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김창완에 편지 "봄 안올까 은근히 걱정"

문완식 기자  |  2010.04.09 16:30
소설가 박완서가 가수 김창완에게 편지를 보내 눈길을 끈다.

박완서 작가는 최근 김창완에게 집 앞 풍경이 펼쳐진 봄 풍경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김창완은 자신이 진행하는 SBS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창완씨에게'라는 코너를 통해 유명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는 데 이에 대한 답장이 온 것이다.

박완서는 "살다보니 김창완씨한테 편지 쓸 일이 다 생기네요"라며 "먼저 우리마당의 봄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한 뒤 봄을 맞는 심경을 전했다.


박 작가는 "해마다 오는 봄이고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 날 성큼 와있는 게 봄 인줄 알았는데 올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라며 "겨울이 너무 길고 추위도 예년보다 혹독하여 혹시 지구 온난화다 뭐다 입방정을 떨어쌓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징벌로 봄을 영영 안 보내주는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더라고요. 걱정마, 걱정마. 제일 먼저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 건 복수초였습니다"라며 복수초에 얽힌 일화를 공개했다.

다음은 편지 원문


김창완 씨 보셔요.

살다보니 김창완씨한테 편지 쓸 일이 다 생기네요. 먼저 우리마당의 봄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해마다 오는 봄이고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 날 성큼 와있는 게 봄 인줄 알았는데 올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너무 길고 추위도 예년보다 혹독하여 혹시 지구 온난화다 뭐다 입방정을 떨어쌓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징벌로 봄을 영영 안 보내주는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더라고요. 걱정마, 걱정마. 제일 먼저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 건 복수초였습니다.

3월 어느 날, 3월 눈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내리고 기온 또한 차가운 영하의 날씨여서 비록 양지짝이긴 하지만 1센치 가까운 두께의 눈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그 눈을 녹이고 노란 복수초가 다섯송이나 피어 있지 뭡니까. 이녀석이 나를 놀래킨 건 올해가 두 번째입니다. 십년전쯤이던가, 이 녀석을 처음 포기 나누기로 분양받은 이듬해 봄도 올봄처럼 봄눈이 많이 왔던지 눈 속에서 피어난 걸 처음 보았었지요.

그때는 꽃잎에도 인간의 체온 같은 온기가 있어 눈을 녹인 게 아닌가싶어 손으로 살살 만져보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게 신기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풍기며 자랑했지만 그 꽃은 워낙 그런 꽃이라고 아무도 신기해하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눈이 와야만 피는 꽃도 있구나,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해마다 제일 먼저 피기는 하는데 눈 없이도 잘만 피더군요. 눈 속에서 핀 걸 본 건, 올해가 두 번째, 거의 십년만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꽃잎의 체온을 확인하려고 꽃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복수초는 대궁이도 이파리도 없이, 꽃받침도 땅에 묻은 채 흙 위에 직접 피는 꽃입니다. 자세히 드려다만 보려도 몸을 한껏 낮춰야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다섯 송이의 노란 꽃 속엔 수많은 벌들이 들어붙어서 잉잉대고 있지 뭡니까. 이번엔 꽃에도 체온이 있나~라는 생각보다는 도대체 어떤 향기 짙은 꿀샘이 이 많은 벌들을 유인했을까. 그게 궁금해 맡아보고 싶었지만 코를 갖다 댔다가는 벌에 쏘일까봐 그리 못했습니다.

지금은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매화의 계절입니다. 그것들이 예서 제서 다투어 피어나고 있는데 뭣 하러 그까짓 복수초 따위에게 한눈이라도 팔겠습니까. 나는 오늘 모처럼 화창한 봄볕을 즐기려고 마당에 나갔다가 어느 틈에 잔디보다 먼저 파랗게 올라와 있는 민들레와 냉이 머윗잎 따위를 오늘 먹을 만큼만 수확했습니다.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눈썰미 덕이지요. 그리고는 내가 자연질서 안에 있다는 게 한 없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여겨졌습니다. 김창완씨하고도 이 평화, 이 행복감을 나누고 싶습니다. 자전거 타고 방송국에 출근하는 김창완씨 옷깃을 부풀리는 바람에 실려.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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