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 ⓒ사진=송희진 기자
오랜만에 김장훈을 만났다. 크고 작은 행사를 통해 종종 만나기는 하지만 이렇게 허심탄회한 속 얘기를 해 본 건 처음인 듯하다. 기자란 직업의 장점이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거지만, 그처럼 기자를 대해주는 이도 드물기 때문이다. 늘 연예인 입맛에 맞는 기사만을 쓸 수 없는 게 기자의 숙명이기에 기자와 취재원 사이에는 늘 보이지 않는 유리장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김장훈은 오히려 1년에 하루 이틀 정도 연예인의 단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쓰는 날도 있었으면 좋겠단다. 몇 해 전 자신의 공연을 혹평한 글을 보면서 욱~ 하기도 했지만 깨달은 점도 있다며.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나를 위한 기부'"
사실 기자도 그를 처음 알았을 땐 의구심을 가졌다. 왜 그렇게 기부와 선행을 하는지. 혹시 홍보를 위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시간이 말해줬다. 어느 누구도 홍보를 위해 김장훈처럼 선행을 할 수는 없다고.
"하늘이 도우셨는지 늘 기대 이상의 결과물들이 돌아왔다. 그럴 때면 불안해졌다. 내가 이렇게 큰 행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하고. 그래서 기부를 시작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기부다. 마음의 보험이랄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99개를 갖고 있으면 1개를 갖고 있는 사람의 것을 뺏어 100개를 채우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이다. 그랬더니 김장훈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공연할 때 관객들에게 받는 행복을 생각하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이어 선행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홍보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독도표기 정당성을 알리는 것과 서해안 방제작업 등은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동안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아꼈다. 혹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든다고 할까봐.(웃음) 하지만 사실 혼자 공부도 많이 했고, 그간 독도 문제로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다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졌다."
물론 김장훈은 매년 찾아가 가족처럼 어울리는 아이들과의 행복을 일일이 떠벌리며 할 순 없지 않냐며 이 같은 일은 조용히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공개적으로, 또 비공개적으로 이 일, 저 일 신경 쓰느라 그는 참 24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그는 이런 삶이 그를 살게 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김장훈은 일이 없을 때 오히려 망가지는 사람이다. 어떻게 일년 내내 공연을 하나 싶지만, 공연을 하기 위해 불면증과 싸우며 잠을 청하고 먹기 싫은 밥도 먹고 하기 싫은 운동도 한다.
기부는 김장훈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이들에 대한 작은 답례다. 그는 "나보다 현장에서 자원 봉사하는 분들이 더 큰 분들"이라고 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의 관객을 믿고 산다."
그렇다 해도 김장훈은 참 희한한 사람이다. 그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역동적인 삶을 사면서 매일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시도하고 도전한다.
한번은 공연 연출을 하다 관객들에게 밤하늘을 선물하고 싶었다. 김장훈은 곧바로 수십 명의 인부와 막대한 돈을 투자해 공연장 천장에 조명을 달았다. 그리곤 노래 '마법의 성'을 부르다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너무 놀라지 말아요' 대목에서 천장의 조명을 켜 밤하늘의 별을 선물했으며, 자신의 몸에 와이어를 달아 관객 위를 날았다.
"어떤 분이 내게 그러셨다. 자신이 본 가수 중에 제일 자신 없어하고, 그래서 늘 무언가를 한다고. 맞는 말이다. 자신이 없어서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거다. 사실 오늘의 관객이 어떻게 내일도 내 공연에 와줄 것이라 자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 오늘의 관객을 위해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영혼을 불태운다."
김장훈은 "목숨 걸고 무대에 서는 걸 팬들도 안다"며 "팬클럽 친구들도 오히려 내가 망가졌을 때 더 큰 기대를 하는 변태 같은 면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 어깨가 부러져 5개의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을 때, 김장훈은 취소해야 했지만 약속된 공연 무대에 올랐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어깨에 힘을 줄 수 없어 미친 듯 괴로웠지만 관객들은 뜨거운 눈물과 박수가 그를 노래케 했다.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방송에서 고통을 친구로 삼지 않으면 발레를 못한다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게 바로 딴따라의 숙명인 것 같다."
'딴따라'. 연예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지만 그는 기꺼이 관객을 위해서라면 딴따라가 되겠다고 했다.
김장훈 ⓒ사진=송희진 기자
2007년 12월의 추운 겨울 날, 싸이의 재입대 현장에 김장훈이 나타났다. 어느 누구하나 말을 아낄 때 김장훈은 기꺼이 싸이와 함께 한, 몇 안되는 인물이다.
"싸이 입장에서는 세상이 공평치 않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다녀오라고 조언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그가 죽었을 테니까."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가수는 두 번 죽는다. 무대에 올라갈 수 없을 때 그리고 숨이 끊어질 때. 싸이가 재입대를 하지 않았다면 다시 무대에 오르는 게 쉽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 당시 사람들의 감정이 워낙 격앙돼 있었으니까. 시간은 어차피 흐른다. 그리고 진짜 지금은 싸이가 내 옆에 있지 않은가. 하하하."
김장훈의 말이 맞다. 싸이는 재입대 전보다 훨씬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돌아왔고, '절친' 김장훈과 '완타치'라는 타이틀로 재미난 연말 공연을 진행 중이다. "친한 것과 일을 함께 하는 것은 별개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1+1=2가 아닌 1+1=100이 되는 공연이 나왔다"는 김장훈의 말처럼 그를 긴장케 하는 유일한 사람 싸이와의 만남은 만족 100%다.
"함께 했을 때 오히려 서로 싫어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실제로 의견 충돌도 많았고 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겪으면 겪을수록 싸이란 친구가 동생이지만 참 그릇이 큰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눈물나게 만족스럽다.(웃음)"
◆"무대를 몰랐다면 결혼했겠지만.."
물론 김장훈이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고려한 것 중 하나가 싸이 가족의 만족감이다. 혹여 두 명이 함께 하는 합동공연에서 누구에게 비중이 치우칠까 고민했다. 다행히 싸이의 아내는 물론 가족들의 만족도 100%다.
"가족들이 만족스러워하는 것 보니 나도 좋더라."
이쯤에서 질문을 던졌다. 김장훈씨도 이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작은 행복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무대를 몰랐다면 이미 결혼했을 거다. 가수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무대에 섰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솔직히 내가 여자 친구가 없었겠는가. 다만 공연이 끝나면 또 공연 구상하는 등 일만 하는 나를 견뎌줄 사람이 없다."
그는 여전히 사랑보단 일이라는 듯 미소 짓는다. 김장훈을 살게 하는 일을 어떻게 포기하라 말할 수 있을까. 다만 김장훈을 좋아하는 팬의 한 사람으로 그도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의 작은 행복을 바라길 기도해 본다.
"아내가 있다는 거 좋을 것 같긴 한데 앞으로 일등 신랑감이랑 멀어질 일만 남았는데 어쩌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