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출국 당시의 재범 ⓒ유동일 기자
정말 전광석화였다. 지난 9월 2PM 재범이 대한민국 비하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고 비난여론이 들끓고 미국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건. 딱 3일 걸렸다. 참 무서운 나라다.
그리고 2개월여 후. 지난 21일 케이블채널 Mnet의 연말가요시상식인 MAMA에 2PM이 나왔다. 남자그룹상을 받은 2PM의 남은 여섯 멤버는 울먹였다. 택연은 "재범이형, 형 아니었으면 이 상 못받았을 거야"라고까지 했다. 과연 이 수상소감은 아이돌의 한낱 상처받기 쉬운 감성 탓이었을까.
별로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재범은 '논란'이 일기 며칠 전 스타뉴스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블로거 10여명과 인터뷰를 했었다. 기념사진도 찍고, 화기애애하게 말도 나누고 그랬다. 그때 몇몇 블로거의 재범 관련 인터뷰를 그대로 옮겨보자.
-2PM 멤버 중 한 명이 경쟁팀에 소속되어 있다면 싫었을 멤버는?
▶2PM 멤버 전부 다 필요하다. 어느 누구 하나 뺄 수 없다.
▶(이때 닉쿤이 거들었다)재범이 다른 팀에 있다면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그 이유는 재범은 모든 게 완벽하니까.
-2PM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2PM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정상이 되고 싶다. 개인적인 목표는 앨범을 낼 때마다 언제나 업그레이드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블로거는 이렇게 덧붙였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는 많이 어색하고 질문에 대한 예상되지 않은 답변이 많았으나, 2PM 특유의 활발함과 유머러스함으로 인터뷰 내내 즐거운 분위기였다. 재범은 리더답게 2PM에 대한 전체적인 틀을 잡아나가며 인터뷰를 잘 이끌었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은 모순과 상처와 극단 사이에서 질퍽거리고 있다. 2009년 남자그룹상을 받은 인기절정의 아이돌이, 돌팔매질을 받으며 떠난 멤버를 그리워하며 울먹이는 이 장면은. "세계 정상의 그룹이 되겠다"는 한 청년이, 사랑하는 후배 동료 팬들을 남기고 죄인처럼 떠나있고, 멤버와 팬들은 그를 2개월째 그리워하는.
더욱이 파렴치범도 아니고, 뺑소니범도 아니고, 누구처럼 병역을 피하기 위해 시민권을 택한 것도 아니고, 한 나라를 책임질 정치인·경제인도 아닌, 스무살 또래의 아이돌이었을 뿐인 그가. 무대에서 때로는 현실을 조목조목 따지고, 때로는 대놓고 사회를 미워하는 폭발음을 내도 좋을 그들이.
물론 이런 구석도 있다.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운전면허증 딴 걸 인생 최고의 경사로 여기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기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눈에 재범은 그저 다른 나라 미국의 시민권자일 뿐이다. 악다구니 같은 서울의 좁은 지붕 밑에서 살면, 넓은 미국이란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재범이 더욱 남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 이런 그가 "한국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일단 눈에 거슬리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나와 우리 가족이 살아가야 하는 우리나라니까.
해서 이런 그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라고 한 건, 아무리 어렸을 적 치기라 해도 '울컥' 하게 되는 건 맞다. "넌, 뭐야?" 이런 식의. 게다가 대한민국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그가, 대한민국을 비난한 것도 어떻게 보면 앞뒤가 안 맞다.
하지만 '울컥'과 비판과 질타와, 9월의 어느날 대낮에 자행된 '오스트라시즘'은 별개였다. 속으론 대한민국을 시도 때도 없이 낮게 보고 깔보고 도망치고 싶어하는 우리들이, 표면으로 떠오른 여린 송곳 하나에 그 험한 해머질을 해댄 건 분명 이율배반이다. 이건, 자기와는 다른, 자기 가치관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건 참을 수 없는 '파시즘'에 다름 아니다.
2000년 한양대 임지현 교수는 무릎을 딱 치게 만들 정도로 혜안이 빛난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책을 냈다. 권위주의적이고, 대중동원적이고, 가부장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그 모든 이름들을 파시즘이라고 할 때, 노동자·학생 연대를 외치면서도 타교생이나 외부인의 도서관 출입을 막는 서울대생들, 낙선 인사차 방문한 청와대에서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리는 1980년대 운동권 출신 후보, 이 모든 것들이 일상에 파고든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놀라운 통찰력. 바로 이러한 우리 안의 파시즘이 재범을 내몬 것은 아닐까.
재범, 당신이 당시 겸허히 사과한 건 옳았다. 네티즌들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를 비판한 것 또한 나쁘지 않았다. 다만 같이 한 하늘, 한 지붕 밑에선 숨 쉴 수 없을 것 같다며 재범을 거칠게 내몬 우리의 파시즘이 몹시 진저리날 뿐이다. 어린 아이돌에게조차 무결점의 도덕성과 애국심을 강요한 우리안의 파시즘이.
2PM의 첫 정규 앨범 제목은 잘 알려진 대로 '01:59 PM'이다. 무슨 뜻인지 다 알리라. 수록곡도 이상하게 지금 풍경과 맞아 떨어진다. '기다리다 지친다' '너에게 미쳤었다' '니가 밉다' 그리고 '돌아올지도 몰라'..
재범, 맞다. 이제 돌아와라. 그것만이 광풍처럼 언제든 몰아칠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한 경고일 테고,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제2의 재범을 막는 일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