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소현세자(추노), 영조(이산), 숙종-숙빈 최씨(동이), 정조(이산)
TV사극의 미덕 중 하나가 자연스럽게 국사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숙종 하면 전광렬이고, 영조 하면 이순재, 정조 하면 이서진인 그런 즉각적인 기억효과! '태정태세문단세'만 외웠던 이들이 '광인효현숙경영정'까지 익숙해진 건 다 사극 덕분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이 2007년 MBC '이산'이 그랬던 것처럼 한때 '개혁의 대명사' 정조에 열광했다가, 최근에는 다시 시대를 15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 좌절과 혼란의 격동기 인조 시대에 집중했다는 점. 2008년 방송된 KBS '최강칠우'와 방송중인 '추노'가 대표적 예다.
특히 '추노'(연출 곽정환)를 시작으로, 3월 방송예정인 한효주 주연의 MBC '동이', 앞서 지난 2008년 6월 막을 내린 MBC '이산'(연출 이병훈)이 그 순서대로 인조,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까지 7대 임금 통치기간을 배경으로 삼아 눈길을 끈다.
어쨌든 피비린내 나는 조선 건국기를 다룬 '태정태세'는 고 김무생과 유동근의 '용의 눈물'이 완성형으로 그려냈고, 또 한 번의 칼바람 분 '문단세'는 '한명회'와 '설중매'가 끝내버렸으며, '예성연중인명선'은 '장녹수'와 '여인천하' '불멸의 이순신'이 확실히 붙잡아맸으니까.
우선 인조부터.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실감나게 그려냈지만, 정묘-병조호란에 삼전도의 굴욕까지 당한 인조는 앞서 이준기 주연의 SBS '일지매'에서 김창완이 맡아 화제를 모았다. 왕실 계보로 따지면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 최철호가 다소 찌질하게 열연한 선조의 손주가 바로 인조다.
방송중인 '추노'에선 김갑수가 인조로 나오고 있다. 다시 조선을 찾아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석견을 내놓으라"는 용골대에 그래도 지지 않으려는 자존심의 인조, 김갑수의 노고가 안쓰럽다. 재미난 점은 김갑수가 SBS '연개소문'에선 안하무인 수양제로 나와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는 것.
독살설이 유력한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는 '추노'에선 강성민, '일지매'에선 김지완이 맡았다. 아내와 두 아들까지 잃은 비운의 소현세자이지만, '추노'에서는 그나마 송태하(오지호) 일당이 그토록 대를 이를 이어 셋째아들 석견에까지 충성을 다하니 저 세상에서도 감격할 듯. 문정혁이 칠우로 열연한 KBS '최강칠우'에선 임호가 소현세자로 나왔다.
이후 북벌정책을 폈던 효종과 그의 아들 현종 대를 콕 집어서 그린 사극은 아쉽게도 81년 KBS '대명' 이후에는 아직 없다. 재위기간이 효종이 10년, 현종이 15년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당시 '대명'에서는 인조의 차남, 그러니까 소현세자의 동생인 효종(봉림대군) 역은 김흥기가 맡아 열연했다.
그러나 현종의 아들 숙종은 캐스팅이 봇물을 이뤘다. 숙종 시기에 바로 장희빈, 인현왕후 등의 이야기가 얽히기 때문이다. KBS '장희빈'(2002)에서는 전광렬, SBS '장희빈'(1995)에서는 임호가 숙종 역을 맡아 자웅을 겨뤘고, 오는 3월 방송되는 MBC '동이'에서는 지진희가 숙종 역을 맡는다.
왕조사를 직접 다루진 않았으나 이서진-하지원-김민준의 MBC '다모'에서는 선우재덕이 숙종 역을 맡았다.
숙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장희빈 역에는 김혜수(KBS)와 정선경(SBS)이 열연했다. 이병훈 PD의 '동이'에서는 이소연이 장희빈에 낙점됐다. 이 시기 눈물의 인현왕후는 박선영(KBS)과 김원희(SBS)가 맡았고, '동이'에서는 박하선이 나선다.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을 낳은 숙빈 최씨는 KBS '장희빈'에선 박예진, SBS '장희빈'에선 남주희가 맡았다. '동이'에선 당연히 타이틀롤 한효주가 숙빈 최씨로 나온다. 숙빈 최씨 동이는 천민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돼 영조를 포함해 세 아들을 낳았다.
숙종의 아들 연인궁 영조는 역시 MBC '이산'의 이순재가 기억에 남는다. '동이'로 따지자면 지진희(숙종)와 한효주(숙빈 최씨)가 낳은 맏아들이 이순재인 셈이다. '동이'와 '이산'은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다.
영조가 뒤주에 가둬 저 세상에 보낸 아들 사도세자 역 역시 최근작 중에선 '이산'의 이창훈, 그의 정비로서 한 많은 인생을 보낸 혜경궁 홍씨는 '이산'의 견미리가 우선이다.
마지막으로 '미완의 개혁'의 대명사 정조는 '이산'의 이서진을 필두로 KBS '한성별곡'의 안내상, SBS '바람의 화원'의 배수빈이 뒤따르는 형국. 특히 '이산'에서 뒤주에 갇힌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울며 떡을 가져다 준 어린 정조 역의 박지빈을 기억하는 시청자가 아직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