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계약서를 체결한 것이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겨울호에 게재될 글을 미리' 머니투데이 스타뉴스'를 통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