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胡蝶夢).
영화 '아바타'(사진)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 하나. 21세기는 아직도 장자의 호접몽을 꾸는가.
이미 700만 관객은 확인한 바지만, '아바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지구인 주인공 제이크(샘 워싱턴)가 외계 행성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족의 '아바타'가 돼 '두 몸 살림'을 하는 것. 영화에서는 '링크'로 표현했지만, 몸뚱이는 나비족이고 정신은 인간 제이크인 그런 상황으로 순간 이동하는 영화의 핵심 장면이다. 그때 '링크'가 끝난 제이크가 이런 비슷한 대사를 날린다.
"나비족 꿈을 꾸는 내가 진짜인지, 나비족이 진짜 나인지 헷갈린다."
'링크'를 꿈으로 바꾸면 그대로 그 옛날 나비가 돼 날아다니는 꿈을 꿨다는 장자의 호접몽이 된다. 물론 '나비' 동음이의어로 인한 착각이다.
사실 영화에서 '나비'(Navi)는 히브리어로 '예언자' '신의 계시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나비족의 세계관도 그렇고, 실제로 여주인공 네이티리(조 샐다나) 어머니의 예언자-무당적 역할도 이 뜻에 딱 맞는다.
그렇다고 이를 동음이의어 말장난으로만 볼 수 없는 게 21세기 SF히트작에 스며든 이러한 '호접몽'이 여럿 있어서다.
인간복제 문제를 다룬 마이클 베이 감독의 2005년작 '아일랜드' 역시 주인공 이완 맥그리거가 꾼 호접몽으로 비춰진다. 영화에서는 진짜 인간 링컨이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복제인간 '링컨6-에코'가 됐다. 그러다 링컨6-에코가 각성하면서 영화는 좀 복잡해진다. '링컨6-에코가 진짜 나인가, 링컨이 진짜 나인가' 아니면, '링컨6-에코가 겪은 세상이 진짜인가, 아니면 링컨이 겪는 세상이 진짜인가' 등등.
1999~2003년 세 편이나 나왔던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도 엇비슷하다. 영화속 세상은 인공지능이 창조해낸 매트릭스. 그 매트릭스 속에서 토마스 앤더슨으로 살아가는 키아누 리브스는 사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널부러져 있다. 각성한 네오, 순간 헷갈린다. "나는 누구인가. 지하에서 양분을 빨리고 있던 내가 진짜인가, 매트릭스 속이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살아가는 토마스 앤더슨이 진짜 나인가." 과연 실제 자신과 세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아바타'에서 이러한 호접몽스러운 상황은 결국 영화 결말과도 밀접히 연관된다. 물론 '내가 누구인가'는 의식은 영화 전체 주제(친환경, 반제국주의, 반전주의, 반개발주의)에 비추면 양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비'족이 진짜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를 뜻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의 영화팬들로서는 그저 즐거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