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박쥐,장진영… 2009 영화계 10대뉴스①

[★리포트]

전형화 기자  |  2009.12.08 07:30
\'해운대\' \'워낭소리\' \'박쥐\'(시계방향)<사진출처=영화포스터> '해운대' '워낭소리' '박쥐'(시계방향)<사진출처=영화포스터>


한국영화의 저력이 빛난 한해였다. 2009년 영화계는 시작부터 위기감이 감돌았다. 2006년을 정점으로 긴 부진의 늪에 빠졌던 영화계는 올해도 뚜렷한 변화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달랐다. 괴물 신인들의 등장과 독립영화계에서 불어온 훈풍, 그리고 해외발 낭보, 3년만의 1000만 영화 등등 한국영화의 저력이 폭발한 듯 했다. 많은 일과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2009년 영화계, 10대 뉴스라는 틀로 정리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것만 같다.

1. '해운대', 3년만에 등장한 천만 영화


3년만이다. 한국영화에 천만 영화가 등장한 것은. 2006년 '괴물' 이후 한국영화에 천만 영화는 사라졌다. 천만 영화는 한국영화에 희망의 상징이었다. 목표였다.

동시에 거품의 상징이었다. 마치 초고층 빌딩을 세우면 경기가 불황으로 간다는 '마천루의 저주'처럼 천만영화는 사상누각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스크린 독과점을 비롯한 많은 불합리들 위로 솟은 빌딩. 때문에 천만영화가 사라진 것은 바벨탑이 무너진 것과도 같았다.


'해운대' 천만영화가 반가운 것은 불합리한 점이 조금씩 해결되는 과정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스크린 독과점은 여전했고, 문제점은 많았지만 발전적인 부분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해운대'는 이슈 없는 천만영화로 불렸다. 그만큼 단순한 즐거움만으로 흥행에 성공했단 뜻이다. '해운대'는 오락으로서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이기도 하다. 1100만명을 불러모으며 역대 흥행 4위로 오른 '해운대'는 CG에 대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해운대'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한국형 CG영화 시대를 예고했다.

2.'워낭소리' '똥파리' 독립영화 신드롬

지난 1월 조용히 개봉한 한 영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지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워낭소리'는 독립영화로선 전인미답의 경지인 300만명을 동원하며 두 달 여 동안 사람들을 웃고 울렸다. '워낭소리' 흥행은 사회적으로 독립영화가 처한 열악한 현실에 대한 환기를 일으켰으며, 독립영화 자체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낮술' '똥파리' 등 독립영화들이 잇따라 좋은 반응을 얻게 된 데는 '워낭소리' 덕이 크다. 그 중 '똥파리' 성과는 괄목할만하다. '똥파리'는 국내에서 흥행은 '워낭소리' 30분의 1도 못미쳤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각종 영화제에서 20개 가까운 상을 휩쓸면서 수상행진을 이어갔다. '워낭소리' '똥파리' 성공으로 독립영화가 처한 환경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훌륭한 독립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린 것만으로도 두 영화의 의의는 크다.



3. '박쥐' 칸국제영화제 수상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프랑스에서 낭보를 전했다. '박쥐'가 제6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것. 한국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찬욱 감독은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박쥐' 수상은 박찬욱 감독에게도 영예지만 한국영화에도 희망의 소식이었다. 2년 넘게 지속된 불황을 날려 버리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품게 했다. '박쥐' 뿐 아니라 이번 칸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는 올해 영화계에 상당한 의미를 남겼다. 감독주간에 초청된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배우 김혜자를 재조명했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한국영화의 소우주를 세계에 과시했다. 박찬욱,봉준호,홍상수 등 상반기에 집중된 명장들의 성과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켜 여름 극장가에 '해운대' '국가대표' 쌍끌이 흥행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낳았다.

4. 극장요금 9000원 시대 열렸다

극장요금이 8년만에 인상했다. 6월26일 메가박스가 극장요금 인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데 이어 롯데시네마와 씨너스, 그리고 CGV가 인상에 동참했다. 극장요금은 2001년부터 사실상 동결된 상황이었다. 때문에 영화계에선 요금 인상을 한 목소리로 반겼다. 일부 관객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극장요금 인상은 순조롭게 자리잡았다.

'트랜스포머2' 흥행이 워낙 거셌던 것도 한몫했다. 또 '해운대' '국가대표' 쌍끌이 흥행은 인상된 극장요금이 정착하는데 일조했다. 극장요금 인상으로 한국영화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2차 부가 판권 시장이 붕괴된 상황에서 극장 요금 인상은 제작사 숨통을 틔울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 장진영 ⓒ 임성균 기자 고 장진영 ⓒ 임성균 기자


5. 장진영 사망

경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9월1일 배우 장진영이 위암 투병 끝에 서른일곱 생을 마감했다. 장진영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 충격을 줬다. 영화 같은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영화계에선 부산국제영화제와 청룡영화제 등을 통해 고인을 기렸다. 올해 영화계에선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은 영화인들이 여럿 있었다. 거장 유현목 감독이 숨을 거뒀다. 충무로의 대표적인 제작자인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도 유명을 달리했다.

6. '해운대' 불법동영상 유출..'굿 다운로더'로 이어져

8월 말 '해운대' 불법동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됐다. 당시 '해운대'가 극장에서 버젓이 상영되고 있었을 뿐더러 중국 등 해외 개봉을 앞두고 있던 터라 피해가 심각했다. 경찰이 나섰으며, 불법 동영상 유출이 갖는 폐해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범인이 시각장애인협회 소속 엔지니어였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불법 동영상 유출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해운대' 불법 동영상 유출과 범인 색출로 만연한 불법 동영상 유출이 단번에 고쳐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줄기를 바꾼 것은 사실이다. 안성기 박중훈 등 영화배우들이 중심이 돼 불법다운로드를 막고 합법적인 다운로드를 하자는 '굿 다운로더' 캠페인이 전개됐다. 연초에 '워낭소리'가 불법다운로드될 때도 움직임이 있었지만 '해운대' 사건은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마침 합법 다운로드 시장이 조금씩 희망을 보이는 시작한 것도 희망을 줬다. '해운대'는 단순히 천만영화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한국영화 다운로드 원년에 물꼬를 튼 영화로도 기억될 것 같다.

설경구와 송윤아 ⓒ홍봉진 기자 설경구와 송윤아 ⓒ홍봉진 기자


7. 설경구 송윤아 결혼, 그리고 장동건 열애

올 상반기 영화계 최대 화제 중 하나는 단연 설경우, 송윤아 커플의 결혼이다. 두 사람은 그동안 교제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미 영화계에 알음알음 알려졌던 터였다.

설경구와 송윤아는 2002년 '광복절 특사'로 인연을 맺은 뒤 2006년 '사랑을 놓치다'에서 다시 남녀 주인공으로 만났다. 이후 2007년 가을부터 사랑을 키워와 마침내 지난 5월 결혼에 골인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한국영화계 큰 잔치나 다름없었다. 칸영화제에서 막 심사위원을 마치고 입국한 이창동 감독부터 수많은 감독과 영화배우들이 총출동, 마치 영화 시상식을 연상케 했다.

상반기에 설경구,송윤아 결혼식이 있었다면 하반기에는 장동건 고소영 커플의 열애 소식이 있었다. 10년 전 '연풍연가'로 인연을 맺은 뒤 친구로 지냈던 두 사람은 2년 전부터 본격적인 교제를 가져왔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이 언제 웨딩마치를 울릴지도 단연 관심사로 떠올랐다.

8. 이병헌 비 전지현, 한국배우 할리우드 진출결과 속속 들어나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배우들의 성과가 속속 드러난 한해였다. 먼저 전지현이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과 프랑스,홍콩 등 다국적 프로젝트인 '블러드'가 개봉한 것. 흥행결과는 참담했지만 전지현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LA타임즈를 비롯한 외신들은 전지현이 신비로운 매력을 지녔다고 호평했다.

이병헌이 출연한 '지.아이.죠'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이병헌은 후속편에서 더 큰 활약이 기대되는 핵심 캐릭터를 맡았다. 이병헌은 트란 얀 홍 감독의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도 출연,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한 한 해이기도 했다.

비가 할리우드 첫 주연을 맡은 '닌자 어쌔신'도 11월 전 세계 관객과 만났다. '닌자 어쌔신'은 청소년 관람불가인 R등급에 스크린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 5위권 안에 진입하는 등 성과를 냈다. 비는 액션스타로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룹 god 출신인 박준형도 '드래곤볼 레볼루션'으로 할리우드에서의 활약을 입증했다.

\'과속스캔들\' \'굿모닝프레지던트\' \'거북이 달린다\' \'7급공무원\'(시계방향)<사진출처=영화포스터> '과속스캔들' '굿모닝프레지던트' '거북이 달린다' '7급공무원'(시계방향)<사진출처=영화포스터>


9. 강한섭 영진위원장 하차..조희문 체제 시작

한국영화 정책을 이끄는 수장인 영화진흥위원장이 교체됐다. 영진위는 지난 6월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위를 받았다. 강한섭 위원장은 7월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영진위는 임시대행 체제로 운영되다 두 달이 지난 9월 조희문 인하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를 수장으로 선임했다.

영진위는 강 전 위원장 체제에서 노조와 갈등을 빚고 영화계와 소통에 불화를 겪었다. 영화계에선 영진위가 새 위원장을 맞은 만큼 영화계와 좀 더 대화를 갖고 현안을 헤쳐가길 바라고 있다.

10. 한국 코미디의 부활

올해 한국영화는 '과속스캔들'(800만명)과 '7급 공무원'(400만명), '거북이 달린다'(305만명) 등 유달리 코미디영화가 사랑을 받았다. 1000만명을 동원한 '해운대'와 850만명을 넘어선 '국가대표'도 코믹한 요소가 강했다.

10월 개봉한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흥행은 불황에는 코미디라는 속설을 잇는 것과 동시에 한국형 코미디 장르가 업그레이드된 증거로 볼 수 있다.

한국형 코미디는 한 때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명절 극장가를 장악했던 조폭 코미디를 위시로 흥행 톱10에도 이름을 올릴 만큼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조폭 코미디의 자기 복제에 식상해진 관객들은 점점 이 장르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올해 코미디 장르의 부활은 경제 위기를 맞아 갑갑한 현실을 극장에서나마 웃음으로 잊어보자는 관객의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영화들의 질적인 변화는 관객의 높아진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반면 지난해 '고사' 흥행으로 부활을 예고했던 공포영화는 일제히 침몰했다. '여고괴담5'을 비롯해 '4교시 추리영역' '요가학원' 등이 흥행에서 참패해 이 장르 미래를 어둡게 했다. '불신지옥'을 건진 게 그나마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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