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기자 @
돌연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진다. 발랄하고 웃고 있지만 눈동자가 살며시 흔들린다. 평소보다 손동작이 커진다. 그렇다면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왕지혜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27일 '식객2'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녀는 발랄했다. 목소리는 달뜬 듯 했고 입가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촉촉했고 붉은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다. 17일 아버지를 세상에 떠나보낸 지 꼭 열흘 만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그런 슬픔이 인구에 회자된다는 것, 왕지혜에겐 큰 상처였다. 연예인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무게를 채 알지 못한 탓도 있다. 지난해 야구선수 김태균과의 열애 해프닝 역시 그녀에 상처를 준 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왕지혜는 웃고 있었다. "아버지가 발랄한 피를 물려 주셔서 기쁨으로 승화시키려 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연예인이, 아니 배우가 되고 있었다. '식객2' 역시 왕지혜에겐 과정이다. 왕지혜는 자신과 닮은 진수 역을 하기가 오히려 어려웠다고 했다. 그녀의 거짓말과 그 속에 담긴 진실을 들었다.
-신인 같지 않은 신인이다. 연예계에 데뷔한 지 어연 7년째인데.
▶영화는 '구미호가족'과 '뷰티풀 선데이'까지 이번이 세번째다. 베스트극장으로 데뷔해 '1%의 어떤 것' '북경 내사랑'을 찍었고 중국드라마 '생사절연', 그리고 드라마 '친구'를 찍었다. 잡지와 CF모델로 시작했으니 경력은 좀 됐다. 하지만 이제야 점점 연기가 어떤 것인지 내가 부족한게 뭔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한 계단씩 오르고 있는 느낌이다.
-민지혜에서 본명인 왕지혜로 활동을 다시 시작한 것은 어떤 까닭인가.
▶소속사를 옮길 무렵이었다.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단 생각을 했고. 또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게 더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교는 아니다. 그런 소리했다간 어른들에게 혼난다.(웃음)
-'친구'부터 '식객2'까지 쉴 틈 없이 촬영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쉬는 시간도 있었는데.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연기가 항상 하고 싶었으니깐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자의식을 버리기가 힘들었다. 남들 시선을 늘 의식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또 기다림과의 싸움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 과정인 것 같다.
-지금은 어떤가.
▶길이 보이니깐. 더 단순해진 것 같다. 예전에는 생각이 많았는데 지금은 현재에 가장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최근에 1년 반전에 오디션을 가졌던 감독님을 만났다. 그런데 어두웠던 얼굴이 완전 사라졌다고 하시더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
-'식객2'에선 전작들과는 달리 밝은 역할을 맡았는데.
▶아직 밝은 연기가 힘들다. '친구'의 진숙보다 '식객2'의 진수가 더 힘들었다. 원래 난 깨방정하다는 소릴 듣는 편이다. 그런데 내 성격과 비슷한 연기가 오히려 어렵더라. '친구'가 막 끝나고 들어간터라 어느 순간 마산 사투리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이동훈 기자 @
-진수는 성찬(진구)과 러브라인도 있고 원래 분량도 더 컸는데 많이 편집됐다. 연기까지 포함해 그렇고 아쉬움이 컸을텐데.
▶글쎄. 연기적인 아쉬움은 있지만 편집이야 좋은 작품을 위해 감독님이 하시는 부분이니깐. 연기적인 욕심이 크다보니 좀 더 조절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예쁜 척 똑똑한 척, 그런 모습을 예전에는 보여주려 했다. 잘못된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날 것을 보여줬다면 내 실제 성격을 연기할 때 더 자연스럽지 않았겠나. 그런 아쉬움이 있다.
-그것도 과정인가.
▶그렇다. 힘을 빼는 게 필요하다. 일상적인 연기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를 잃었을 때 다른 의미로 힘들었다던데.
▶기사화될 줄 몰랐다. 그걸 보고 다른 가족들이 힘들어하시더라. 공인이라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더라. 다만 그것도 나를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해프닝이 일었던 스캔들도 역시 과정이라고 생각하나.
▶과정이다.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퍼질 때도 나를 지켜내는 데 아직 부족한 게 많단 생각을 했다. 단련이 되고 싶다.
-연기를 쉴 때도 있었다. 그만 두고 싶단 생각은 안했나. 사랑이라든지.
▶사랑을 도피처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은 잠깐 해봤어도 그걸 도망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지금까지 왜 제작자들이 사연 있는 여인으로 썼는지 알 것 같다.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눈이.
▶포커페이스가 잘 안되서.(웃음) 2008년 연기 활동을 좀 쉴 때 연기공부를 미친듯이 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정극 같은 연기가 내게 가장 잘 맞는 것 같긴 하다. 통속적이지만 절절한 연기. 물론 아쉬움도 많다. 보여줄 게 많은데 아직도 보여준 게 너무 적다.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하면서 짧은 시간에 단련이 된 것 같은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난 언제나 26살이 특별한 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올해가 26살이다. 2010년이 특별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깐.(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