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들이여, 세상은 1등만 기억해요?!

김수진 기자  |  2010.01.12 13:50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개그맨 박성광이 KBS 2TV 공개 개그프로그램 '나를 술푸게하는 세상'을 통해 유행시킨 말이다. 이 말의 어감은 다소 부정적일 수 있지만, 이내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개그로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개그와 일맥상통하는 한 편의 학원 드라마가 등장, 시청자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방송중인 2TV 월화 미니시리즈 '공부의 신'(극본 윤경아·연출 유현기)이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일본 원작 만화를 국내 현실에 맞게 드라마화한 작품으로, 겨울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학부형 사이에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동시간대 경쟁작 가운데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파산 직전에 놓인 병문고에 부임해온 조폭 출신 변호사 강석호(김수로 분)가 이 학교를 살리려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 '천하대' 입학생을 배출하기 위해 만든 특수반 담임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수반 학생으로 선택한 5명의 사연은 각양각색. 부모님을 모두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란 반항아 황백현(유승호 분), 술집을 운영하는 엄마와 살고 있는 열등생 길풀잎(고아성 분),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와 지적인 어머니, 일류대에 다니는 형과 누나에게 치여 춤과 노래에 빠진 열등생 홍찬두(이현우 분), 멋 부리기 좋아하고 밝아 보이지만 황백현을 짝사랑하는 쓸쓸한 소녀 나현정(지연 분), 고깃집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평화롭게 살지만 집밖에 나가면 소심해지고 자기주장 없는 존재감 제로의 오봉구(이찬호 분)다.

상처 있는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이들의 성적은 모두 전교 하위권. 이들을 명문 천하대에 보내겠다는 신념으로 불타는 강석호의 고군분투가 매회 시청자를 흡입력 있게 사로잡고 있다.


지난 11일 방송분에서는 오봉구의 아버지(김하균 분)와 각을 세우는 강석호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작은 고깃집을 겸한 정육점을 운영하는 오봉구의 아버지는 타고난 낙천주의자. 외아들인 봉구가 성적 잘 받아 올 때보다 고기를 잘 먹을 때가 더 좋다. 한 번뿐인 인생, 공부 때문에 뭐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사나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 강석호에게 공부 때문에 달달 볶이는 봉구가 측은해서 우울증에 걸릴 지경인 인물이다.

오봉구의 부모와 강석호의 대화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씁쓸한 현실 반영과 동시에 역설적인 현 교육현실의 비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현실이 '비극'이다보니 아버지의 소박한 교육원칙은 아들의 열의를 못 알아주는 무책임 혹은 몰이해가 되고, 뜻있는 선생님의 교육열은 입시지옥에 동참하라는 주문으로까지 해석된다. 이런 '비극'은 곧 '현실'이다.

"봉구가 무슨 천하대에요? 우리는 다른 집과 다릅니다. 대학을 꼭 가야합니까. 봉구가 행복하면 그만이죠."(오봉구 아버지)

"봉구가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세요?"(강석호)

"얘는 등심 먹을 때 가장 행복한 애에요."(오봉구 어머니)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지만 봉구의 성적은 좋지 않습니다."(강석호)

"애가 우리를 닮아서 공부머리가 좀.."(오붕구 어머니)

"머리가 아니라 공부에 대한 마음을 물었습니다. 봉구의 마음은 어떨 것 같습니까.봉구는 등심 먹는 것 외에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부모를 닮아서 공부머리가 없다고요? 머리가 좋으면 얼마나 좋고, 머리가 나쁘면 얼마나 나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열정입니다. 열정이 가슴속에서 꿈틀대는 아이를 왜 주눅 들게 하십니까?"(강석호)

성적이 안 좋아도 단 한 번도 혼낸 적이 없는 부모에게 강석호는 이는 일종의 폭력이라고 말한다. 자유를 준답시고 아이를 놔두는 것은 폭력이라고 강석호는 피력했다. 이어 열정을 불사를 기회는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다며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강조한다.

"아직도 좀 그러네요. 천하대를 꼭 가야하는건지. 거기가 좋은 데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 오봉구의 아버지의 마음은 시청자에게 진한 여운마저 남게 했다. 이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누구나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잣대인 성적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반영했다.

오봉이 아버지의 대사처럼 명문대에 가야만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명문대를 졸업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행복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제작진이 밝힌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따르면 과도한 교육열이 빚어낸 병폐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좋은 대학을 졸업, 좋은 직업을 갖길 바라는 건 부모의 공통된 심정이며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위축된 채, 삶의 목표도 없이 방황하던 열등생들이 변호사 강석호를 만나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눈물겨울 노력 끝에 천하대에 입학하게 되는 인생역정을 그린다.

결국 성적지상주의에 대해 꼬집어내면서도 또한 명문대를 지망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내용이 시청자들의 상반된 의견을 이끌어내며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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