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철의 음악이야기 "표절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강태규 기자,   |  2010.02.26 11:58
이한철 ⓒ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이한철 ⓒ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그게 언제였더라.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그래, 아마 1992년 여름 즈음이었을 것이다. 대구의 한 스튜디오. 헐렁하게 늘어진 티셔츠와 터벅머리, 호리호리한 몸매, 안경을 낀 눈동자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비틀스의 존 레넌 같기도 했고.


아무튼 더 놀랐던 건 기타 소리에 새어나오는 그의 허밍이었다. 기분이 묘해졌다. 당시 쉽게 들을 수 있는 유행가 코드와 위배되는 선율에 당혹스러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22살의 나이. 사람의 감성을 가볍게 안으로 빨아들이는 흡인력으로 내 뒤통수를 때렸다. 뉴웨이브 스타일의 모던록 음악이 쏟아져 내렸다. 브릿팝의 색채가 그윽한 얼터너티브 록은 생경스러운 음악이었지만 그가 주물러 내는 소리는 고즈넉하게 들리기만 했다.

머지않아 그가 이 어두운 스튜디오에서 계속 저 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그래서 미완의 젊은 뮤지션 이한철이 저 넓은 바다로 향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언젠가 음악 마니아들에게 그의 음악적 공력이 톡톡히 인정받으리라 확신했다. 그것은 기우가 아니었다.


1994년 늦가을 고려대학교에서 그 확신은 열광적으로 구현되었다. 수천 명이 운집한 대학가요제. 그가 들고 나온 노래 ‘껍질을 깨고’처럼 그는 포효하듯 록큰롤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 후 그는 대중음악계의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견지하면서 주류로 당당히 진입했다. 그가 바로 우리시대의 뮤지션 이한철이었다.



-강태규(이하 강)=나를 만난 건 22살 때였지요? 당시 내가 한철씨의 소리에 흠뻑 빠지게 했던 노래들을 추억할 수 있나요? 오늘을 있게 한 뮤지션 이한철에게서 지대하게 공헌한 음악들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이한철(이하 이)=하하, 22살 맞아요. 그때 기억이 납니다. 당시 심취했던 음악은 U2, DAVID BOWIE, TEARS FOR FEARS같은 모던한 록음악들 많이 들었습니다. 국내밴드 H2O, 강산에 형님의 음악도 자주 들었습니다.

-강=제가 알기로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악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있을 텐데? 정치는 관심 없나요?

▶이=대학진학 때의 전공 선택에는 특별한 의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갑니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음악과 당시의 정치 사회적 환경이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문제에 대해 대중음악인들이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대학시절 음악의 길로 접어든 것은 '단지 취미'로 생각하고 즐겼던 것이 대학가요제 대상으로 결과를 내면서 자연스럽게 직업이 되었지요.


-강=1994년 대학가요제로 데뷔하고 1집 음반 ‘델마와 루이스’를 통해 새로운 사운드를 제공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대중의 인기보다는 음악마니아를 선택한 것으로 생각되어지는데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이 더 우선시 되는 경향이 있습니까?

▶이=당시에 저는 그것을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참 빗나간 착각 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결과로 대중과 제 음악의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저 자신을 바꿀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저의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저 자신을 위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음악의 최초의 소비자역시 저인 셈이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진심을 다해서 만든 음악이 팬들에게도 진짜배기 감동으로 전달되는 소중한 경험을 몇 번 해봤습니다.

-강=90년대 중반 기점으로 우리 대중음악사에 남을 만한 뮤지션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2000년대 이후는 거의 출현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90년대 호황기를 누린 우리 대중음악계의 거품이 빠지면서 생기는 과도기적인 현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인디신의 싱어송라이터들을 주축으로 새롭고 완성도 높은 뮤지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음악계는 불황이지만, 그런 불황이 오히려 뮤지션을 자기 음악세계로 몰두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쿠바 여행 중에 훌륭한 아티스트를 많이 만났었는데, 어떤 장르, 어떤 악기를 연주하든 똑같은 보수를 받기에 더 음악 그 자체에 몰두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강=음악이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오늘의 대중음악 현실을 보면서 음악이 소중하지 않는 시대라고 개탄하는 팬들이 많아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대중음악 지형도를 어떻게 관망하고 있나요?

▶이=고 천상병 시인은 인사동 술집에서 지인들에게 술을 얻어먹는 그 떳떳함에 대해 "시 한줄 쓰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술 얻어먹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 이런 예를 들어 예술가의 지위를 치켜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감정을 악기나 노랫소리로 들려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악사가 가난해서 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있음으로 그 칙칙한 골목길이, 일상의 순간이 예술의 공간으로 바뀐다는 식으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강=그동안 수많은 음반을 발표하고 방송보다는 크고 작은 공연을 통해 팬들과 근거리에서 음악적 교감을 충실히 나누고 있는데요.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만족하십니까?

▶이=솔직히 방송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항상 긴장하고 낯설게 느껴서 제가 가진 것들을 잘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좀 더 자연스러운 음악전달의 공간인 공연장을 더 좋아해요.

-강=라디오PD들에게 이한철은 한국의 제이슨므라즈라는 평가를 듣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음악적 개성과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인정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음악이 세계의 중심이었다면 그 이상의 반열에 오른 뮤지션이라 자부하는데요?

▶이=과찬이십니다. 데뷔는 제가 먼저니, 후배 제이슨므라즈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 제가 예측하는 진행으로 곡이 전개되더군요. 그리고, 공연에서의 재치 있는 퍼포먼스도 제가 지향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방향으로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여담입니다만, 지난 수년간 가요계는 표절 논란으로 얼룩졌습니다만, 그때뿐, 유야무야 담 넘듯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것도 가요계 안에서 그러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고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아왔습니다. 창작자로서 표절논란에 얼룩진 가요계의 자화상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이=곡을 쓰는 작가도 사람인지라 계속 히트곡을 쓸 수 있는 상황만이 만들어지진 않을 텐데 계속 히트곡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자체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표절하는 작가 개개인의 도덕성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계속 히트곡을 짧은 기간에 만들어내야 되는 그런 제작행태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레퍼런스 음악을 근간으로 제작되는 곡은 절대 레퍼런스 곡을 넘어설 수 없고, 어떤 표본을 듣고 만들려고 하면 그 곡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강=최근 뮤지션 하림과 아프리카로 음악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여행을 즐기고 좋아합니다. 낯선 곳에 던져져 익숙해지고 그곳을 떠날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그런 여행의 과정이 음악을 만드는 감수성을 많이 자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는데 이번 아프리카여행은 쉽게 갈수 없는 곳이라 그런지 아주 좋은 경험 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여행 동안 곡을 많이 만들어 왔는데 미니앨범 발매와 월드투어 쿠바 편에 이은 아프리카 편으로 관객과의 만남을 현재 계획하고 있습니다.

-강=그간 여러 가지 음악적 실험들을 해 온 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들을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불독맨션은 가장 밴드다운 음악을 했었고 다른 멤버들의 영향과 더불어 FUNK SOUL, LATIN음악에 까지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이스쿨 센세이션은 고등학교 후배와 하룻밤 사이에 만든 6곡으로 속전속결 제작하여 만든 음반을 발표하고 재미난 공연을 많이 했었고, 주식회사는 김현철 심현보 정지찬 같은 싱어송라이터들과 함께 곡을 만들고 앨범활동도 즐거웠지만, 곡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자체를 즐겼습니다. 마치 작곡 동호회처럼 말이죠.

-강=뮤지션으로서도 충실하게 작업을 해오면서도 후배 뮤지션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지요? 인디 레이블을 유지해 오면서 고충이라든가 알리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끝으로 부탁드립니다. 향후 음악 행보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이=제가 뮤지션이기도 하고 음반 제작자이기도 해서 그런지, 같은 뮤지션의 입장도 다 이해하며 생각하지만, 또 반면에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제작에 관련된 냉정한 프로듀싱을 해야하니 그런 선을 지키는 것이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뿌듯하고 결과물이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다음달 발매를 앞두고 있는 보사노바 여성 싱어송라이터 ‘소히’ 음반이 그렇습니다. 앞으로의 음악행보라면 우선.. 공연장에서 관객 분들은 자주 만나고 싶고 공연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늘고 길게 오랫동안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뮤지션 이한철 / 1972년생. 1994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을 계기로 가요계에 입문한 그는 언더와 오버, 솔로와 밴드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독특한 그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온 대한민국 대표 싱어송라이터이다. 1995년 솔로활동과 더불어 포크와 하드록 사운드를 구사한 밴드 <지퍼>, 펑크와 라틴리듬으로 사로잡은 밴드 <불독맨션>, 록듀오 <하이스쿨 센세이션>, 싱어송라이터 프로젝트밴드 <주식회사>까지 다양한 장르의 밴드 멤버로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보였다. 인디레이블 튜브앰프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2006년 발표한 Organic의 ‘괜찮아 잘 될거야’로 유명한 국민 격려 송 <슈퍼스타>로 2007년 한국대중음악사우 ‘올해의 노래’, ‘최우수 팝싱글’ 부분의 2관왕을 거머쥐며 자신의 진가를 선보인 뮤지션이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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