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아카데미 6관왕의 의미는?

김현록 기자  |  2010.03.08 14:39


'할리우드의 아마조네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허트 로커'가 제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 됐다.

'허트 로커'는 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LA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과 음향상, 음향효과상, 편집상 등 무려 6관왕에 올랐다.


막상막하의 경쟁자로 꼽혔던 '아바타'와 나란히 총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7개 부문에서 맞붙었으나, 1개를 제외한 6개 부문에서 압승을 거뒀다. 아카데미는 제작비 3억달러(추산, 약 3400억원)를 들여 전세계 박스오피스를 뒤흔든 초대형 SF무비 대신 1100만달러(약 125억원)로 제작된 이라크 전쟁영화의 손을 들어줬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

'허트 로커'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에게도 의미깊은 작품이다. 그녀는 2002년 1억 달러를 들인 잠수함 영화 'K-19'의 흥행 실패 이후 무려 7년간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절치부심 속에 사막을 누비며 완성한 이 작품으로 그녀는 주목받는 장르 영화 감독의 자리에 다시 섰고, 여성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함께 누렸다.


'허트 로커'의 수상은 대중성과 시청률에 목말라하던 아카데미에게도 의미있는 선택이었다. 아카데미는 그간 '크래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 톱스타나 흥행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에게 연이어 작품상을 돌리면서 시청률 하락이란 후폭풍을 맞아야 했다. 올해 시상식에서 '아바타'의 강세를 점친 것도 세계적인 화제작을 아카데미가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카데미는 '허트 로커'의 완승을 결정지으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82년의 역사를 지닌 시상식의 권위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최근 보수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아카데미가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전쟁의 트라우마를 꼬집은 전쟁영화의 손을 들어준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물론 '아바타' 역시 미국 보수 기독교 진영의 집단 공격을 받았던 작품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혹자들은 '허트 로커'의 작품성을 평가하기 전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가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3번째 부인이었던 점을 들어 입방아를 찧기 바빴다. 그러나 그녀는 이날 보란 듯 당당히 오스카 무대에 섰다. 미국 감독조합 시상식 감독상과 영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이미 수상한 터였다.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랴.

그녀는 함께 사막을 누빈, 다시 한 번 영화를 만들게 해준 동료와 스태프에게 감사를 돌렸다. 제임스 카메론은 언급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성공적인 재기에, 작은 영화의 의미깊은 승리에, 여성 감독의 첫 영예에, 이라크 영화의 완승에, 가십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전처의 역습' 따위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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