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진기자 honggga@
이승민, 본명 김민주, '학교2'로 데뷔, 라고 설명해도 잘 모른다. 영화 '비스티보이즈'에 하정우랑 동거하는 술집처자라고 하든가, '하얀거탑'에 뿔테 안경 쓴 의사라고 하면 기억을 좀 더듬어야 한다.
'탐나는도다'와 '산넘어 남촌에는'을 거쳐 연극열전까지 알고 있다면 이승민 가족이거나 마니아이기 쉽다.
지금 이승민은 드라마 제작자 송병준의 아내로 더 알려져 있다. 19살 차이를 뛰어넘은 이승민의 결혼은 그 자체로 화제를 샀다. 데뷔한 지 11년 차인 배우에 누구누구의 아내로 기억되는 것만은 수치스러운 일은 없을 터. 그래도 이승민은 담담했다. 간혹 즐거워했다. 왼쪽 약지에는 결혼반지가 반짝였다.
이승민은 18일 개봉하는 영화 '무법자'에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등장한다. 지존파를 연상케하는 범인들에 납치당해 살아남기 위해 살인행각을 했다가 또 다른 사건에 연루돼 아무 이유 없는 죽임을 당하는 역이다. 극 중에서 범죄와 결혼, 출산에 죽음까지 고루 겪는다. 그녀는 "영화를 보면 얼마나 이승민이 고생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승민은 남편과의 결혼에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기보다 "사랑해서 했다"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 했다. 연기나 생활이나 그녀에겐 긴 말은 필요 없어 보였다.
-'무법자' 제의를 언제 받았나.
▶'산넘어 남촌에는'을 할 때였다. 이미 영화는 촬영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원래 하기로 한 배우가 고사하면서 제의를 받았다.
-힘든 역인데 어떤 점이 끌렸나.
▶시나리오 첫 장에 '누구간의 동생인데'라는 글귀가 있었다. 살인자든 피해자든 목격자든 다들 누군가의 가족인데 무관심 속에 죽어간다는 뜻이었다. 그런 점이 끌렸다.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까가 중요했을 뿐이다.
-'비스티보이즈'도 '하얀거탑'도 예쁜 역이라기보다 센 역에 가까웠다. 이번 영화도 그렇고. 그런 점이 끌리나.
▶글쎄. 그런 것보단 작품에 끌린다. 학교 다닐 때는 나름 예쁜 축에 속했지만 데뷔하고보니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 예쁜 걸로 밀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제작보고회를 갔는데 한채영 등 여자배우들이 들어오는데 빛이 나더라. 내가 저기 안 서있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웃음)
-끌리는 게 취향이 독특한 것은 아니고.
▶독특한 취향이라, 그것보다 잘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한다.
-결혼을 한 용기가 궁금하던데. 나이차이도 있고.
▶19살 차이인 걸 어쩌나. 당시 보도자료에 잘못 나간 게 있다. 이 사람이면 결혼할 수 있다고 나갔는데 이 사람이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원래 연기만 하고 결혼은 할 생각이 없었다. 그 사람이 날 바꿨다. 생각이 너무 확고해 용기란 표현은 안맞는 것 같다.
-한동안 연기활동을 쉬었다. 공백기 여파가 있었는데.
▶'학교2'로 데뷔해서 한창 활동하다가 치아도 교정할 겸 잠시 쉬겠다고 했다. 그게 2년이 걸릴지는 몰랐다. 연기가 내 업일까란 생각도 들었고. 그러다 학교에서 연기수업을 받던 중 대사를 읽다가 울컥하더라. 아, 이게 내가 가야할 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도 바꿨다. 존경하는 분이 승리할 '승'에 민철한 '민'으로 지어주셨다. 꼭 승리하고 민첩하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노력하라는 뜻이었다.
ⓒ홍봉진기자 honggga@
-그런 열정으로 일어섰는데 결혼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단 생각은 안했나.
▶전혀. 내가 해야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죽도록 노력하니깐. 그래서 아이도 갖지 않기로 했다. 대표님(남편을 지칭)도 자유롭게 일에 매진하기 위해서 그게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고.
-'산넘어 남촌에는'을 하면서 연극열전을 했고, 중단은 했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도 찍었다. '탐나는 도다'도 찍었고. '무법자' 역시 마찬가지다. 1~2년 사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는데.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윤기 감독님은 못뵐 것 같다. 그 때 너무 체력적으로 힘들다보니 감정이 제대로 끌어오르지가 않더라. 겹치기가 한창일 때는 포카리스웨트만 먹고 버티기도 했다. 모든 스케줄이 끝나자마 쓰러져서 결국 입원했다.
-그리고 결혼했는데.
▶원래 여름에 하려고 했던 것을 미뤘다. 처음에는 말동무로 1년 반을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했다. 취향도 같고 바라보는 지점도 같고 이 사람이었다. 이번 설에 이 집안의 첫 제사를 드렸다. 스물한살 아들과 열아홉살 딸도 잘 이해해준다.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무법자'에서 감우성이 멘토 역할을 톡톡히 했다던데.
▶예전 CF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었다. 당시 난 신인이고 그냥 하루 찍으면 말 사이일텐데도 연기적으로 많은 조언을 해줬다. 이번에도 내 장면마다 한신한신 모니터를 해주셨다. 조언이 날카롭기도 하시고.(웃음)
-예전에 관 속에 '하얀거탑'과 '비스티보이즈'를 가지고 가고 싶다고 했다. '무법자'도 그런가.
▶일단 영화를 봐달라. 얼마나 목숨을 걸고 했는지 알 것이다.
-남편이 드라마 제작자다. 제작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나.
▶'탐나는 도다'에 출연 제의가 왔다. 여러 사람이 고사한 뒤였다. 그래서 이야기했다.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상황에 내가 하는 게 맞냐고. 무엇보다 내 힘으로 이 자리까지 왔는데 괜한 오해를 받기 싫었다. 그랬더니 원래 생각한 배우가 있다. 그 다음에 생각한 배우가 너다, 라고 하더라. 그 말이 나를 부끄럽지 않게 했다. 지금 제작을 준비하는 영화가 있는데 출연 제의를 하더라. 착한 역이라고 하길래 안한다고 했다. 나 같은 애는 나쁜 역이 더 어울리지 않겠나.(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