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추노'가 방송 시작하자마자 시청률 돌풍을 일으킨 것은 유려한 강산을 담은 스케일 큰 화면과 느린 듯 빠른 듯 감칠 맛 났던 액션 신, 그리고 야생을 뛰어다닌 '짐승남'들의 날 것 냄새 덕분이었다. 여기에 추노꾼 대길 역의 장혁, 조선 무관 송태하 역의 오지호, 이 두 배우 연기의 재발견도 한몫 크게 했다.
특히 장혁과 오지호를 비롯해 '최장군' 한정수, '왕손이' 김지석의 벗은 몸매의 공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이른바 짐승남들의 초콜릿 복근. 큰 주모, 작은 주모, 설화(김하은) 가릴 것 없이, 문틈으로 보고, 밥에 계란 넣어주고, 서로 질투하고 한 이 모든 것이 그들의 벗은 몸 덕 아니었나. 그리고 이들 몸보다 더 강하고 아름다웠던 '사내'들의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거친 질주 본능!
그러나 이들은 이제 두터운 옷에 거친 몸과 거친 숨소리를 꽁꽁 숨겼다. 지난 10일 제11화에서 최장군이 장작을 패면서 생뚱맞게 웃통을 벗어젖힌 것을 제외하면 이들의 몸은 사라지고 결코 세련되지 못한 의상만 남았다. 그러면서 이들의 싱싱했던 캐릭터도 휘발됐다(이것이 더 심각하다). 왕손이야 원래부터 그랬다 치더라도, 최장군이 어디 그리 쉽게 여염집 계집종의 유혹에 실없이 미소를 지을 그런 인물이었던가?
'추노'가 맥이 빠진 이유는 또 있다. 너무 많이 죽였다. 소위 지난 주 9, 10화에서 사단이 났던 줄초상 사건. 혜원(이다해)의 호위무사였던 백호(데니안)가 죽었고, 원손 석견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궁녀(사현진)가 죽었고, 추노꾼 천지호(성동일)의 오른팔이었던 만득(김종석)이 죽었다. 혜원을 추격했던 중국 여자무사(윤지민)도 어이없이 비명횡사했다. 이런 줄초상에 네티즌들은 우스개 소리긴 하지만 "이 모든 게 언년이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등장인물의 급작스럽고 한 치 앞 모를 퇴장은 당장은 시청자들에 '충격효과'를 줄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다. 끝까지 살아남을 몇몇 주인공들과 언제나 갈등과 반목과 화해를 이뤄야 할 상대가 없어진 거니까. 오른팔, 왼팔 모두 잘린 천지호가 '원수' 황철웅(이종혁)에 이를 갈며 당장 무슨 일을 저지를 듯 보였으나 최근 회에선 등장조차 하지 않는 게 그 부작용의 첫 사례다.
죽음 뿐만이 아니다. 초반 '추노'가 건넨 웃음의 8할을 담당했던 큰 주모(조미령)와 마의 영감(윤문식)은 모진 고문 후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있고, 송태하와 제주 격투신에서 패배한 황철웅 역시 훗날을 기약할 뿐 최근 회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설화는 지금도 "배고파"만 외칠 뿐. 시도 때도 없이 작은 주모 엉덩이 잡기에 환장했던 환쟁이(안석환)가 늘 내뱉던 "잡은 거야? 그냥 가다 스친 거지!" 식의 구수한 유머도 사라졌다.
한마디로 드라마가 단조롭고 싱거워지고 무거워졌다는 것. 실제로 제12화는 1시간이 넘는 방송 시간 대부분을 '송태하-언년이를 쫓는 대길의 추격전'에 할애했다. 숨가쁘게 달리고 숨고 아무리 그랬어도 방송 막바지에야 대길이 송태하와 언년이 같이 있는 걸 겨우 목격했을 뿐인 그런 느린 호흡. 그러면서 그 수많은 에피소드를 내놓았던 최장군, 왕손이, 설화 이들은 기계처럼 왔다갔다만 했다. 따져보시라, 당신들은 도대체 뭘 했나?
'추노'는 대신 "혁명에 낭만은 없다"고 외치는 반정세력의 숨 막히는 이데올로기와 이런 꽉 막힌 논리가 불러올 핏빛 미래만을 암시했다. 크게 보면 결국 '추노'도 기존 왕조사극에 다름 아닐까 하는 섣부른 실망. 인조와 좌의정(김응수)그룹 VS 원손과 반정세력의 태그매치 식의... 하지만 애통하다. 이들의 태그매치는 웅장하되 결말은 뻔하니까. 왜? 누가 이길지 역사는 이미 스포일러인 것이니까.
결국 요즘의 '추노'는 유머가 사라지고, 유려한 액션이 사라지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왁자지껄한 마당이 사라졌다. 남은 건 첫 회부터 예고했던 대길의 앙상한 추격전뿐. 그것도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려 아주 튀지 않는 이상 심드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외길의 추격전. '추노'는 지금 과연 무엇을 쫓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