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설경구 ⓒ송희진 기자
'해운대' 1000만의 흥분은 이미 가신 듯 했다. 배우 설경구(41)는 차분하게 당시를 되새겼다. '실미도' 1000만은 즐길 새가 없었다. 뒤이어 기록을 경신한 '태극기 휘날리며' 때문에 김이 샜단다. 1000만은 생각도 못했기에, 과한 욕심 없었던 오락 영화이기에 더 기분을 낼 수 있었다고 설경구는 웃음지었다. "1000만 영화는 또 생길텐데요"라고 눙치며.
자축하는 의미에서 '1000만 패'를 만들어 '해운대' 팀이 나눠 가진 게 지난 10월 초. 그 뒤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단다. 배우 설경구가 1000만의 감격을 훌훌 털어버리게 한 영화가 이제 관객을 만난다. 다음달 초 개봉하는 스릴러 '용서는 없다'(감독 김형준)다.
설경구는 나사 하나 풀린 듯한 부산 사나이에서 팽팽한 긴장감 속에 분투하는 완벽주의 부검의가 됐다. 또다시 '고무줄 몸무게'를 발휘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의 선택은 어느 하나 만만치가 않다. 이번엔 양 손으로 물컹한 동물 내장을 주무르며 짐짓 멀쩡한 척을 해야 했다.
배우 설경구 ⓒ송희진 기자
설경구가 맡은 부검의 강민호는 속을 알 수 없는 살인 용의자 이성호(류승범 분)에게 휘말려 끝이 보이지 않는 진창에 뛰어든다. 잔인한 스릴러지만, 줄줄 흐르는 피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설경구는 "벌건 대낮에, 햇빛 쨍쨍할 때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벌어지는 비극"이라고 '용서는 없다'를 설명했다.
코믹하고 허술한 '해운대'의 최만식을 감안해 정반대로 변신해보자는 계산이 깔린 건 아니었다. "마음 아픈 스릴러였다"고 설경구는 말을 줄였다.
"왜 이 영화를 선택했냐…. 두 남자가 너무 안됐더라고요. 슬펐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도 좀 멍했어요. 이런 비극이 어딨어. 현실이라면 믿고 싶지 않을 비극이죠."
그 비극이 폭발하는 마지막 순간 촬영은 연기파 배우로 이름난 설경구로서도 부담이었다. 설경구는 "압박이 엄청 온다"며 당시를 되새겼다. 스탭들을 새벽 5시부터 불러 대기시켰는데, 안되겠다 싶더란다. '배째라' 하고 히히덕거리며 몇 시간을 버티다 오후에 매니저를 시켜 얻어온 소주 한 잔을 먹었다. 그제서야 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단다. 그때쯤 되면 주위 사람이 말도 붙일 수가 없다.
"어찌나 힘든지, 핸드헬드로 찍던 촬영감독한테서 신음소리가 다 나더라고요. 모두 땀 범벅이 돼서. 그건 사투죠 사투. 그런 걸 하려면 접신을 해야죠, '그 분'이 오셔야 돼요."
배우 설경구 ⓒ송희진 기자
"예전엔 연기 하면 끝이지 아무 것도 안했어요. 그런데 이번엔 편집실 한 번 가서 계속 줄이라고 했어요.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야 하니까. 영화가 아무 틈도 안 주고 한 방에 끝까지 달려갔으면 싶어서, 정신없이 막 갔으면 싶어서."
지난 5월 화제 속에 배우 송윤아와 결혼식을 올린 그에게 슬쩍 가정 이야기를 물어봤다. 능청스런 설경구는 다음과 같이 눙치는 것으로 답변을 끝냈다.
"일하는 것만한 사생활이 없어요. 기사 엄청 나잖아요. 왜 그렇게들 물어보실까. 그전이랑 똑∼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