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맺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났다. 지난 22일 MBC 드라마 '선덕여왕'(극본 김영현 박상연·연출 박홍균 김근홍)이 종영했다. 신라 최초의 여왕, 우리 역사 최초의 여왕의 삶을 담은 드라마는 그녀의 죽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선덕여왕'은 죽음과 함께 시작해 죽음과 함께 마무리된 드라마였다. 1회 신라의 기틀을 닦은 진흥왕의 죽음으로 문을 연 '선덕여왕'은 수많은 주인공들의 죽음을 거쳐 마지막으로 덕만(이요원 분)의 죽음을 담았다. 그 곁에 남은 것은 충신 유신(엄태웅 분) 뿐이었다.
'선덕여왕'에서 활약한 주역들 대다수가 죽음으로 극을 하차한 셈이다. 죽음으로 '선덕여왕'을 이끈 이들은 누구였을까.
이순재는 1회에서 진흥왕으로 등장해 대작 드라마의 시작을 알렸다. 진흥왕은 훗날 덕만의 가장 큰 적수가 된 미실(고현정 분)이 충성을 바쳤던 호걸이었으며, 미실의 폭주를 내다본 혜안의 소유자였다. 그의 죽음 이후 미실은 자신의 시대를 연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진평왕의 시녀이자 덕만의 유모로 등장한 서영희는 모두 두 번의 죽음을 맞았다. 드라마 초반 덕만을 구하고 사막의 모래 속으로 사라졌고,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뒤에는 다시 덕만을 살리기 위해 대신 칼을 맞았다. 서영희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커다란 눈으로 멋모르는 시녀의 불안과 강인한 모성을 동시에 소화해 찬사를 받았다.
서영희 외 조연들의 활약은 빼놓을 수 없는 '선덕여왕'의 인기요인이다. 그 외에도 서리 역 송옥숙, 문노 역 정호빈, 용수공 역 박정철, 석품 역 홍경인 등도 비장한 죽음, 혹은 의외의 죽음으로 극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박예진은 천명공주로 사랑받았다.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의 달콤살벌한 매력보다 우아하고도 강인한 여성의 면모를 뽐냈다. 천명공주가 덕만을 노린 독화살에 맞아 숨을 거둘 땐 시청자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천명의 죽음으로 덕만은 공주로서 미실과의 숙명적인 대결을 결심하게 됐다.
미실 고현정은 '선덕여왕' 62회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이었다. 미실은 뛰어난 리더십과 강한 야망, 여성으로서의 한을 동시에 지닌 매력적인 악역이었지만 고현정을 만나 더욱 빛났다. 고현정은 미세한 표정의 변화만으로 보는 이들을 쥐락펴락하며 브라운관에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스스로 왕이 되겠다며 반역을 꾀하다 그토록 사랑했던 신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미실은 독배를 마신 뒤 끝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숨을 거뒀다.
진평왕으로 분했던 조민기는 덕만과 천명의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하며 극을 뒷받침했다. 극중에서는 미실에게 휘둘리는 힘 약한 왕이었지만 촬영장에서는 선배이자 분위기 메이커로 톡톡한 몫을 했다는 후문. 병에 걸린 진평왕의 죽음 이후 덕만은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미실의 영원한 연인이자 동지였던 설원 전노민을 빼놓을 수 없다. 미실을 떠나보낸 뒤 미실파를 든든히 지키던 설원은 백제와의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고 회한의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전쟁으로 나가기 전 '보고싶소'라며 미실을 추억하던 그의 애잔했던 모습은 많은 시청자를 울렸다. 극을 통틀어 손 한번 맞잡는 장면조차 없었지만 두 사람의 출중한 연기력 덕에 미실과 설원의 깊은 교감은 시청자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비담 김남길은 마지막회에서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았다. 연모했던 덕만에 대한 불신으로 난을 일으켰던 그는 갈등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음을 깨닫고 덕만 앞에 자신을 버렸다. 첫회부터 광기를 숨긴 어린아이 같은 비담을 그리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는 마지막까지 비밀병기로서 자신의 몫을 다했다.
'선덕여왕'의 타이틀롤 이요원은 권력을 얻을수록 외로워지는 고독한 여왕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녀는 "힘겨운 일이었다"고 겸손해했지만 어린 나이에 타이틀롤을 맞아 62부의 드라마를 이끌면서도 당차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재평가를 받았다. 김영현 작가는 지금까지 '선덕여왕'을 이끌어온 것은 바로 덕만의 삶 자체였다며 뜨거운 애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